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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09. 2020

11. '그 어느 곳에도 없는 나라'에 잘 오셨습니다

<유토피아>의 500번째 생일을 축하하다

16.11.01 화요일


지난달부터 뤼벤은 축제 중이다. 축제의 주인공은 출간 500주년을 맞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대입 논술 예제로만 종종 접하던) <유토피아>의 초판본을 인쇄한 곳이 뤼벤이라고 한다. 저자인 토마스 모어가 직접 뤼벤 땅을 밟아본 적은 없지만 모어의 절친 에라스무스가 뤼벤의 한 자그마한 인쇄소를 추천하면서 <유토피아>와 뤼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뤼벤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대학 도시이자 학생 도시이고 지식의 도시였다. 때문에 다른 곳도 아닌 뤼벤에서 <유토피아>가 처음으로 세상 빛을 본 것이 어찌 보면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쩌면 뤼벤에서 책을 인쇄해 보는 게 어떠냐는 에라스무스의 제안을 모어가 내심 반겼을지도 모른다. 


출간 500주년을 기념하는 유토피아 축제는 Museum M, 뤼벤대학교 중앙박물관 그리고 구 시청사 앞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 등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전시 콤보 티켓을 팔고 있으니 따로 티켓을 세 번 이상 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 그중 나는 Leuven Leisure라는 관광 여행 업체에서 진행하는 투어에 참가했다. 두 시간 정도 소요되었던 투어는 뤼벤 곳곳을 걸으며 <유토피아>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워킹 투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유토피아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음식과 결혼, 복장, 無 계급, 종교의 자유 등에 관한 TMI가 두 시간 내내 계속되었다. 



Museum M 유토피아 전시의 마지막 전시실은 관련 서적들을 자유롭게 읽어볼 수 있는 루프탑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500살이나 먹은 책 한 권이 지닌 위력은 상당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토론 주제로 삼을 만한 것들도 많이  보인다. 시대를 막론하고 시사점을 던져주는 작품이니 고전이라는 명예 타이틀을 거머쥔 게 아닐까. <유토피아>가 출간된 이후, 유럽은 다양한 분야에서 연이어 새로운 시도들을 했다고 한다. 교회는 에덴동산과 유토피아를 비교 분석하면서 창세기 공부에 다시 집중하게 되었다. 예술가들 또한 에덴동산에서 유토피아에 관한 영감을 재발견하고, 그와 비슷한 '동산'을 집 앞마당에 꾸려보고자 했다. 자그마한 울타리 안에 정원을 마련하고 수 십 개의 꽃이 만개한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그려내거나 조각하기에 힘썼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수평선 저 멀리 있을지도 모르는 신대륙이 곧 유토피아일 거라는 발상을 하게 되었고,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고자 지도를 제작하고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반면 천문학자들은 과학의 발전이 유토피아의 발견을 앞당길 거라고 굳게 믿고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별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연구하기 힘썼다. 


'그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유토피아가 이처럼 종교와 예술, 정치, 과학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영향을 끼칠 줄 누가 알았으랴. 저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만 있다면 모어의 생각을 묻고 싶을 따름이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환상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외치며 양 손을 반짝반짝 흔드는 놀이동산 직원들의 인사가 괜히 슬프게 보인 적이 있다. 유토피아, 이상향, '그 어느 곳에도 없는 곳'에 관한 생각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 현실을 더더욱 되돌아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를 접하고 난 후의 마지막, 나는 결코 동화 같지만은 않은 현실을 바라보며 내가 꿈꾸는 곳에 가까워지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우리들의 환상의 나라는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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