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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16. 2020

18. 분홍색이 짙은 남색이 되고 강이 바다 같아지도록

겨울 인연과의 쾰른 크리스마스 여행기 (3)

16.12.11 일요일



하인젤멘혠이 끓여준 글뤼바인을 마시고서 자도 자도 너무 푹잤다. 마치 내 집에서처럼 숙면을 취하고 나니, A와 AL의 어머니께서 손수 차려주신 아침상을 받게 되었다. 어찌나 푸짐하게 차려주셨던지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맛있는 독일 커피 한잔과(사림들이 모르는듯한데, 독일 커피 무지 맛있다!) 치즈와 연어를 얹은 토스트 몇 조각에 금세 든든해졌다. 특히 무심한 듯 놓여있는 짜리 몽땅한 독일 오이를 껍질 채 베어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역시 독일 오이!).


아침을 먹는 동안 A 자매의 오빠가 조카 Alex를 데리고 놀러 왔고, 우리는 함께 거실 바닥에 앉아 Alex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독일은 TV에서나 라디오에서나 고전 동화들을 읽어주거나 그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을 틀어주곤 하는데, 오늘은 라푼젤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원어민 수준의 독일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내가 독일어로 동화를 읽어줘도 Alex가 알아들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내 목소리에도 집중해주었다(어찌나 고맙던지!).




A 자매의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상, 그리고 밥 먹는 때를 어떻게 알고서 A 자매 집의 마당으로 찾아온 이웃 고양이 두 마리.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우리들은 쾰른 시내로 다시 이동했다. S-Bahn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쾰른 시내대성당을 중심으로 하인젤멘혠 마켓이 펼쳐져 있던 곳으로  독일 특유의 겨울 날씨에 꼭 어울리는 풍경을 하고 있었다.  구름이 잔뜩 드리워 양지바른 곳은 찾아볼 수 없는 날씨. 그런데도 왠지 추울 것 같진 않아 보여 가볍게 입고 나갔다가 오들오들 떨면서 귀가하는 그런 날씨. 그  날씨 한가운데에는 꼭 대성당이 자리해 있고 알록달록한 옛날 집들이 모여 있다.

 



전형적인 독일의 겨울 날씨 풍경. 두 개의 첨탑이 우뚝 솟은 쾰른 대성당이 멋을 더한다.





(위 사진 속)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 쪽을 걸으며 좀 더 어둑어둑 해지기를 기다렸다(그래야 크리스마스 마켓의 분위기가 더 살 테니까!). 강변을 산책하며 골목골목을 누볐다. Jan Künster갤러리에서는 쾰른 대성당과 카니발(쾰른의 카니발은 화려하기로 유명하다)을 소재로 알록달록한 그림들을 잔뜩 선보이고 있었고, 한 빵집에서는 커다란 과자집을 쇼윈도에 전시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념하는 중이었다. 한 어린아이과자집에 홀린 듯 계속해서 쇼윈도 앞을 서성였는데, 그 뒤에서 똑같이 넋이 나간 나는 '그래, 네 맘 잘 알지'하고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Jan Künster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연말의 화려한 조명과도 잘 어울린다./저렇게 큰 과자집은 나중에 철거하고 마는 걸까?



산책을 마치고 슬슬 허기가 질 무렵, 하루 종일 칙칙하기만 하던 쾰른 하늘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분홍빛으로 물든 독일의 겨울 하늘이라니! 독일에서, 그것도 겨울에 이런 하늘을 볼 줄은 예상치 못했다. 넋 놓고 하늘을 보면서 강변을 따라 쾰른 초콜릿 박물관 쪽으로 15-20분 간 걸었으려나, '하펜(Hafen: 독일어로 '항구'라는 뜻) 크리스마스 마켓'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인젤멘혠 마켓과는 달리 하펜 마켓은 자그마한 트리들을 곳곳에 배치해 두고, 항해를 연상시키는 장신구들로 트리 장식을 해두어 다른 마켓들과의 차별성을 꾀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마신 글뤼바인의 컵은 보증금 5유로를 오롯이 돌려받기 위해 다시 음료 가판대에 가서 반납했다(컵이 안 이뻤다는 이야기). 비록 보증금은 돌려받았으나 글뤼바인을 즐긴 강변 풍경은 하인젤멘혠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분명 내가 맞고 있는 건 강바람일 텐데 꼭 바닷바람을 쐬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가슴이 뻥 뚫리는 그 느낌!)이 들었다. 분홍빛으로 시작된 쾰른의 겨울밤은 짙은 남색이 되도록, 강바람 바닷바람로 변신을 하도록 길고 길었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하루에 세 번 이상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한동안은 그 말이 계속 떠올라 '난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떼를 쓰듯 하늘을 의식적으로 올려다보고 했다. 그때 습관을 들이기라도 한 걸까, 하루 세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 한 번 정도는 하늘을 살피며 지낸다. 그리고 그때마다 괜히 한밤중에도 문을 열고 나가 "천문을 살펴야지"라면서 하늘을 보는 아빠가 떠오른다. 오늘의 하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퇴근길에 가장 먼저 그것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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