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약속은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거래였을까

신뢰를 해치는 "내돈 내산 뒷광고"가 던진 질문

by 프로이데 전주현

정기적으로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편집장님의 허락 하에 해당 글의 전문을 브런치에도 옮겨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의 2020년 10월호에 실린 기사로 원문 링크의 출저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m.klschool.co.kr/mag2.php?mode=view&bid=572&page=1






메피스토펠레스: 나 여기 이 세상에서는 당신의 시중을 들며, 당신의 지시에 따라 쉬지 않고 일하겠소이다. 만일 우리가 저기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당신이 내게 똑같은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 요한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 비극 제 1부 중에서

면접장과 시험장, 회의장 등지에서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재화와 서비스를 내세우며 일종의 거래를 한다. 거래의 이름은 약속, 챌린지, 맹세, 계약 등으로 다양한데,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 내에서 맺고 지내는 갖은 관계망들에 신뢰라는 이름의 힘을 불어 넣는다. 신뢰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관계들은 친구, 동기, 동료, 가족, 협력업체 등 (다시 한번 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거래 당사자들은 거래를 통한 성장과 기회 확보 등을 꿈꾸며 서명을 위한 만년필을 꺼내고, 악수를 하자며 손을 뻗고, 거래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이나 종이 위에 기록해 둔다. 그 기록들 중에는 거래 당사자들의 불성실한 거래 이행이나 신뢰 위반 행위로 인한 사건 사고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는데, 이는 으레 거래 당사자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과 좌절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이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추진력을 더한 경우일수록, 거래 당사자들이 맛보게 되는 괴로움의 강도는 더 커지고, 급기야는 서로를 향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신뢰로 시작된 거래라 하더라도 꼭 거래 당사자들 간의 신뢰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쪽으로만 흘러가진 않는 것이다. 최근 들어 논란이 불거진 인터넷 광고 또한 마찬가지다. 크리에이터 만능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준-공인이라 하기에도 너무나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그들 중 일부는 ‘클린 후기’라는 인터넷 문화를 해치기에 이르렀다. ‘내돈 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이라는 해쉬태그와 함께 업로드된 크리에이터들의 구입/사용 후기 콘텐츠들이 ‘앞광고’를 빙자한 ‘뒷광고’였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크나큰 실망감을 표출했다. 오랫동안 잦은 소통으로 신뢰를 쌓아온 크리에이터와 대중들 간의 관계는 거래가 암묵적으로 품은 윈윈효과라는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관계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그들의 거래에 불신의 안개가 드리운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만족하는 거래일 줄로만 알았던 것이 한쪽의 불성실한 태도와 배신 등으로 망가졌을 때, 나는 종종 서구 문화 콘텐츠에서 오랫동안 등장해 온 ‘악마와의 거래’라는 주제를 떠올리곤 한다. 악마와의 거래는 삶을 구원해줄 것 같은 내용의 거래를 제안해 오는 상대(악마)에게 속아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영혼)을 팔아넘기면서까지 계약을 체결한다는 문학적 장치다. 대부분의 거래 당사자는 영혼을 팔아넘기고 나서야 영혼 없이는 사람답게 살 수 없음을 깨닫고 계약을 무르자며 악마에게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악마는 그 사람을 망가뜨리고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계약서를 들이밀었던 입장이라 히죽히죽 웃기만 할 뿐, 영혼을 돌려주지 않는다.


다만 내돈 내산 뒷광고 논란에 이 문학적 장치를 적용할 경우,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악마’라는 표현이 곧 거래를 망치고 당사자들 간의 신뢰를 어지럽힌 쪽을 ‘절대 악’으로 해석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그러니 크리에이터가 ‘악마 같은’ 존재라는 말이냐, 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거다). 적어도 내가 해석한 악마와의 거래는 상대방을 위하는 척을 하는 등 ‘진정성을 내세우지만 상대방의 중요한 것을 결국 해치게끔 하는’ 거래를 의미한다. 윈윈(win-win)이라며 상대방을 기만하고서 홀로 이득을 챙기고 상대방의 신뢰 에너지를 손상시키는 거래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유명 뷰티 유튜버가 광고주의 협찬을 받은 미용 기계를 주요 소재로 영상 하나를 업로드했다고 가정해 보자. 영상은 ‘내돈 내산’이라는 해쉬태그를 달았으며, 유튜버는 어느 미용 기기의 효과를 비포-에프터로 비교해가는 등의 연출을 선보였다. 많은 시청자들이 영상을 시청했고, 그중 일부는 제품이 해결해 준다는 피부 고민을 하고 있는 주변 지인들에게 해당 영상을 공유했으며, 유튜버는 제품의 구매 정보와 함께 ‘구독자들과 뷰티 꿀팁을 나누게 되어 기쁘다’라는 식의 댓글을 적어 두었다. 이때 우리는 세 건의 거래를 목격하게 되는데, 그중 둘은 악마와의 거래인 반면 나머지 하나는 악마와의 거래로 피해를 입게 된 거래에 해당된다.


우선, 광고주와 유튜버 간의 거래가 있다. 광고주는 유튜버에게 자신과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교묘히 숨긴 채 콘텐츠를 기획하도록 제안을 한다. 유튜버는 그 제안을 콘텐츠도 제작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기회처럼 받아들인다. 광고주와의 거래를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 결과 광고주가 홍보해 주길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관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배포하게 된다. 하지만 뒷광고 콘텐츠는 해당 재화/서비스의 정보 중 ‘추천과 보증에 관한 정보’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해치는 것은 물론, 유튜버가 그간 쌓아온 신뢰와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만다. 계획대로 되었든 노이즈 마케팅으로 번졌든 광고주는 일단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루었다. 이 거래에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쪽은 광고주이다.


