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만 깎았을 뿐인데 여러 가지가 다듬어진다

오브젝톨로그: 손톱깎이

by 프로이데 전주현

1990부터 지금까지: 대구와 서울, 마인츠 (Mainz, Deutschland)와 루벤 (Löwen,Belgien)


피아니스트 엄마의 손톱은 늘 단정하다. 손가락 끝, 볼록한 쿠션이 건반 위에서 힘 있게 움직이려면 건반을 "타닥!"하고 때리는 기다란 손톱은 금기사항이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손톱은 엄마의 연주이자 엄마 자신이다.

형제자매 없는 어린 딸(바로 나다)은 여자로서 엄마를 닮아가는 게 전부라 생각한다. 딸이 손톱 깎는 걸 무서워할지도 모른다며 엄마는 스누피가 장식된 손톱깎이를 준비한다. "많이 자랐네!"란 말과 함께 스누피가 톡 소리를 내며 딸의 시간을 정리해준다. 어쩐지 모양새가 엄마의 손톱을 닮았다.

서울과 독일, 벨기에 유학길에 손톱깎이를 꼭 챙기면서 어린 딸은 큰 딸이 된다. 톡! 바짝 깎은 손톱 밑, 거무튀튀한 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유학 비용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 저렴한 식자재를 사고, 학교 일정에 밤낮이 바꿔 버린 지난날들. 톡! 자신을 충분히 돌보지 못했던 시간을 과감히 잘라낸다. 엄마처럼 부드럽고 강단 있는 연주를 하진 못하지만 대신 리듬감 있게 손톱을 깎는다. 타지에서 엄마의 손톱을 하고 나자 가족 톡방에 안부 메시지를 보낸다. 톡! 스스로를 가꾸고 향수병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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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오브옉톨로그 란 이름의 프로젝트에 기고햐 원고입니다. 주한독일문화원 인스타그램에서 원고의 독일어 버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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