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의 질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고
10년 가까이 살던 곳을 떠나기 전, 포장 이사 담당자로부터 귀중품은 따로 빼놓길 당부받았다. 일기장과 각종 증명서를 한 데 모아 둔 비닐 파일, 인형 몇 개 말고는 귀중품이랄 게 없었다. 대신 그간의 살림살이(거창하게는 삶!)를 돌아보자는 마음으로 책장을 가장 먼저 마주하기로 했다. ‘혼돈 속의 질서’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풍경이었다. 찬가를 지어본다면 딱 이랬을 것 같다. “세로로 꽂은 책들은 곧 근위대 교대식이라도 할 것처럼 두 줄씩 빼곡히, 위 빈 공간에는 잡지와 덩치 큰 동화책, 공연 팸플릿이 가로로 아랫목 위 웅크린 고양이처럼. 너비가 작아서 책장 안으로 쑥 들어간 시집 앞은 오브제들을 위한 무대, 책장의 담쟁이덩굴 같은 크리스마스 전구를 조명 삼지! 막을 올리게, 주인장. 박수를 부탁하네, 친구여.” (책장이 담고 있는 건 결코 책만이 아니었지만,) 역시나 책이 가장 많았다. 귀퉁이를 접거나 페이지 여백에 메모를 하면서 천천히 씹어 먹던 책, 1장에서 멈춰버린 책, 전공 필독서라길래 샀으나 노트 필기로 독서를 대체하여 마치 새것 같은 책, 표지가 이뻐서 (다 아는 내용이지만 소장용으로) 산 책, 선물 받은 책(대게 이런 책들은 끝까지 읽지 못한다), 작가만 믿고서 샀다가 손에서 놓아 버린 책, 어린 시절 좋아하던 이야기의 20주년을 기념하며 나온 리커버 특별판 책. 저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책들이었다.
“이번 책만큼은 꼭 다 읽으셔야 합니다!”하고 클럽장님이 소개한 6월의 책은 재미있게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었다(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알려면 그 책을 일단 다 읽어봐야 한다 하하). 이 책 덕분에 앞서 말한 책장의 주인들(책들)에게 ‘비독서의 축복’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책들을 읽지도 못하겠고, 읽은 책들의 내용을 다 기억할 수도 없겠지만, “이 책을 왜 샀더라, 이 책에 관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더라, 이 책을 선물 받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등 나름의 ‘메타-북(meta book)’에 관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된 것 아닌가. 결과가 무엇이건 그 결과가 있기까지의 과정 덕분에 즐거웠고 무언가를 적었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으니.
+ 라방 중 ‘어디까지를 독서로 취급할 것인가?’하는 질문에 문득 떠오른 건 대학생 시절 즐겨 듣던 북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이었다. 읽지 않은 책에 관한 토크더라도 듣고 있으면 그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관심이 생겨 토크를 다 들은 다음에라도 구매해서 읽었던 책이 있는가 하면, 팟캐스트를 들은 것으로 독서를 대체한 적도 많았다. 책을 소개받는다, 추천받는다고만 생각했던 팟캐스트 청취의 경험 또한 돌아보니 독서였던 게 아닐까 (피에르 바야르가 그 의문에 힘을 실어준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여름날. 책 읽기 좋다는 생각에 창가 쪽 소파로 자리를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