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2030 평화통일 글쓰기로 피우지: “통일”

by 프로이데 전주현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흰 저고리 검정 치마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목사님 손을 꼭 쥐고 콧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열 십 자가 새겨진 붉은 벽돌 건물에 잠시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소풍 같은 외출이었다.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두 손을 모으고 아버지와 어머니, 큰 오빠와 막내 동생 등 평소 ‘모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부터 했다. 곁을 지키던 목사님은 건물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빠 보였다.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나무 의자에 앉아 목사님을 기다렸다.


벽돌 건물은 천장이 높아 사람들의 소리가 하늘로 모이는 듯한 공간감을 연출하기에 적합했다. 방금 전까지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가 읊조린 기도도, 목사님이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도, 하나의 수군거림 또는 외침이 되어 위로 향했다. 입술을 떠난 말이 그를 내뱉은 사람의 본심을 동력 삼아 비행할 동안, 새로운 말과 소리가 실내 공간을 바닥부터 가득 채웠다. 지루할 새가 없었다. 역동적인 공간이었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벽돌 건물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귀를 쫑긋했다. 고함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행인들의 보폭이 좁고 빨라지는 소리. 걸어오면서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었다.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목사님을 쓱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알아차린 목사님은 의자 쪽으로 다가와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를 다독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아, 아무래도 오늘은 집에 못 갈 것 같구나.”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두 눈을 부릅뜨고 손깍지를 세게 쥐었다. 작은 목소리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바르르 떨며 기어 나왔다. 실 한 오라기 같은 연약한 모습을 하고서 천장으로 날아오를 법한 목소리였다. 당분간 붉은 벽돌 건물이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의 새로운 집을 자처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가 ‘모두‘가 있는 곳을 집이 아닌 고향으로 부르기까지 반 세기 넘는 시간이 걸렸다. 소풍 같을 줄만 알았던 외출은 그렇게 이별이 되었다.



“아이고, 할머니, 왜 울어요!”
“기뻐서 그런다, 기뻐서.”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손녀와 손녀사위를 맞이하는 현관문에서 주름진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따라 울기에 자신만만한 손녀가 코를 세게 풀 동안,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손녀사위에게 과일을 대접해야 한다며 포도 담을 접시를 찾아 베란다와 부엌을 왔다 갔다 했다. 결혼 전 집안 어른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손녀사위는 눈물 어린 인사와 함께 코를 킁 풀어대는 소리, 포도 찾는 움직임으로 가득한 첫 만남 풍경에 눈을 몇 번 꿈뻑이더니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거실을 지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 간 미뤄왔던 가족 간 왕래였기에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두 손 마주 잡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집에 찾아온 게 그저 반가웠다. 고맙다는 말이 절로 여러 번 절로 나왔다. 대학생 같아 보이는 얼굴 둘이 나란히 앉아, 안경도 쓰고, 말투도 비슷하게 부드럽고…….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손녀와 손녀사위가 예비부부보다는 남매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게 대구에서 다니던 교회야, 우리 할머니 젊었을 때다! 증조할머니 때부터 다니던 곳이니 내가 4대째지.”


손녀가 거실 벽을 빼곡히 채운 각종 사진들 중에 자그마한 흑백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진 속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교회의 초석을 다진 사람들과 그 후손들에게 지금까지도 ‘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라는 설명을 붙일 정도로 한국 전쟁 중에 마련한 피난처라는 정체성이 강한 곳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에겐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이 두세 명 밖에 남아 있질 않은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는 시간을 내어 방문하더라도 가슴 한편이 채우기보다는 도려내는 곳이었다.


“어어, 그래, 최 장로님 돌아가신 후에는 영 가질 못했구나.”


포도 씨를 휴지에 뱉으며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손녀사위는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지난달 구순잔치를 치른 자신의 대부도 할머니가 괜히 떠올랐다. 계속해서 말을 걸어드리고 싶었다. 재잘재잘, 일종의 재롱이었다. 목포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교 때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는 자기소개가 주를 이루었고, 평양냉면을 좋아해 손녀와 자주 데이트를 하러 냉면집을 찾는다는 일상적인 내용도 뒤따라왔다.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냉면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일전에 그 이산가족 상봉하러 북에 갔을 때, 면회장에서 냉면이 나왔는데 그게 제대로 된 평양냉면이 아니야. 칡 껍질을 다 벗기고 면을 삶아야 했는데 껍질째 면을 뽑았는지 시커멓기만 하더라고. 옛날에 너네 할아버지가 목포랑 광주에서 수학 선생 할 때에 동료 선생들 대접한답시고 내가 하루 종일 면만 몇 솥을 뽑았지. 그 면은 제대로였어.”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옛날이야기 하나를 끝내기도 전에 또 다른 옛날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듯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자 손녀와 손녀사위는 “오,” “와,” “정말요?” 하는 방청객 같은 반응을 보이며 포도알을 뜯었다. “그게 일사후퇴 직전이었어,” 하는 대목에서 손녀는 딸꾹질 같은 박수를 쳤고 손자는 “역사시간에 배우고선 직접 듣는 건 처음이에요!’ 하며 네이버 지식백과에 관련 상세 내용을 다시 한번 검색해 보았다.


뒤편에 마련된 사진을 쓱 쳐다보다가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손녀와 손녀사위 쪽으로 가까이 돌아 앉았다. 손녀에게서 오른손, 손녀사위에게서 왼손을 가져와 자신의 두 손으로 그 아래위를 덮었다. 손바닥 넷이 겹쳐 있는 게 꼭 광주에서 반찬으로 자주 내놓는 꼬막 무침 같기도 했고, 기억 속에서만 원조의 맛을 유지하는 평양냉면 한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 되었건 맛있는 풍경이었고,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할머니가 될 줄 몰랐던 할머니는 붉은 벽돌 건물의 높은 천장을, 고향이라 부르기 시작한 집을, 주름진 얼굴에 한복을 입고 면회장에 나타났던 막내 동생을 비롯한 ‘모두‘를 떠올렸다. 방청객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그를 대신한 힘찬 기운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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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밖에서의 활동에 좀 더 애정을 쏟으며 지내던 2022년 늦여름, 김중혁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국립통일교육원의 2030 평화통일 “글쓰기로 피우지” 프로그램(이하 피우지)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김중혁 작가님의 재치 있는 입담과 호기심 가득한 문장을 선호하던 사람이기도 했고, 한반도 평화 통일을 고민하는 한국리더십학교의 매거진리더십코리아의 기자이기도 했던 터라, 작가님과 함께 문장을 고민하고 한 권의 문집을 펴내는 과정에 관심이 갔습니다.


계절이 두 번 바뀔 동안, 기쁘게도 피우지의 일원으로 선발되어 여섯 차례에 걸쳐 김중혁 작가님과 또래 2030 작가들과 함께 읽고, 놀이를 하고, 영화 감상평을 나누고, 질문을 공유하며 ‘소통’과 ‘통일’이라는 두 개의 주제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한 권의 문집으로 2022년 12월 혹은 2023년 1월 발간 예정인 피우지의 결과물이 향후 2030 통일 담론의 귀한 참고자료로 쓰이길 기대합니다.


위 글은 국립통일교육원의 피우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웹사이트를 참고해 주세요.

- 평화통일클라스 | 2030평화통일교육활성화 - http://2030uniclass.com/g5/bbs/sub06_01.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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