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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17. 2020

19. 장난이 가득 섞인 쿠키, 맛있을 수밖에!

겨울 인연과의 쾰른 크리스마스 여행기 (4)

16.12.11 일요일 (어게인)


하펜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돌아온 우리는 다짜고짜 부엌으로 향했다. 양 손에 들린 한 짐을 식탁 위에 늘어놓고 스웨터 팔을 걷어붙였다. 쾰른에서의 마지막 밤을 크리스마스 베이킹으로 즐겨보기로 했기에 귀갓길에 편의점에 들러 베이킹 재료들을 사 오질 않았는가. 재료를 갖추었으니, 이젠 일을 할 차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배경음악 삼아 틀어두고선 크리스마스 쿠키 잡지를 펼쳤다. 오늘의 메뉴는 두 가지다. '플레첸(Plätzchen)'이라 불리는 독일의 납작한 과자(흔한 버터 과자라고 생각하면 된다)와 밤과 함께 반죽을 하고 위에 넛 크림과 헤이즐넛을 올린 A 자매의 비법 쿠키. 한국에서 엄마와 함께 새벽에 쿠키를 구우며 갖은 보조일을 도맡았던 나는 오늘, 만년 베이킹 보조에서 엄연한 빠티셰리로 진급을 하려 한다. 이 밤은 일종의 진급 시험인 셈이다.


사실 독일 크리스마스 쿠키의 대명사는 (개인적으로) '랩 쿠흔(Lebkuchen)'이라 불리는 생강 쿠키와 '슈페큘라찌온(Spekulation)'이라 부르는 (이름에서는 왠지 'special'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도 같지만 사실 맛이나 모양전혀 'special' 할 게 없는) 쿠키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는 딱히 크리스마스 쿠키라고 부르지는 않는 플레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왜냐고? 일단 만들기 쉬우니까. 그리고 초콜릿 펜으로 쿠키 위에 갖은 장난을 칠 수 있으니까(베이킹에서 공작/공에는 가장 재미난 부분이라고)!


본래는 마찌판(Marzipan: 유럽식 앙꼬 같은 필링)을 넣어 만들어야 하는 A 자매의 비법 쿠키(왼쪽 사진 속 잡지). 오늘은 밤과 헤이즐넛 크림을 곁들여 변주해보기로 했다.



유럽에서는 친구들과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흔하다.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보다는 서로의 보금자리를 찾아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외식 비용에 비해 식료품 구입비용이 저렴하기도 하고, 한국처럼 트렌디하거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할만한 식당, 그것도 밤늦게까지 여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확실히 유럽 친구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집에서 단란하게, 그리고 프라이빗하게 식사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하는 경향이 있다. 식사를 나눈다는 건 영혼을 나누는 거라던 문학 분석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런 자리에 초대를 받을 때마다, 요리 실력이 화려하지 않은 나는 갑자기 '한국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어 고역을 치른다. 그러나 몇 번의 저녁 초대가 있은 끝에, 요즘은 '간단한 셀프 김밥' 혹은 '해물파전'을 비장의 카드로 제시할 정도로 요리 세포를 키워놓았다. 특히 두 메뉴들 중에서 셀프 김밥은 호응도가 꽤 좋은 편이다(지금까지는). 때문에 다른 유학생들에게도 유학 짐을 꾸릴 때, "김밥말이 발 하나는 꼭 하나 챙겨가"라고 조언을 할 정도다. 셀프 김밥은 아무래도 체험형 요리 교실을 운영할 수 있어서 친구들이 재미있어한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나 기타 식습관에 따라 속재료를 바꿔 넣어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쾰른 대성당 모양을 한 쿠키와 산타클로스 혹은 동방박사의 모양을 한 쿠키 등... 먹을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만 쿠키만큼은 예외가 아닐까?
"Bitte nicht essen(제발 (함부로) 먹지 마세요!)" 오븐에 들어간 후의 '플레첸'의 모습(왼쪽)과 오브에 들어가기 전의 헤이즐넛 비법쿠키(오른쪽).



각설하고, 오븐에 들어간 쿠키와 아직 들어가지 못한 쿠키들이 자리를 바꿔가며 몸을 데워는 동안, 나는 이 밤의 베이킹이 성공적임을 직감했다. 오븐에서 세어 나오는 쿠키 굽는 냄새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하, 더 이상 나를 베이킹 보조라고 부르지 말아 주련?)


그렇게 A 자매와의 쾰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이전부터 빵순이의 감을 운운하는 등, 빵과 쿠키에 관해선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저입니다. 빵 굽는 냄새, 쿠키 굽는 냄새만큼 향긋한 것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저날 저렇게 쿠키 노동을 한 A 자매와 우리는 다음날 혹여 A 자매의 부모님들이 쿠키들을 다 먹어치울까 봐 '제발 먹지 마세요(Bitte nicht essen)'이라고 메모지를 적어두기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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