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on. Connected.” 2018 평창을 떠올리며
능력주의(meritocracy)는 성과, 지능, 학력, 시험 성적 등 특정 결과로 개인을 평가하며, 그 결과에 어울리거나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지위나 힘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 때문인지) 능력주의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두 마음이 든다. 하나는 누군가의 노력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을 트집 잡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한 사람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존중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능력주의가 지나친 결과주의 혹은 시험 만능주의의 늪으로 우리들의 눈을 가리고, 성과를 내거나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 즉 ‘위너(winner)’만을 주목하는 결과를 낳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다. 특별히 후자는 우리가 능력주의에 눈살을 찌푸리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이자, 능력주의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모든 게 능력 위주의 평가로 돌아간다면, 자연스레 사람들을 줄 세우며 승자에게만 박수를 보내게 되는 사회가 되진 않을까. 시험에 떨어지거나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했거나 승진을 하지 못한 사람은 그저 ‘루저(loser)’에만 머물게 되는 게 아닐까. 능력주의는 ‘루저’를 받아줄 마음이 없는 걸까.
루저는 경쟁에서 패한 사람을 지칭하는 영어 표현으로, 언행과 경제력을 비롯한 여러 능력이 부족하여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체면을 구기는 사람을 지칭하는 데 쓰인다. 넓게는 사회가 세운 룰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결국 사회에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사람, 약자를 낮게 부르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종종 이모티콘 OTL과 같이 재기불능과 좌절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 1초와 1점을 쪼개서라도 시간과 점수 싸움을 벌이려는 능력주의와 등을 지고 있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루저와 능력주의를 적절히 융합하여 능력주의의 줄 세우기 경쟁에 도전장을 내민 세계적인 축제가 있다. 국제 신체 장애인의 체육대회인 패럴림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스포츠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라도, 능력주의에 관해 두 마음을 품어본 적이 있다면 한 번쯤 패럴림픽을 주목해 보길 권하고 싶다. 패럴림픽은 장애인들의 재활 의지*와 도전을 확인하는 자리인 동시에, 장애인들이 한 국가/사회의 대표 구성원으로서 살벌하게 1초와 1점 싸움을 벌이는 곳이다. 살벌한 경쟁과 메달 수여식만을 놓고 본다면, 패럴림픽 또한 결국 ‘능력주의의 축제가 아니냐’하는 혹평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가 장애인을 향해 ‘불능’이라고 낙인찍고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하위 집단으로만 살아가도록 여러 분야에서 그들을 차선시한다는 점을 떠올려 보았을 때, 패럴림픽은 능력주의의 판정을 보기 좋게 웃어넘겨 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패럴림픽은 보란 듯이 스포츠 세계의 법칙을 준수하면서도 좁게는 장애인, 넓게는 루저 또한 도전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장애인을 향한 능력주의의 판정, 예컨대 ‘뒤쳐져 있다’ 거나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속도가 늦다,’ ‘어설프고 실수가 잦다’라는 판정 또한 하나의 시각에 불과할 뿐, 결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장애인’ 선수들은 능력주의에 따라 세워진 줄 뒤편에 서 있던 ‘루저’들 또한 시합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인다. 안타까운 점은 패럴림픽이 던지는 시사점의 무게에 비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공중파의 경기 중계 편성도 적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 또한 적어 종종 뉴스 헤드라인에서 논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올림픽이 하계, 동계 구별할 것 없이 굳건한 팬덤을 지니며 비교적 더 쉽게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이다. 다행히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패럴림픽을 주최한 경험 덕에 패럴림픽에 주목하는 국내 대중이 조금은 많아졌고,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가 이전보다 조금 더 힘을 갖게 되었다.
때론 마지막으로 들어오더라도 최선을 다한 거니까
(Sometimes we came last, but we did our best).
