맥시멀리스트가 사랑한 물건들 :나를 소개합니다

가능한 한 버리지 않고 간직하려는 물건들이 있는지

by 프로이데 전주현

정기적으로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편집장님의 허락 하에 해당 글의 전문을 브런치에도 옮겨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의 2020년 12월호에 실린 기사로 원문 링크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lschool.co.kr/mag1.php?mode=view&bid=587&page=1






어릴 때부터 항상 무언가를 모으며 살아왔지만, 내게 수집은 언제나 경제적인 가치와 무관했다. 남들이 볼 때 진기한 것들도 물론 있겠지만 내게만 소중한 것들이 더 많다. … 수집품들을 둘러본다. 그 하나하나마다 서린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 오랜 세월을 얽혀가며 여기까지 뻗어온 나의 이야기가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이동진이 사랑한 모든 시간의 기록>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며, 그 사람에게 정을 붙이는 작업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내 경우에는 그 사람이 애정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게 그 사람에게 빠질 수 있는 지름길과 같은데, 좋아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 사람의 눈빛과 표정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좋아하는 물건, 대상, 주제 등 그 무엇을 향한 그 사람의 에너지가 표출된다. 때문에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을 때, 나는 이렇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가장 좋아하는 **이 무엇인가요?” 하고. 이를 역으로 생각해 본다면, 나를 드러내는 가장 즐겁고도 최적의 방법 또한 나의 최애를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때문에 사회초년생인 내게 끊임없이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주변 환경에 확성기를 들이미는 심경으로, 나의 최애를 통해 나를 드러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래 기록은 그 상상의 짧은 메모와도 같다.


성격 유형 검사들을 맹신하진 않지만 반복적으로 나오는 결과들에는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곤 하는 편이다. 내 경우엔 ‘수집’이 늘 검사 결과로 등장하곤 하는데, 이게 미니멀리즘을 마치 ‘진보적인 라이프스타일’로 말하곤 하는 요즘에는 꽤나 괴짜 취급을 받는다. 참 억울하게도. ‘무얼 그리 사 모으고, 버리지 않으며, 쌓아두거나 아카이빙 하려고 하느냐’는 윽박지름과 ‘공수래공수거’와 같은 철학(?)을 들먹이는 목소리들이 많다. 그런데 그건 그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다. 수집에는 기본적으로 수집가의 호기심과 애정이 뒤따른다. 그 감정의 선을 따라가 보면 어느 사연을 만나게 (혹은 떠올리게) 된다. 사연을 파고 파다 보면 나를 매혹하는 스토리텔링, 즉 사람들과 아이디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수집이라는 행위 그 자체와 수집품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은 일상을 다채롭게 하는 지름길과도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를 닮아 수집가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매번 주변에 소개를 하곤 하는 ‘나의 연예인’,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바로 그러하다. 이동진 평론가 또한 나 못지않은 수집가인 듯하다(괜히 유대감을 형성하고 싶어 나는 그를 종종 수집가 선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내가 수집하는 것들에 비하면 동진님의 수집품들은 개인적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문화사적 의의가 돋보이는 것들이지만, 그런 나와 동진님의 수집품 갭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은 같다고 자부한다. 바로 동진님의 수집품에도, 그리고 나의 수집품에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수집품에 서린 이야기는 나를 잠깐이나마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게끔 ‘아지트’와 ‘추억’이란 이름의 외딴 동굴로 나를 데려간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이야기 덕에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조잘대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기에, 나는 수집품의 리드 하에 ‘기억’과 ‘창조’가 교류하는 광장, 아고라로 나가 보기도 한다. 수집품 하나만으로도 동굴과 광장을 오가는 여행을 언제든지 떠날 수 있으며, 그로써 나의 인생과 하루에 스토리텔링이라는 날개를 달아줄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정말이지, 수집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맥시멀리스트인 내가 사랑한 물건들의 대표적인 두 부류와 예시를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나의 수집품에 얽힌 이야기들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물건들, 당신의 이야기가 얽힌 그 물건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주길 바란다.



다른 누군가가 내게 남긴 기록들


나의 서재 한 켠에는 오래전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자 하나가 있다. 그 상자는 일종의 우체통 역할을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써 준 손편지들, 수업 시간에 건넨 쪽지, 생일 선물에 덧붙인 자그마한 엽서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내가 인지하는 나의 모습도 분명 나이지만 타인이 인식하는 나 또한 분명 나의 모습 중 일부일 테니,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 나에 관한 남들의 기록들을 존중해보고자 하는 자그마한 노력의 결과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의 메시지들이 하나하나 그 상자 속에 모여 있다. 방 정리를 하더라도 늘 정리가 안 된 채로 계속 쌓여만 가는 그 우체통의 내용물들은 나를 기억해주는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닮아 뒤죽박죽 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을 곱씹기에도 딱이고, 오늘과 내일을 계획하고자 할 때 영감 거리(?)로 삼기에도 제격이다. 나를 향한 그 많고 많은 기록들 중에 특별한 기록 하나를 꼽자면, 아마 2018년 여름의 끝자락부터 그 상자 속에 꽂혀 있었던 한 나무 푯말이 아닐까. ‘행복하세요’라는 다소 평범한 문구로 장식된 그 푯말은 이전에 자그마한 꽃 바구니에 꽂혀 있었다.


