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트랙 2022: 엉겁결에 2월

Philippians 1:6

by 프로이데 전주현



한 해를 시작한 우리들

한 해를 시작한 우리들에게



어느 달리기 경주의 출발점. 총성이 울리면 앞으로 뛰쳐나가려 집중력을 한 데 모으고 있는 선수가 있다. 한껏 웅크리며 스퍼트 자세를 취한 선수는 왠지 출발을 앞두고서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듯하다. 필사적으로 달려 나간 이 트렉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속도를 더 내야 할지, 미끄러지지 않게끔 제동을 걸어야 할지, 주변을 살피면서도 걸음이 뒤엉키지 않으려면 에너지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애당초 질문이 한가득인데 경기에 출전해도 되는 걸지.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가운데 총성이 울린다. 1월 1일을 기점으로 새로 쓰인 시간이 (믿거나 말거나) ‘축포’를 쏘아 올린 것이다. ‘아뿔싸,’ 하는 생각과 함께 일단 발을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그다음엔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 두 번째 걸음이 절로 뒤따라온다.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온 데 간 데 없고 자연스레 걸음걸음 사이에 일정한 호흡이 생긴다.


이윽고 2022년이라는 경주에 임하는 선수들의 인터뷰 영상이 경기장 스크린에 띄워진다. 경기를 앞두고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이 던져진다. 선수들의 대답은 크게 ‘설렘’과 ‘두려움’ 두 부류로 나뉜다. 경력이 1~2년 정도 된 선수들은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기라도 하는 듯, 소감을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당장 해야만 하는 것의 간격을 줄이고 싶다는 포부를 늘어놓다가도 계획한 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닌 게 바로 경기이지 않냐며 약간의 운과 타이밍에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인터뷰에 성실히 임하는 선수의 뒤로 더 이상 못해먹겠다며 경기장을 박차고 나가는 선수의 뒷모습도 보인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음악에만 반응하며 천천히 몸을 풀고 있는 선수도 있다.


놀랍게도 영상 속 선수들은 모두 동일 인물이다. 이 글을 쓰는 나의 모습이자 방금까지 카톡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던 가족, 친구의 모습이다. ‘시작’이라는 키워드 앞에 선 당신의 모습이다. 어쩜 그렇게 일관성 없는 태도를 취하냐고 묻겠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시작은 합격(pass) 또는 낙오(fail)란 평가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출발선에서 (내 경우에는 ‘어쩌다’) 내디딘 한 걸음이 반대쪽 다리의 걸음을 자연스레 불러온다고 해도 그 결과가 긍정적 일지 부정적 일지는 훨씬 나중에 판결이 난다. 절차도 제각각이다. 결승선에 다다르고 일련의 평가 시간을 거친 후에 결과를 곧바로 통보받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때에 따라서는 평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박수나 야유를 받는 선수도 있다. 시작은 불안정한 것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총성을 듣고 일단 경기에 임한 선수들이 일제히 누릴 수 있는 게 있다.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이다. 관객 한 명 한 명의 격려와 야유로 시작했지만 한 데 뒤섞여 선수들을 향해 분출하는 에너지가 되고만 소리다. 재미있게도 함성은 불안정한 시작에 안정감을 더해주며 선수들의 움직임에도 가속도가 붙게 한다. 발을 구르는 박자가 되어 들쭉날쭉한 헐떡임을 잠재운다.


불규칙적인 호흡이 규칙적인 리듬을 갖기까지 꾸준히 힘을 실어 주는 함성은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스스로를 모험가라 소개하는 제임스 후퍼(신사로 기억되는 jtbc 예능 <비정상회담>의 영국 패널이자 ‘쓰리 픽스 챌린지’ 등으로 유명한 활동가이다)는 함성을 내지르는 관객을 실제로 당신의 경주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가족, 멘토, 친구, 연인 등)이라고 이야기한다. 제임스는 저서 <원 마일 클로저>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주변 사람과 반드시 그를 공유하여 사람들이 끊임없이 당신에게 그 일을 묻고 점검하도록 하세요!’라고 외친다. 다른 선수들과의 교류가 안정감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익숙한 예로 가까운 이들과의 기도제목 공유는 서로의 경주를 끊임없이 점검할 구실이 된다. 잠시 잊고 지냈거나 소홀히 하던 목표를 잊지도 잃어버리지도 않게 해 준다.


한편 스스로 함성을 내지르며 페이스를 찾을 때도 많다. 스스로를 (감히) 기록가라고 소개하고 싶은 내 경우엔 버킷리스트(bucket list)나 투두 리스트(to do list) 등 스스로 이루고 싶어 하는 것과 이뤄야만 하는 것을 적어둔 목록들을 대조하면서 끊임없이 속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마련한다. 하루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매일 일기를 쓰려는 것, 자발적으로 독후감이나 후기글을 쓰면서 콘텐츠를 접하면서 남 모르게 품었던 생각을 마주하려는 것, 핸드폰 사진첩에 저장해 둔 사진 목록을 보며 ‘이 사진을 저장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지?’를 질문하는 것. 이 모든 루틴은 우물쭈물 시작한 나의 경주를 점검하고 그 경주에 일정한 스텝을 더하기 위함이다. ‘안정한 불안정함’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당신은 2022라는 트랙 위를 서성이거나 걷거나 뛰고 있다. 기도제목이나 버킷리스트, 소원 등으로 ‘시작’에 이름을 붙인 선수다. 내 경우엔 작년보다 “한 권의 책을 더 읽으며 지혜를 구하기를, 생계의 문제보다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며 이직을 준비하기를, 카페와 상점 등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에게 친절한 말을 건네기를, ‘식구’라는 표현에 걸맞은 저녁 식사 자리를 좀 더 자주 마련하기를,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 나의 몸에 좀 더 신경을 쓰기를,” 이란 긴 이름의 ‘시작’들을 마련해 두었는데, 당신의 시작은 어떨지 모르겠다.


경기 사전 인터뷰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을 늘어놓던 당신과 나는 한편으로 시작이 달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때마침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중에는 늘 같은 자리에서 당신과 나를 향해 응원 도구를 흔들고 있는 그분도 계신다. 불안정함 가운데 안정감이 조금씩 자리를 넓혀 간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하고서 발을 떼는 것은 그 덕분이다.


새로운 총성을 기다리며 스퍼트 자세를 취하고 있을 무렵, 다시 편지하고 싶다.

그때까지 부디 안녕히 지냈으면.






2022년 2월

당신의 동료 선수가








정기적으로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편집장님의 허락 하에 해당 글의 전문을 브런치에도 옮겨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의 2022년 2월호에 실린 기사로 원문 링크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klschool.co.kr/mag1.php?mode=view&bid=747&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