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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08. 2020

10. 성모 마리아가  도서관 위에서 칼을 들기까지

뤼벤의 지성은 날아다니는 파리의 심장까지도 꿰뚫을지니!

16.10.18 화요일


한국에서 보내 준 겨울 옷들을 받고 반가운 마음 아직은 조금 더운 벨기에의 10월 날씨에도 개의치 않고 얇은 스웨터를 입고 나갔다. 휴강 소식을 접한 건 땀범벅이 되어 강의실 앞에 도착한 때였다. 땀 좀 났으면 어떤가, 휴강이라는데. 내 시간이 생겼다. 역시나 갑작스러운 휴강은 (조금은 화가 나지만) 벨기에서도 반갑기 그지없다. 어서 기숙사로 돌아가 겨울옷과 함께 한국에서 날아온 '생생우동' 하나를 뜨끈하게 끓여 먹고 싶다.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중앙도서관 앞 광장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우리 학교, 뤼벤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모를 자랑하는 도서관이다. 아름다운 첨탑에서는 매 시간마다 정시에 종소리가 울리는데 가끔 불어 수업이 끝나고 늦은 밤 기숙사로 돌아갈 때는 종탑에서 1분 여간 연주되는 종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걷기도 한다. 종탑 연주를 위한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있는 건지, 매번 뤼벤의 콰지모도를 떠올리면 도서관 앞을 지나다.


황금칼을 손에 쥔 성모 마리아 상으로 장식된 뤼벤대학교의 중앙도서관 첨탑.

도서관의 외관을 살피다 보면 종탑 쪽에서 재미난 관람 포인트를 찾아볼 수 있다. 종탑에는 성모 마리아 상이 장식되어 있는데 (물론 이는 유럽에서 굉장히 흔한 장식이다), 웬일인지 성모 마리아 상이 황금색 칼을 들고 서 있다. 이는 유럽에서 드물기를 넘어서 유일한 볼거리라고 여길 정도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가 칼을 쥐게 된 이유를 들어보니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전락해 버린 벨기에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었다.


뤼벤대학교가 1425년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중요 학술 자료들은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폭격으로 불길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리고 추후 도서관 재건축을 계획할 때, 뤼벤 시는 지식의 보고를 겨눈 폭력과 전쟁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칼을 든 성모 마리아'로 표현다. '오죽했으면 성모 마리아가 칼을 들었겠어!' 하면서 전쟁에 관한 비판적 태도를 아낌없이 표현한 것이다. 뤼벤대학교가 중세시대 때부터 명맥을 이어오던 가톨릭 대학교라는 점에서 성모 마리아 상이 지닌 상징성은 어마 무시하다. 또한 중앙도서관이 대학교의 얼굴과도 같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중앙도서관의 외관을 이렇게 꾸민 것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하지만 칼을 든 성모 마리아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중앙도서관 바로 앞에 위치한 거대한 현대 미술 조형물로, 커다란 바늘에 파리 한 마리가 뒤짚혀 꽂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아도 전혀 이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조형물에도 중앙 도서관의 성모 마리아 상만큼이나 비장한 뜻이 담겨 있었다. 조형물 뤼벤이 뤼벤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성의 도시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이를 과감하게 나타내고자 했다. 뤼벤의 날카로운 지성, 지성의 힘을 표현하고자 했다. 때문에 '날아다나는 파리 한 마리조차 놓치지 않고 꿰뚫는' 뤼벤의 지혜로운 면모를 (굳이 저렇게... 징그럽게) 연출한 것이다. 멋진 뜻이 담겨 있긴 하지만 현대미술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불어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주한 중앙도서관의 야경. 파리 조각상은 밤에도 돋보인다. 허허(이거 참 난감하구먼)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뤼벤 도서관은 외관만큼이나 내부가 참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도서관 투어를 하면서 옆에 있던 마케도니아 친구에게 '도서관이 꼭 호그와트 성 같지 않느냐, 너무 이쁘다'라고 했더니, (알고 보니 나처럼 해리포터 광팬이었던) 그 친구가 격하게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곧 개봉하는 '신비한 동물사전' 영화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급격히 친해졌고(역시 해리포터는 전 세계 90년대생을 이어주는 아이콘이다), 추후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오늘 호그와트 어때?' - '좋아!' 하고선 먼저 도서관에 도착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를 맡아주는 스터디 모임도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처럼 도서관에서 만들어 나간, 도서관에서였기에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우리들만의 인연, 이야기가 있을까? 인연과 이야기의 시작 지점이 다른 곳도 아닌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좀 더 오래오래 보관되고 기억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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