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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07. 2020

9. 앙샹떼(Enchanté), 나의 다섯 번째 외국어

네덜란드어를 쓰는 뤼벤에서 프랑스어 수업을 등록하다

16.10.17 월요일


네덜란드, 프랑스, 룩셈부르크,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일까, 벨기에는 독일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이렇게 무려 세 가지의 공용어를 갖고 있다. 수도인 브뤼셀에서는 프랑스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반면, 그곳에서 기차로 30분 떨어져 있는 이곳 뤼벤은 네덜란드어를 많이 쓴다. 때문에 나와 같은 외국인 학생들 개강 1주 차에 교수님들에게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은 이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네덜란드어를 배워야 할까요, 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교수님들은 '네덜란드에서 살거나 네덜란드어를 쓰는 지역에 취직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굳이 네덜란드어를 배울 필요는 없다'면서 실용적인 답변을 주셨고, 오히려 국제관계와 유럽연합을 공부할 때엔 아무래도 프랑스어만 한 게 없다는 데 거듭 동의하셨다. 벨기에에 있는 동안 프랑스어 공부를 계속해 볼까,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대답이었다.


프랑스어는 내가 영어와 수능 일본어, 그리고 전공인 독일어 이후에 접한 네 번째 외국어로, 그 어떤 강제성도 없이 '그냥 궁금해서' 공부를 시작한 언어이다. 혹 독일어를 처음 배웠을 때만큼, 프랑스어가 나와 잘 맞는다면 훗날 <어린 왕자>를 원문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제 아무리 잘 번역한 책이라 하더라도 원문만큼 생생하고 멋지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던 터라,  사랑하는 이야기 <어린 왕자>만큼은 원문으로 읽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어린 왕자>를 만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뤼벤에 오기 전, 나의 불어 수준은 이제 막 강남의 한 프랑스어 학원에서 A1 단계(유럽 언어 공통 기준 중 가장 낮은 단계로 왕초보-초보 등급)의 불어 수업을 수료한 상태였으니까. 혹 뤼벤대학교에서 어학센터를 운영한다면 A1 단계 수업부터 다시 수강하고 싶었다. 기초를 다시 다져가며 프랑스어와 친해지길 바랐다.


16년도 뤼벤대 가을학기 개강을 알리던 10월 OT프로그램 중에는 '생존 네덜란드어'라는 코너가 기획되기도 했었다(왼쪽 팜플릿 사진은 네덜란드어 맛보기 수업 자료의 일부다)


수소문 끝에 나는 CLT라는 뤼벤 시의 어학 교육 센터를 알게 되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 등록을 하러 갔다. 41.70유로에 한 학기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이렇게 저렴할 수가! 설레는 마음으로 두꺼운 교재들을 받아 들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CLT의 어학 수업들은 꼭 뤼벤대 학생들만을 수강생으로 받지 않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강의실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때문에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구성 국적, 직업, 연령 등 여러 방면에서 유독 다양했다. 수업 첫날부터 불어 선생님은 자신은 벨기에 왈롱 지방 출신인 베르나데트라고 소개했고, 나를 포함한 클래스메이트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30대 초반의 밀라노 출신 여자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고, 캐나다 사람과 결혼한 네덜란드 여자는 처음 배우는 불어가 참 어렵다며 엄살을 떨었다. 이제 막 20살이 된 베트남 남학생은 안트워프에 거주 중이며 뤼벤대에 재학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소개하는 내내 뤼벤대 학생이 된 것에 대한 자신감이 얼마나 많이 뿜어져 나오던지, 과잠바를 입고 대학가를 어슬렁 거리서울의 대학생들이 떠올랐다), 50대 군인 아저씨와 폴란드 남자 두 명이 수줍게 인사를 이어가던 때, 첫 수업부터 지각해버린 여자 한 명이 강의실로 들어왔다. 그녀자신을 페루 출신의 심리학자라고 소개했는데, 때마침 나PD의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을 너무 좋아해 몇 번이고 돌려보던 나는 그 친구가 페루 출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반가웠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상황이 참 재미있었다. 역시나 어느 지역에서건, 어딘가에 정을 붙이는 데 큰 몫을 하는 건 사람들이다. 뤼벤에서 있을 동안 프랑스어를 공부해야지, 하고 다짐한 것을 실천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지 않은가. 덕분에 뤼벤에서의 삶 더 풍요로워질 것만 같다.



CLT 불어 수업을 등록하러 가던 날의 하늘은 이렇게나 멋졌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여담이지만, 이렇게 CLT에서 불어 수업을 듣고 파리에 수업을 들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불어 수업을 듣고 3개월 정도 지나서 파리를 찾은 셈인데, 크로와상 샌드위치 주문을 위한 대화를 완벽히 하는데 정확히 딱 3일 걸리더군요. 역시 언어는... 책상에서 공부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그렇지만 책상 공부 없이는 실전 공부도 없었겠거니 하고서 여전히 책상과 현장을 왔다갔다 하면서 외국어와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만난 사람들, 그때 경험한 사건 사고들이 있나요? 저는 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수업에 비해 언어 수업만이 가진 특유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가 참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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