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의 또 다른 이름, 랜덤박스

“(치지직) … 님께서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by 프로이데 전주현



암막 두건을 눈 위에 질끈 묶고서 오로지 청각(친구의 설명)에만 의존하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교육 훈련에 참가해 본 적이 있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훈련은 참가자들에게 ‘하나의 감각이 차단된 상황에서 ‘파트너’로 짝지어진 친구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감각 사용법에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며 움직임의 원리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인지’를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실제로 훈련에 참가해보면 순식간에 눈을 떠도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 상황이 난감하기만 하다. 파트너가 어떤 말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며(어떤 형용사와 동사, 명사를 섞어가며), 내 주변 환경을 어떻게 기술하는지에 따라 손과 발에 실리는 힘의 크기가 달라진다. 어둠 속에서 의지할 곳은 목소리 뿐이다.


‘이런 훈련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지도 않겠지’라고 속단할 수 있다. 그러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때로는 목소리를 ‘붙잡게’ 하는) 환경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 다양한 상황 속에서 조성되고 있다. 라디오는 단연코 그런 환경과 상황의 오랜 주인공이다. 주파수를 지지직 맞춰가며 듣는 ‘since1920의 매체(세계 최초의 상업 라디오 방송은 1920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청취자의 청각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메세지를 전달하지만 듣는이의 두 눈과 팔, 다리를 자유롭게 한다. 심층취재나 자유로운 해설 보도 등 신문 인쇄 매체의 역할도 고스란히 해내며, 주파수가 닿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지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강점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 경쟁 속에서도 버젓이 살아남은 노장이다.


몇몇 사람들은 노장을 구닥다리 취급하며 아날로그 감성과 엮어 ‘옛 것’으로 취급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상 라디오는 기술과 사회 발전과 함께 덩달아 변화하고 성장해 왔다. 예를 들어, 자동차 보급률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오늘날, 꽉 막힌 출퇴근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운전자들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라디오를 친구 삼고서 브레이크와 악셀을 밟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이제 흔한 뉴스가 되었다. 또한 원활한 전기 보급으로 밤이 휴식과 수면의 영역을 넘어서 생활 영역으로 자리 잡은 요즘, 라디오는 올빼미 라이프스타일의 1인 가구 혹은 수험생을 위한 대화 상대(이자 대나무숲)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는 YouTube 동영상과 OTT(Over-The-Top) 서비스가 있다고 하지만, 해당 매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나의 두 눈을 화면에 고정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신에 라디오는 동시다발적인 상황을 허락해 주는 씀씀이 좋은 친구다.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깔린 배경 음악 역할을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나의 고민을 귀 기울여 들어준 뒤 조언을 건네는 친구 같은 역할을 할 때도 있다. 라디오가 배경 음악이 될지 친구의 조언이 될지는 귀를 열어 라디오를 얼마나 주의깊게 듣는지, 그리고 그때 나의 눈과 팔, 다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이쯤 되니, 나 또한 오랜 청취자로서 ‘라디오의 매력과 생존 비결이 무엇이지‘ 하는 질문에 소견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그러고보니 <최정원의 감성시대>부터 <박경림의 심심타파>, <데니의 키스더라디오>, <박경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손석희의 시선집중>, <여성시대, 양희은 강석우입니다>, <이동진의 꿈꾸는 다락방>, <성시경의 푸른밤>, <푸른밤, 이동진입니다>, <굿모닝 FM 김제동입니다>, <굿모닝 FM 장성규입니다>에 이르기까지, 라디오는 꾸준히 내게 랜덤박스의 돌발성을 선물로 주었다.


한 번도 직접 찾아 듣지 않았던 장르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게 했고 (그것도 모자라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의 팬이 되게 하였고), 나홀로 하고 있었을 거라 짐작했던 고민이 다른 청취자의 사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 심기일전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였다. 디제이나 게스트를 알아가는 주요 수단이 목소리와 말이다보니, 대화의 방식과 내용에 집중하게 되고 시각 정보가 선사하는 부담감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마치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의 ‘어둠 속의 대화’ 장면의 팀(돔놈 글리슨)과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처럼 사람의 마음을 진솔히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예기치 못한 것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돌발성이 라디오의 매력 포인트이자 생존 배결이 될 수 있다는 데 의문을 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때 돌발성은 나를 당황시키기만 하는 무례한 녀석이 아니다. ‘막상 접해보니(음악을 들어보니)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긍정의 돌발성이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혹은 ‘나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걸 겪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세상이 좁고 넓다는 걸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돌발성이다.


손에 땀이나는 상황에서 보폭을 줄여가며 파트너의 목소리에 의존하던 교육 훈련을 떠올리며 라디오를 켠다. 치지직 주파수 소리가 랜덤박스 쇼의 시작을 알린다. 어떤 목소리,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하는 기대감이 앞선다. 청취자의 이야기를 적극 수용하고 대본 속 선곡표와 멘트를 실시간 문자나 상황에 따라 과감히 바꾸는 게 꼭 이런 저런 상황에 적응하려는 우리들의 모습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분명 듣고 있는데 그 우리들을 ‘본 것’도 같다. 매일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으면서도 (깜찍하게도)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만나요’하는 인사가 디제이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던져진다. 계속 듣다 보니 ‘사람 냄새’도 나는 것 같다.



라디오의 돌발성을 즐기고 싶은 당신을 위해:

선호하는 방송국의 라디오 어플을 다운 받은 뒤, ‘알림 설정’을 해보세요. 삐빅 거리는 경고음 알람 소리 대신, 누군가의 목소리 혹은 노래가 하루를 열어줄 겁니다. 저는 간혹 디제이와 대화를 하면서 기상하기도 하는데 꽤나 재밌답니다.

늘 걷던 길이더라도 라디오와 함께 한다면 새로워 질 수 있어요. 언제 어떤 노래가 나올지 모른다는 건 물론이고, 혹 내가 아는 노래가 나오더라도 어느 노래가 나오느냐에 따라 걸음걸이도 달라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BTS의 불타오르네를 들으며 걷는 출근길과 god의 길을 들으며 걷는 출근길은 무언가 마음가짐도 달라진답니다. 일상에 자그마한 변주곡을 더해보고 싶다면 라디오와 함께 걸어보는 건 어떤가요?

듣기만 하고 싶지 않다면 ‘실시간 채팅/문자’ 참여로 디제이와 쌍방향 소통을 시도해 보세요. 팁이 있다면, ‘이렇게 쓰면 내 사연을 읽어주겠지?’하고 흑심을 품고서 쓴 글은 잘 읽히지 않는답니다. 솔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툭 건넨 한 마디를 꼼꼼히 읽어주고 반응해주는 (그리고 가끔은 이어서 선물까지 주는!) 라디오의 돌발성은 의외로 큰 기쁨을 준답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상이 미울리가 없잖아요!





정기적으로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편집장님의 허락 하에 해당 글의 전문을 브런치에도 옮겨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매거진 리더십 코리아의 2022년 6월호에 실린 기사로 원문 링크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m.klschool.co.kr/mag1.php?mode=view&bid=2522&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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