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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15. 2020

17. 하인젤멘혠이 글뤼바인을 끓여주던 겨울밤

겨울 인연과의 쾰른 크리스마스 여행기 (2)

16.12.10 토요일 (어게인)


대도시 쾰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만 10개 넘었다. A 자매는 마켓들이 제각각 특별한 테마와 다른 디자인의 글뤼바인(Glühwein: 우리나라에선 '벵쇼(vin chaud)'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따뜻한 와인 음료) 잔을 선보이고 있지만, 가장 동화 같은 크리스마스 마켓은 구 시가지(Altstadt) 쪽에 위치한 하인젤멘헨(Heinzenlmännchen) 마켓이라면서 나를 가장 먼저 구시가지 쪽으로 끌고 갔다.


하인젤의 고향(Heimat der Heinzel) 쾰른 구 시가지 크리스마스 마켓 (Weihacntsmarkt Kölner Altstadt)이라고 적혀 있다.


하인젤멘혠은 독일 크리스마스 동화의 주인공이다. 이름은 하인젤, 뒤에 따라붙은 멘혠은 사람을 뜻하는 Mann에 자그마하고 귀여운 것들을 지칭할 때 따라붙는 어미 '-chen'이 붙으면서 Mann의 a가 ä로 변화한 형태다. 그러니까, '꼬마 하인젤'이라는 느낌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다시 하인젤멘혠이 누구인가로 돌아와서,) 이들은 크리스마스 요정인데 사람들이 잠든 사이 집안으로 몰래 들어와 설거지를 비롯한 갖은 잡일들을 도와주고 사라진다. 혹 사람들에게 발각된다면 다시는 그 사람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 우렁각시 같은 요정이다. 마켓 곳곳에서 붉은 고깔모자를 쓴 하인젤멘혠들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집안일을 도와주기에는 너무 약해 보인다. 수염도 덥수룩하고 생긴 모양새가 꼭 할아버지 같다.  우렁각시 삼을 재목인지 판단이 안 선달까. 설거지를 도와준답시고 그릇을 깨 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마켓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빨간 모자의 캐릭터들이 바로 하인젤멘혠이다.



 마켓 주변은 스케이트장으로 빙 둘러싸여 있었고, 가운데는 글뤼바인을 비롯한 각종 크리스마스 쿠키, 간식, 장식품들을 파는 가게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글뤼바인 한 잔을 사들고 스케이트 링 곁에서 '누가 잘 타나, 누가 넘어지려나' 하면서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스케이트 왕초보자(바로 나!)를 위한 보조 도구는 안타깝게도 아동용밖에 없었기에 아쉽지만 스케이트는 신어보지 못한 채 얼음 주변을 빙빙 맴돌며 와인을 홀짝였다.



하인젤멘혠의 동화가 그림과 글로 꾸며진 글뤼바인 잔은 기념으로 간직했고(보증금 5유로를 돌려받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데일리 컵으로 잘 쓰고 있다.



사실 나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오면 가장 먼저 크리페(Krippe)부터 찾곤 하는데, 이번 하인젤멘혠 마켓만큼은 예외적으로 글뤼바인을 가장 먼저 찾았다. 아무래도 유럽의 겨울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 음료가 무척이나 반가웠나 보다.  한 잔을 즐긴 후에는 이전처럼 크리페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크리페는 '말구유' 혹은 '말구유에 놓이신 아기 예수님과 조셉, 마리아, 동방박사 세 사람을 조각해 놓은 장식품'을 지칭하며, 어느 도시의 어떤 마켓이냐에 따라 연출 방식도 다양해 지역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베토벤의 고장인 본(Bonn)은 크리페에 베토벤의 모습을 새겨 넣는가 하면 마인츠에서는 마인츠 축구 구단의 마스코트를 크리페에 등장시킨 적도 있다). 신기하게도 하인젤멘혠의 크리페는 천하대장군의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나무 크리페였다. 매년 다른 콘셉트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기획하듯, 크리페 또한 매년 새롭게 기획되는데 올해의 쾰른 시가 꽤나 과감한 연출을 시도한 게 아닌가 싶다.



아기 예수님(왼쪽)과 동방박사 세 사람(오른쪽)의 모습. 크기도 분위기도... 천하대장군의 이미지가 연이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의 리츄얼을 다 수행하고 나니, 그제야 각종 상점들의 화려한 가판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인츠 교환학생 시절, 돈을 아껴보겠다고 자그마한 나무 장식품 하나만 사서 돌아온 게 나름 아쉬웠던 나는 계피와 과일 향이 기분 좋게 섞여 있는 리스 하나를 7유로(약 1만 원)에 구매했다. 뤼벤 기숙사 방이 리스 향으로 가득해질 거라 생각하니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쾰른에서 데려온 리스(왼쪽)과 리스를 구입한 상점 가판대의 풍경(오른쪽). 향신료, 특히나 계피향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냥은 지나치지 못할 공간이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글뤼바인은 유럽식 겨울 별미이기도 하지만 효과 좋은 감기약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주로 야외에서 열리기 때문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선 아무래도 글뤼바인 한잔으로 마켓 투어를 시작하는 게 몸과 마음을 동시에 데운다는 의미에서 좋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종종 글뤼바인을 벵쇼라고 소개하며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따뜻한 카페에서 마시는 글뤼바인은 역시나 어색하다. 오들오들 떨면서 마셔줘야 하는데 말이다. 겨울에 생각나는 별미, 음료로는 또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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