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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Aug 31. 2020

1. 유럽을 "공부"하려고
벨기에 뤼벤에 착륙했습니다

그러나 기숙사에 들어선 첫날, 의식의 흐름 말고는 남는 게 없었다고

16년 9월 21일 수요일


2012/13년 겨울학기가 시작하기 한 달 전. 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S-Bahn을 타고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구텐베르크의 도시, 마인츠(Mainz)로 향했다. 그 당시의 나는 전공이었던 독일어와 사랑에 빠져 있다시피 했고, 독일어를 독일에서 배우고 쓸 수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행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독일어를 배우는 게 너무 재미있다 보니, 독일이 위치한 유럽이 궁금해졌고, 자연스레 유럽연합에도 관심이 갔으며, 끝내는 유럽을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인츠 교환학생이라는 신분은 '공부'를 가장한 '문화 체험, ' 흡사 '놀이'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후. 가을에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뤼벤(Leuven)을 찾은 지금, 나는 그때처럼 마냥 놀지만은 못하겠구나, 하고서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번에 유럽을 찾은 것은 무엇보다도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을 "공부"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학위 취득을 위해서는 책임감 있게 임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결코 지난 교환학생 시절(아아 그 장밋빛 같던, 초콜릿으로 가득하던 시절!)과는 분명히 다른 하루하루가 펼쳐질 거라 장담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학기도 아닌 1년이다. '유럽에서 살아본다'하는 느낌은 확실히 더 선명히 다가올 테니, 학위 취득 외에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 기대해 본다.


뤼벤 기숙사 Waterview의 전경. 이름대로 정말 '워터뷰'일지?

기숙사에 들어와 이제 막 이케아에서 사 온 침구류를 깔고 천장을 보고 누우니 별 생각이 다 든다. 독일 마인츠 대학교의 최저가 (그러나 최고로 낡은) 기숙사 인터아인스(Inter 1), 그곳에서 쓰던 남녀 공용 욕실을 떠올려 보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지금 들어와 앉아있는 이 기숙사는 참 좋다. 좋다고만 못하겠다. 고급지다,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개인 화장실이라니, 황홀할 지경이다(화장실 청소를 해야겠지만 뭐 어떤가). 그 호화로운 개인 화장실에 가장 어울리는 물건은 출국 직전 다이소에서 구입한 2000원짜리 걸이형 건조대다. 아주 스스럼없이 뤼벤 기숙사 화장실에 잘 어울린다.


개인 화장실 생각에 흐뭇해졌던 것도 잠시,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을 다 풀지도 못하고 이케아로 직행한 어제가 떠올랐다.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유럽 어디에서나 그렇듯, 이케아는 언제나 직접 찾아가기 귀찮은 곳에 위치해 있다) 값진 일정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고 있지 않는가. 안 그랬으면 매트리스 위에서 쪽잠을 자다 새벽에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아. 그러고 보니. 저 짐을 풀긴 풀어야겠다.


이케아에서 사 온 것들로 얼추 꾸며본 기숙사 방. 왼쪽의 문을 열면 '호화로운' 개인 화장실이!

어렵게 짐 풀기를 다짐한 것도 잠시, 난관에 부딪혀 버렸다. 당장 밥을 해먹을 수가 없다!!! 벨기에의 콘센트가 분명 220V라고 들었는데, 한국과 같은 220V여도 콘센트에 웬 막대기가 툭 튀어나와 있어 '멀티 돼지코' 없이는 기껏 케리어에 '구겨(?)' 넣어온 초소형 쿠쿠 밥솥과 큼지막한 멀티탭이 무쓸모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어서 빨리 '멀티 돼지코'를 구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핸드폰 충전기는 어뎁터가 납작하게 생겨 그 비쭉 튀어나온 벨기에 식 콘센트 막대기가 있어도 잘 꽂힌다. 핸드폰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세상과 잠시 단절된 채,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는 국제 미아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To. Readers

uns(우리에게: [운스]): 우여곡절 시작된 나의 유럽 유학기를 기록하게 된 건 16년도 가을이 처음. 지금으로부터 거의 4년 전의 이야기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시간은 정말 잔인하게도 흐른다). 코로나로 인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눈과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다시 한번 들춰보고 꺼내보고 정리해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16년도 가을학기를 시작으로 1년간 펼쳐질 나의 유럽 유학기, 일종의 기록의 재기록화이자 추억의 재구성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언제든지 떠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우리들(여기서 우리란 나를 포함한 이 글의 독자들, 앞으로는 독자들을 독일어의 '우리에게'에 해당하는 대명사 uns(운스)라고 불러도 좋다면 감히 그렇게 부르고 싶다)에게 이 곳에서의 재기록, 재구성 작업들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레 첫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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