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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10. 2020

12. 독일 프랑스,
"디낭은 적진으로의 통로일 뿐"

우리들의 역사의식이 겉보기에만 화려한 특산물 쿠기가 되지 않기를

16.11.01 화요일(어게인)



공휴일이다(All Saints Day라는데 종교적인 휴일이라는 것 말고는 무슨 날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유학생이 아닌 여행자의 옷을 입고 밖을 나가자며 한인 교회로 종종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한국 학생 두 명에게 '당일치기 여행'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 우리들은 뤼벤역에서 만나 'weekend ticket(주말이 아닌데도 공휴일이라 끊을 수 있었던)'을 끊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디낭(Dinant). 편도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는 디낭에 도착하기까지, 밀폐용기에 담아온 크렌베리를 한 주먹씩 먹기를 반복하면서 창밖을 구경했다(기차에서 내린 뒤에야 손이 크렌베리처럼 시뻘겋게 물들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디낭에 도착하자마자 이 지역의 시그니처 포토존이 눈앞에 펼쳐졌다. 샤를 드골 대통령의 동상 뒤로 뫼즈 강이 흐르고 있었고, 요새 역할을 하던 성 시타델을 산머리 위에 이고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성당 옆으로 알록달록한 집들이 쪼르륵 모여 있었는데, 뫼즈 강 수면 위에 색색의 집들이 반사되어 쌍 무지개가 뜬 것 같은 풍경이었다.


디낭의 분위기를 한 장의 사진으로 요약한다면 바로 이 풍경이지 않을까. 아기자기하다가도 돌 산의 웅장함이 돋보인다.


다리를 건너 디낭의 왼편으로 먼저 걸어보았다. 공휴일이라 문 닫은 상점들이 많았지만 네덜란드어를 쓰는 뤼벤과 다르고 불어로 빼곡히 채워진 디낭트의 상점 간판들을 보니, CLT 불어 수업을 이제 막 듣기 시작한 나로서는, 이 간판 저 간판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걷는 도중 부동산 광고물들을 몇 개 접하게 되었는데, 세상에 유럽 부동산에는 성이 매물로 나와있다. 산책 도중에는 디낭의 특산물 같은 쿠키를 파는 빵집들도 적잖이 보였는데, 아무리 봐도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는 쿠키였다(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빵순이의 촉이다). 

빵순이의 촉이 왔다. 아, 이 쿠키는 맛이 없겠구나!

색소폰 창시자 아돌프 삭스(Adolphe Sax)의 집이 무료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길래 잠깐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이후에는 Leffe 수도원(그렇다, 디낭은 벨기에 맥주 Leffe의 양조장인 Leffe 수도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걸으며 산책을 하였는데, 가을날 햇살을 잔뜩 머금은 나무들 덕에 마음이 한껏 말랑말랑해졌다. 유독 단풍이 이쁘게 물든 나무 곁을 맴돌다가 나무 뒤쪽 위치한 한 식당에서 Plat du jour(오늘의 요리)를 14유로에 판매한다는 걸 발견했다. 가게 분위기도 아기자기하니 괜찮아 보이길래 함께 여행 중이던 한국 학생 둘에게 제안을 해보았다. 그러나 두사람은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며 아싸리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웬 카페테리아에서 샌드위치를 먹자고 했는데, 분위기가 영 별로였다). 


디낭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규모가 작았다. 이토록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처참히 짓밟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디낭의 산? 언덕? 위에 위치한 시타델의 내부는 여느 성과는 달리 역사박물관 요새와 같이 꾸며놓았고, 세계대전 당시 무차별하게 죽임을 당한 민간인들의 고통을 방문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서늘한 전시 분위기를 연출해 두고 있었다(TMI: 시타델로의 입장 루트가 400+계단이건 케이블카이건, 입장료는 8.5유로로 동일하다. 당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디낭을 즐기겠다며 계단으로 시타델을 올라갔다가, (엄청 후회하고선,) 내려올 땐 케이블 카를 탔었다).


시타델에서 내려다 본 디낭의 가을 풍경. 집들이 찌그러져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벨기에에서의 유학 생활은 확실히 새로운 관점에서 독일을 바라보게 해 준다. 독일만을 보고 독일만 경험하기 바빴던 학부시절과는 다르게, 벨기에에서의 유학생활은 독일의 영향을 받은/독일에게서 피해를 입은 주변 유럽 국가들, 그리고 독일이 몸 담고 있는 유럽과 유럽연합을 속속들이 배우게 된다.  아무래도 벨기에에게 독일은 이웃나라라는 키워드보다는, 전쟁의 트라우마와 피해에 관한 키워드로 가장 먼저 기억된다.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벨기에는 프랑스를 치러 가는 길목에 있는 통로, 들판 뭐 그런 존재였다. 디낭도 그렇게 독일군에게 짓밟혔고 불태워졌던 곳이다. 그랬던 독일이 이제는 유럽연합의 행정 수도 역할을 하는 벨기에 브뤼셀의 갖은 친EU적 분위기 형성에 앞장서고 있다는 건 참 재미난 관람 포인트이자 연구 과제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역사는 어쩌면 '관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어떤 국가나 사람, 공동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기록하고 엮어 나가느냐에 따라 악당이라고 손가락질받던 사람도 억울하기 그지없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전쟁의 경험을 거리 곳곳에 간직하고 있는 유럽의 오랜 도시들을 걸을 때마다, 그리 옛날의 이야기도 아니었던 세계대전이 얼마나 끔찍했었는지를 실감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고스란히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했지?'라는 식의 질문을 던지면서 한반도를 다시 바라보게끔 해준다. 역사에 관한 우리들의 생각, 경험, 의심...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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