영화 <주토피아(Zootopia)> 중에서
한국 최초의 동계올림픽이었던 2018 평창이 성공리에 막을 내린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패럴림픽 개최로 강원도 평창군과 강릉시, 정선군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평창 패럴림픽은 약 10일 간 ‘Passion.Connected.(하나 된 열정)”이라는 슬로건을 평창 동계 올림픽과 공유하며 총 6개의 빙상 종목과 설상 종목 대회를 선보였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모티브로 한 마스코트 반다비는 평창 올림픽의 수호랑과 짝을 이루는 동시에**, 팔 하나를 뻗으며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보여주면서 패럴림픽 선수들의 용기와 의지를 시각화했다는 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대회 내내 강릉 하키 센터로 출근을 하며 목격한 패럴림픽의 풍경은 올림픽 풍경보다 훨씬 더 복잡해 보였다. 올림픽에 비해 경기 종목 수는 대폭 줄었지만, 경기 중 선수들의 움직임을 돕기 위한 기구(휠체어나 썰매 등)가 동원되었다. 올림픽 특유의 스포츠와 국제 화합의 정신에 패럴림픽의 재활과 회복의 메시지가 더해져 대회 내내 에너지가 넘쳐났다. 특별히 올림픽 선수들 사이에서도 거칠기로 유명한 하키 경기는 패럴림픽에서 하키 특유의 몸싸움에 썰매 타기가 더해져 보는 사람의 심장을 쫄깃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장애인 하키 결승전을 보고 있자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오르며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패럴림픽은 올림픽만큼 격렬하지도 재미있지도 않다’라는 평가가 무색해지는 경기였다.
패럴림픽 대회장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모호하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무릎을 꿇고, 발과 다리가 되어주는 썰매에 올라타면 그 누구보다도 재빨라진다. 접전 끝에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면 메달리시트 리미티드인 ‘어사화를 쓴 반다비’ 인형도 손에 쥐게 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장애인 아이스 하키 결승전 모습. 아이스링크장 옆에서 이를 지켜보면 슥슥 얼음이 갈리는 소리에 심장이 한번 쿵, 거칠게 휘둘러대는 하키 스틱과 몸싸움에 한번 더 쿵하고 놀라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2020 도쿄 올림픽이 2021년 8월 8일 폐막했다. 올림픽 대회 중 공중파 방송국의 편성표는 평소와 다르게 올림픽 경기로 가득했다. 언론 소식 또한 메달리스트와 맹활약을 펼쳤던 대표팀의 소식, 혹은 올림픽 무대 뒷면의 자질구레한 뉴스들로 가득했다. 특별히 메달 획득과 상관없이 선수들의 노력과 비하인드 스토리, 도전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은메달을 획득하고서도 눈물을 흘리며 “죄송합니다”라고 외쳤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능력주의가 세운 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고나 할까나.
2018 평창이 그러하였듯이, 도쿄 올림픽 폐막 뒤에도 도쿄 패럴림픽이라는 축제가 뒤따라왔다(2021년 8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패럴림픽에 담긴 메시지와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자격 요건과 이야기를 참고한다면, 패럴림픽 또한 올림픽만큼 긴장감 넘치고 짜릿한 승부를 보여줄 거란 기대가 앞선다. 능력주의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고려한다면, 선수들의 도전이 단순 경쟁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큰 응원과 박수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혹 도쿄 올림픽 폐막식 소식을 접하며 ‘2년 후 파리 올림픽을 기다려야지!’ 혹은 ‘내년 겨울에 있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어떨까?’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우선 올림픽 뒤에 있을 패럴림픽을 앞서 기다리고 즐겨 보길 권하고 싶다. 능력주의가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찍은 루저라는 낙인이 그저 또 하나의 해석, 평가 결과에 불과할 뿐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경기장과 당신의 마음을 가득 채워줄 거다.
+ 능력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시험만능주의에 관한 읽을거리로 장강명 작가의 <당선, 계급, 합격>을 추천한다. 다 년간 기자 생활을 한 덕에 르포에 강점을 보이는 장강명 작가는 문학 공모전과 대기업 공채 시스템을 ‘좌절의 시스템’이라 칭하며 지망생의 세계와 합격생의 세계로 나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혹자는 또 마이클 센델의 <공정이라는 착각>과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관련 읽을 거리로 추천하기도 한다. 특별히 센델의 책은 능력주의에 관해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용 서적으로 필자 또한 시간을 들여 읽어봐야 겠다고 다짐한 책이다.
*패럴림픽은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의 재활을 위해 양궁대회를 개최한 것이 시초가 되어 국제 대회로 발전한 배경을 갖고 있다. 선수들의 용기와 도전만큼이나 재활은 패럴림픽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이다.
**수호랑과 반다비는 호랑이와 곰이라는 점에서 단군신화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단군신화 모티브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 데 모아 연출한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에서도 전 세계 대중들에게 소개된 바 있다.
***2018 평창 패럴림픽 하키 결승전 초반 캐나다는 동계 스포츠 강국의 실력을 여실히 보여주며 경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팀이 끈기와 뒷심을 보여주면서 금메달은 미국팀에게 돌아갔다. 우리나라는 동메달 획득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