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을 보냈습니다)

K-이모티콘, 눈치 문화를 담다

by 프로이데 전주현

정기적으로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편집장님의 허락 하에 해당 글의 전문을 브런치에도 옮겨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의 2021년 3월호에 실린 기사로 원문 링크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klschool.co.kr/mag1.php?mode=view&bid=609&page=1







“좀 더 빠르고! 간결하고! 편리하게!” 언어에서도 경제성을 따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발화나 문자 외에도 제스처나 의복, 헤어스타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신체언어를 소통 수단으로 활용해 왔고, 언어 매개체 또한 전화, 편지, 이메일 등으로 다각화해왔다. 급기야 손에 컴퓨터를 휴대하고 다니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언제 어디에서나 소통에 임할 준비를 하고서 지하철을 타고 회의실을 들어가며 잠자리에 들기 이르렀다. 그런 일상 중 종종 마주하는 독특한 풍경이 있었으니, 바로 말도 글도 아닌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인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모습이다.


눈이 웃거나(^_^) 입이 웃는(:^)) 얼굴 표정에서 볼 수 있듯, 초창기 이모티콘은 문장 사이사이에 어우러지는 문자와 기호, 숫자의 조합 그 자체였다. 반면 오늘날 이모티콘은 크기도 제각각이며 형형색색의 채색과 모션, 경우에 따라서는 사운드까지 들어간 일종의 시청각 자료로, 꽤나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카카오프렌즈 프렌즈 홀리데이 이모티콘 중에서 1)

이런 이모티콘을 문자 메시지에 사용하는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센스 있는 이모티콘 사용은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는 문자 간 소통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어떨 땐 말보다도 더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하여 소통의 오해를 줄이고, 대화 분위기를 주도하기까지 한다. 또한 대화 상대방에게 비치고 싶은 발화자의 모습을 대변하는 수단으로도 쓰여, 대화 중 자신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보조 수단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모티콘의 요란한 이미지 연출로 대화 흐름이 끊긴다는 혹평도 이어진다. 과도한 이모티콘 사용은 메시지에 담긴 진심을 의심하게 할 수 있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 표현을 고민하지 않고 메시지의 핵심 키워드 혹은 감정을 하나의 시(청)각 이미지로 대충 뭉개 버리는(?) ‘성의 없는 대화법’에 익숙하게 한다는 주장도 잇따른다.


이모티콘의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모티콘을 사용한다. 아니나 다를까, 국내 온라인 이모티콘 시장규모는 2018년 기준 1,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스브스 뉴스). 클래스101과 같은 플랫폼에는 아마추어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한 ‘이모티콘 제작 수업’이 인기 커리큘럼으로 추가되었다. 게다가 스마트폰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이모티콘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따로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이모티콘을 고르고 구매하거나 기프티콘으로 선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모티콘의 열성적인 사용자들은 매달 200 초코(카카오톡의 기본 이모티콘 가격으로 2,000원에 해당하는 금액) 정도는 꾸준히 소비하였고, 급기야 카카오톡은 지난달부터 '이모티콘 무제한 사용'을 내용으로 한 월 구독 상품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모티콘 콘텐츠화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모티콘이 전 세계 사람들의 언어 트렌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이모티콘(K-이모티콘)’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다는 거다. 이를 '디지털 시대, 한국의 소통 문화’라며 확대 해석해선 안 되겠지만, 한국 문자 메시지 속 문화 요소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한국인의 언어 습관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각자의 언어 습관을 되돌아보며, 문화 간 의사소통을 위해 주의할 사항들을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Looking Out, Looking In(2007), The Silent Language(1959) 2).