한편, 유튜버는 뒷광고 콘텐츠를 매개로 구독자/시청자와의 거래를 시작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통’과 ‘팬덤’으로 불리기까지 하는 유튜버와 구독자/시청자 간의 거래는 (제 아무리 비즈니스적이더라도) 지극히 관계중심적이다. 알게 모르게 쌓아온 신뢰 에너지는 그들 사이에서 성벽을 이루고 요새가 되어 유튜브 채널이 돌아가게끔 해준다. 채널 운영으로 유튜버는 경제적 이득과 명성, 영향력 등의 사회적 이득을 챙기고 구독자/시청자들은 ‘믿을 만한’ 정보와 영감을 얻거나 마음의 위로 등을 받기도 한다. 이와 같은 관계중심적인 거래는 내돈 내산 뒷광고 콘텐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신뢰의 성벽 혹은 요새에 금이 가게 한다. ‘내가 구독하는 유튜버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어?’, ‘이 정도로 설명하는 걸 보니 효과가 있나 본데?’ 하는 기대감이 구독자/시청자의 눈을 가린다. 거기에다가 인플루언서로서 부족할 게 없는 유투버의 입담과 연출력이 미용기기에 관한 유튜버의 후기를 더더욱 ‘그럴싸하고’ ‘믿음직하게’ 보이게 해 준다. 이 경우, 거래 당사자의 영혼을 손에 쥐고 웃고 있는 쪽은 유튜버이다.


문제는 구독자/시청자들이 유튜버(혹은 유튜버의 콘텐츠)를 향한 충성심 혹은 믿음에 사로잡혀 또 다른 시청자들과 뒷광고 콘텐츠를 공유하는 거래를 이어나가게 된다는 점이다. 이때의 거래는 악마와의 거래는 아니지만 사회 내 신뢰 에너지 활성화에 제동을 걸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다. 뒷광고 콘텐츠에 대한 감시 체계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졌다면 어쩌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거래다. 하지만 설령 감시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콘텐츠에 관한 충성심이 자연스레 성사시킨 이 거래는 암암리에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악마와의 거래를 체결한 사람들은 거래를 성사시키는 자리에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닥칠 시련을 예고하지 못한다. 이를 놓칠세라, 악마들은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라며 자신들의 목소리에 확신을 더하고, 당사자의 눈 앞에서 계약서를 흔들며 “여기 사인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게 잘 풀릴 거예요”라고 말하며 상대방을 유혹한다.


수많은 거래를 통해 각자의 재화와 서비스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양새는 정체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반길 일이다. 하지만 그 역동성 가운데 메피스토펠레스의 계략이 한몫을 한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거래를 지탱하는 신뢰의 끈이 계속해서 얇아지고 끊어지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가까스로 성사시킨 아주 소중한 거래마저도 맥없이 툭 떨어져 나가게 되지 않을까. 신뢰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우리들의 수많은 관계들이 엉망진창이 되진 않을까. 불신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내돈 내산 뒷광고 논란이 쉽게 잦아들지 않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 공고 심사지침과 함께 건전한 소비 및 거래 문화 정착을 위한 제재책을 발표했다. 우선 정부가 정부만이 내놓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한 상태다. 그렇다면, 신뢰 에너지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거래를 맺어 가는 우리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자신이 숙지하고 있어야 할 거래 내용들은 되짚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친구와의 시간 약속, 업무 상의 비밀 보안 유지 계약, 배우자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겠다는 서약, 사회와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맹세 등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거래들을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머릿속 혹은 서류 상의 약속, 맹세, 계약 등의 세부 사항들을 수시로 꺼내 읽어보면서 거래를 통한 신뢰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려 노력해 보는 거다. 혹 한 발짝 더 나아가 거래를 통한 신뢰 강화를 목표로 삼는다면, 나무를 통해 숲을 보듯, 우리를 둘러싼 이 수많은 거래 사항들을 통해 거래가 빚어 놓은 신뢰의 끈을 살피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과연 그때 그 약속이 악마와의 거래이었던 것은 아니었을지를 되물으며 거래와 거래당사자와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들을 유지시켜주는 신뢰를 점검하는 데까지 나아가 보는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 그렇다면 저와 계약을 하시죠. 어떤 인간도 누리지 못한 즐거움을 누리게 해 드리겠습니다. (악마는 파우스트를 타락으로 이끌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했고 속으로 몹시 즐거워했다. …) 대신에 그것을 계약했다는 증거로 서약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 네, 고맙습니다. 저도 하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대신 그것을 증명하는 내용을 적어 서명을 해 주십시오.

- 요한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 비극 제 1부 중에서


계약을 운운하는 악마를 언제 어디에서 마주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맺고 있는 거래와 관계, 신뢰에 관한 지속적인 점검이 잘 이루어진다면, 언젠가 계약서를 내미는 악마에게 조목조목 따져볼 수는 있지 않을까. 어쩌면 ‘결코 내 영혼만큼은 팔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윽박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1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학자 파우스트를 두고 하나님과 내기를 한다. 평소 인간을 증오하던 메피스토펠레스는 제 아무리 선량한 인간이라도 쾌락과 향략으로 가득 찬 자신의 제안을 참아내지는 못할 거라고 장담한다. 이에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계약을 제안한다. 파우스트의 욕망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삶을 제공해 줄 테니 그 대가로 영혼을 팔아넘기라고 하는 내용이다. 때마침 수년간의 연구가 진척을 보이지 않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던 파우스트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고 자신의 영혼을 걸고서 계약을 맺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