출근 마지막 날(짐을 챙겨가려고 펼쳐 둔 케리어가 보여주듯이), ‘행복하세요’라고 말을 거는 꽃 바구니 하나가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주한유럽연합대표부에서 인턴을 할 무렵, Trade Section에 배정을 받은 나는 닉이란 이름의 영국인 보스를 첫 직장 상사로 만나게 되었다. 닉은 인터뷰 때부터 나를 봐왔다. 내가 직접 닉의 일을 돕는 일은 없었지만 한-EU FTA가 채결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FTA의 발전/개선을 위한 연구 작업이 필요할 때, 꾸준히 옆에서 연구 보조를 도맡았다.


팀 보스로서 닉이 다른 선생님들을 어떻게 지도해 주는지를 살폈는데, 특히 부드러운 말투 속에 할 말은 하되 격려는 아끼지 않는 리더십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러나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투표한 지 몇 년이 지난 시점, 영국 국적의 닉은 브뤼셀 본부로 돌아오라는 소환 명령을 받았고, 예상보다 일찍 한국을 뜨게 되었다. 나의 6개월 인턴십이 미쳐 다 끝나기도 전에 닉은 그렇게 유럽으로 돌아갔다. 최고의 팀을 만나 너무 기쁘다면서 끝까지 점잖게 이야기하던 닉을 보고서 편지와 작은 선물을 건넨 후 사무실에 돌아와 엉엉 울었다. 대학원에서조차 만나지 못했던 참된 스승님을 대표부에서 만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닉이 떠난다고 생각하니 내심 아쉬웠다.


그렇게 닉이 떠나고 2개월 후, 대표부에서의 인턴십이 끝나는 날, 팀의 행정 담당 선생님께서 닉이 부탁하고 간 거라면서 인턴십 수료를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내게 꽃바구니와 봉투 하나를 건네주셨다. 감각적이거나 세련된 꽃바구니도 아닌, 행복하세요 나무 푯말이 꽂힌 자그마한 꽃바구니였지만 끝까지 팀원을 챙기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닉이 떠올라 가슴이 찡해졌다.


꽃은 시들었지만 나무 푯말 하나는 남았다.
해야 할 일들에 자제력을 잃거나 조바심이 들끓을 때면
연필꽂이에 꽂아둔 닉의 그 푯말을 쓱 쳐다본다.




내가 나 자신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남긴 기록들


반면, 내가 스스로 남긴 기록들(일기장, 필사 혹은 아이디어 노트, 수업 노트 필기 등) 또한 소중히 간직하는 편이다. 위 기록들은 다른 누군가가 내게 남긴 기록들과 다르게 내가 직접 나 자신 혹은 다른 누군가를 상상 혹은 저격(?!)하고서 써 내려간 것들인데,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협하며 의식의 흐름이라는 룰의 지배를 받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부끄러운 ‘날 것의 감정들’이 뛰노는 일종의 일지 같은 느낌이다.


남들이 보면 어쩌려고 그런 걸 보관하고 있느냐, 하고 묻는 질문들이 이때쯤이면 들어올 만하다. 하지만 내가 직접 시작하고 끝맺음한 기록들을 보관하는 이유는 크게 어렵지 않다.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게 뭐였더라’하던 순간에 휙 들춰서 찾아볼 수 있을만한 든든한 지원군을 곁에 두기 위해서이다.


내가 남긴 기록 중 매일 아침마다 마주하는 것이 하나 있다. 붙박이 옷장 문 앞에 떡 하니 붙어 있는 ‘부룬디 선교 낙서 한 장’이다.


나의 첫 선교지는 아프리카 부룬디였다. 감히 내가 선교를 해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이기만 했던 부룬디행이었지만, 부족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교를 준비하는 또래 친구들의 모습에 힘을 얻었다. 선교지에서의 경험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과 선교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는 값진 경험이었고, 국제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져 추후 나의 대학원 진학에 불을 지피기도 할 만큼 영향력 있게 작용했다. 한국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뛰어넘어 아프리카와 세상 전체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 또한 부룬디 선교 때였다.


약 10일간의 부룬디 선교를 마치고 거의 24시간에 걸친 귀국 비행기 여행만이 남아 있던 때, 비행기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떠난 지 2-3시간쯤 지났을 때, 나는 A4 종이를 하나 꺼내 들고선 지난 10일간의 일들을 떠오르는 대로 쭉 적어 나가기로 했다. 조금은 자유로운 형식의 밴다이어그램 형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브레인스토밍을 빙자한 낙서라고 해야 할까. 선교지에서의 일화들을 하나하나 적다 보니 어느덧 A4 용지가 꽉 찼다.

귀국 후 선교 팀원들에게 그 종이를 복사해 한 장씩 나눠 주고선
내 방에도 복사본 하나를 크게 뽑아 붙여 두었다.
선교지에서의 결심들을 조금이라도 떠올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A4 1장을 꽉 채운 선교 낙서 한 장을 한 장씩 복사해서 팀원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공식 일정과 비공식 일정 중의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두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었을 당신에게 묻는다. 일상 공간이 다소 좁게 느껴지더라도 당신이 가능한 한 버리지 않고 간직하려는 물건들이 있는지. 혹 그 물건들 사이에 공통점이나 재미난 사연이 발견되진 않는가?


맥시멀리스트의 세계에 온 당신을 환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