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때 그 시절의 나’ 혹은 ‘그 여행지에서의 나’를 좀 더 강렬하게 떠오르게 하는지를 고민한 적이 있다. 직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누리게 된 2-3년 전에는 ‘공간’이 그런 역할을 일정 부분 떠맡는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일터가 있던 종로구를 알아가려고 골목을 누비고 책을 찾아 읽었다. 조명 가게의 간판을 관찰하는 것도 즐거웠다. ‘이곳’의 공기와 냄새, 가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인테리어의 전반적인 색감,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공통점 … 이러한 것들을 보고 있자면 과거 ‘그곳’의 나, 일상적인 일과 거리가 먼 경험(가령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하고 있는 내가 절로 생각났다. ‘이런 거친 분위기의 골목에서 고소한 라멘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이 냄새는 눈이 쌓아다가 말았던 겨울날, 마인츠대 캠퍼스 학식당의 점심 식사 준비 냄새를 닮았네!’ ‘이거 그때 ○○이랑 같이 먹었던 아이스크림 색깔 같다 꼭!’... 유독 ‘그곳’의 경험이 미각과 한 데 어우러진 게 가장 많았고 인상도 강렬했다.
대체로 그런 회고의 결과는 ‘오늘 저녁에는 ○○ 식당에 가서 그때 먹었던 것과 비슷한(혹은 똑같은) 것을 먹어야겠어!’하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늘어난 허리둘레는 결심의 포상과 같았다. 맛있는 회고 덕에 “푸드 없는 푸드 에세이”란 콘셉트로 매거진을 구성해 보기도 했고 (목차 구성도 아직 끝나지 않은 작업이지만, 음식에 얽힌 썰을 풀 생각에 아이디어가 마구 고개를 들이밀고 있달까), 다양한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나눠야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코로나 유행으로 외식을 포함한 외출을 자제하면서 집밥을 해 먹는 일이 많아지자, 음식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도 이전보다 훨씬 더 경건해졌다. 먹는 즐거움, 함께 먹을 것을 준비하고 나누는 즐거움, 그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금방 배가 불렀고 또다시 배가 고팠다.
때문에 한국 출판사가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영화 <미나리>가 떠오를 법한 홍보 문구로 선전하는 반면, 미국 현지에서는 이 책을 ‘푸드 에세이’로 분류하여 소개한다는 정보는 (맛있는 회고에 빠져 있는) 내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죽음을 목격한 뒤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265쪽)”하고 되뇌던 저자가 망치 여사의 도움으로 잣죽을 끓이고, 고구마를 튀겨내고, 김치 담을 독을 사는 대목을 읽으며, 스스로를 ‘엄마의 유산’이라 여기는 저자가 감칠맛 나는 한국 음식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하는 게 ‘일종의 무장이자 단장 행위’ 같았다. 딸의 상경길에 보내는 반찬통에서 혹 김치 국물이 새어 나오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크린랩을 두껍게 한 번 더 두르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결계 같은 것을 자기 주변에 치다가도, 언제든지 그 랩을 벗겨내고 마늘과 젓갈 냄새를 발산하며 흰쌀밥 위에 김치 한 점을 얹어 먹을 것만 같다.
책을 덮은 후에는 본가에서 가져온 김치통을 한번 더 들여다보았고, 대뜸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선 ‘저녁 먹었어? 뭐 먹었어?’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식구라는 표현에 맞게, 밥 생각이 진득하게 났다.
+ 가까운 이의 죽음을 목격한 후에 그 사람과 나누었던 음식을 이전과 똑같이 마주하기란 힘들겠지. ‘발효 매직(372쪽)’을 발휘하지 않고서야.
++ <H마트에서 울다>와 함께한 7월 동안,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지인들은 ‘아 한우리 마트? 여기 비싼데!’라고 제목을 보고서 마트 체험기를 읊었고, 새로운 읽을거리에 주목하는 소수의 친구들은 ‘이거 얘기 들었어, 원서로 읽는 게 나을지 고민이야,’ 혹은 ‘슬프지’ 하고서 기대평이나 감상평을 덧붙이곤 했다. 또 많은 친구들이 ‘분명 슬플걸 알지만 그래도 읽어보고 싶긴 해’하고 말했다. 가슴 한편이 아플 걸 알면서도 그를 찾아 읽는 이 마음은 또 무엇일지. 어떤 에너지를 담고 있는 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