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안될까?
16.10.16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317번 버스를 타고 브뤼셀에 있는 한인 교회로 향했다. 버스 맨 뒷좌석들은 디귿자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기 적합한 곳이었다. 디극자 모양의 좌석들 중 구석에 앉아 있던 나는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에 올라 탄 한국인 학생 두 명과 인사하고는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한국인 학생 두 명이 탈 때 흑인 아저씨 한분 또한 우리와 가까운 곳에 앉게 되었는데, 이분과 눈이 마주친 우리 셋은 약 25분 간 버스 토크쇼를 벌이게 되었다.
아저씨의 이름은 힐러리였다 (트럼프와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 후보로 경합을 벌이던 때라 그런지 아저씨의 이름을 금세 외울 수 있었다). 듀라셀 건전지 회사에서 일하는 힐러리는 유럽 정책을 공부하러 온 나와 두 명의 한국인들이 함께 듣는 수업이 '유럽 환경 정책'이라는 걸 듣자, 자신이 요즘 환경 정책에 관심이 많다며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그 밖에도 힐러리는 한국에 관한 질문과 유럽에서 공부하는 우리들의 삶에 관한 질문들도 연이어하곤 했다. 처음 만난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붙임성을 보여준 힐러리 덕분일까, 주로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교회 행 버스길이 재밌어졌다.
우리가 브뤼셀 한인교회로 가고 있듯, 힐러리 또한 흑인 침례교회에서 여는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고 말했다. 주일 예배를 대하는 힐러리의 태도는 단정히 차려입은 복장에서도 또렷이 드러났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전에 아프리카 부룬디로 해외 선교를 떠나서 마주한 주일 풍경이 생각났다(이때 그 주일 풍경이라 함은, 2-3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가기 위해 꽤 많은 부룬디 사람들이 한여름에도 정장을 쏙 빼입고 뚜벅뚜벅 비포장도로를 걸어가던 풍경이다. 예배를 열심히 준비하는 사랑스러운 풍경이다). 언제 한번 차 한잔 하자던 힐러리가 버스에서 내린 후, 나와 한국인 학생 두 명도 곧 버스를 내렸다.
예배를 드린 후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처음으로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스카이프 화상 전화를 해 보았다. 화면 속에 보이는 지극히 사적이고 일상적인 풍경들, 예를 들어 아빠가 목이 늘어지도록 입고 다니는 홈웨어 티셔츠와 엄마의 빨강 홈 원피스를 보기만 해도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처음 하는 화상 통화에서 펑펑 울기는 싫었기에, 영상 화질과 통화 음질이 안 좋다고 트집을 잡고선 로그아웃을 했다가 다시 접속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과정을 틈타 얼른 화장실에서 휴지를 가져와 눈물을 훔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엄마 아빠를 마주하며 그간의 근황을 나눴다. 언제 어디에서든 누군가와 쉽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그날그날의 순간을 공유할 수 있지만 역시 얼굴 맞대고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가족과 이야기하는 것만큼 생생하고 행복한 경험은 없을 거다. 유학 생활을 통한 즐거움과 기쁨은 분명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건 역시나 괴롭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의 우리들은 어떠한가요? 남들에게는 못다한 이야기를 그들에겐 하는지, 남들에게도 하는 이야기만을 그들에게 하는지. 그들을 대하는 자세는 또 어떠한가요? 눈을 바라보는지, 눈을 바라보는 척이라도 하려고 콧등을 바라보는지, 턱을 괴고 자세를 그들 쪽으로 숙이고 있는지, 팔짱을 끼고 턱을 가슴 쪽으로 당기고 있는지. 어떤 눈빛과 자세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나요?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기는 하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