서구 문화권에서 많이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이모티콘 발신자의 메시지가 묵살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와 담백한 모션 혹은 디자인을 자랑하는 반면, K-이모티콘(특별히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여러모로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문자에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게 할 정도로 크기가 큰 것들이 많다. 캐릭터의 모션도 대체로 과장되어 있고 감정 표현도 풍부하다. 이모티콘의 종류 또한 천차만별인데, 그중에는 상황별로 쓰임새가 다른 이모티콘(예: 직장에서 쓰기 좋은 이모티콘, 커플 혹은 썸녀/썸남 사이에 쓰면 적절한 이모티콘, 명절이나 공휴일 인사용으로 제작된 이모티콘)이 많다. 때문에 대화 시기와 상대방에 따라 여러 이모티콘을 바꿔 사용하는 기억력과 센스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페이지의 ‘카카오 프렌즈’ 검색 화면 스크린샷

때로는 연인/소울메이트에게 적합하거나, 평창 올림픽 시즌 중에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고충을 표현하거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다양하게 연출하거나 (좌측 상단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혹자는 위와 같은 K-이모티콘의 특징을 보고서 ‘그저 화려하고 상업화된 국내 이모티콘 시장의 모습이군’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K-이모티콘이 우리나라 특유의 눈치(/배려) 문화를 잘 담아냈다는 해석을 덧붙일 수도 있다. 눈치는 상대방의 기분과 상대방과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분위기 모두를 읽는 능력(?)으로, 관계 중심적인 용어다. 영어로도 'nunchi'라고 번역될 정도로 한국적인 문화 개념이기도 하다. 어쩌면 직설적 언어를 지양하는 우리들의 언어 습관에서 곧잘 드러나는 한국성 그 자체인 셈이다(물론 보란 듯이 비수 같은 말로 마음을 찌르는 한국인들도 있지만).


예를 들어, 스릴 넘치는 칼출근을 앞둔 친구가 단톡방에서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지각이냐 아니냐 하는 출근길을 마주한 친구에게 발 빠르게 움직이거나 날아가는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주면 그만한 응원이 없다. 또는 저녁 약속 일정을 조율하는 단톡방에서 연이어 퇴짜를 놓는 사람을 향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난처하다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냄으로써 당혹스럽다, 혹은 불만스럽다는 의사를 은근슬쩍 표현해 볼 수도 있다. 직장 동료와 상사와 함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경우, 각종 업무 보고가 잇따르는 사이에 손그림처럼 심플하지만 장난스러운 이모티콘을 사용했다가는 진지한 업무 분위기에 초를 칠 것만 같다. 그럴 땐, 차라리 이모티콘 없이 문자 그대로를 사용하거나 텍스트가 부각되는 직장용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이모티콘 사용은 ‘상황에 따라 어느 이모티콘을 쓸지 안 쓸지, 쓴다면 어떤 이모티콘을 쓰는 게 센스 있을지,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면 왜 그러한지’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하나같이 한국의 눈치 문화로 해석될 수 있다.

니니즈 죠르디 TV 이모티콘 중에서 4)3

언제 어디서든 메시지에 답을 할 수 있지만 때로는 답을 해야만 하는 시대(소통 재촉에 지쳐만 가는)에 살고 있다. 소통 매개체와 수단이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만으로는 부족한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받고 보내지만, 그중에서 핵심을 찌르는 말이나 나(발화자)와 남(대화 상대방) 모두를 세워주는 말은 꽤나 적어 아쉬움이 크기도 하다. 그때마다 같은 메시지라도 어떻게 표현하며 전달할지를 고민하면서 ‘지혜로운 입술(잠언 20장)’을 지키기 위해 기도하자고 몇 번이고 다짐한다. 이모티콘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지혜로운 입술’을 지키려는 부담감을 조금 덜기도 하지만 ‘정말 이모티콘 하나로 충분한 걸까’하는 의구심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아무리 눈치를 살피려는 배려심을 담았더라도, 과연 이모티콘이 나의 말과 기분을 온전해 대변해주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걸까. 이모티콘 하나에 갖은 생각이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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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첨부 이미지 출처: https://emoticon.kakao.com/items/A3Mn-eTnttbifPjerPs-EB3iRgs=?lang=ko&referer=share_link

2) Adler, Ronald Brian, and Russell F. Proctor. Looking out/looking in. Thomson/Wadsworth, 2007. Hall, Edward Twitchell, and T. Hall. The silent language. Vol. 948. Anchor books, 1959.

3) 첨부 이미지 출처: https://emoticon.kakao.com/items/R6rE3ArHRZ7fcsQTk4R0jEy8klg=?lang=ko&referer=share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