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베르니, 프랑스
그 해 여름, 이제 막 파리 교환학생을 시작했던 친구의 집을 찾아가 어린이처럼 놀았다. 알록달록한 것을 보면 일단 먹어 보고 싶어 했고, 햇살이 짧고 얇은 옷 위로 찾아와 드러나지 않은 피부까지 안으려 하면 간지럽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냈다. 시시덕거리며.
색채의 향연에 취해 눈을 조금 차분하게 하고 싶어진 건 삼일 째부터였다. 기차에 몸을 싣고 한 시간이 넘도록 달렸다. 차창 밖으로 빗줄기가 이따금 스치더니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졌다. 분명 아침이었는데 저녁 같아진 풍경. 하루를 잃어버린 건지 잊어버린 건지 혼란스러웠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생명력 넘치는 초록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지베르니(Giverny). 빛과 자연, 시간을 주 재료로 삼던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의 정원이 있는 곳이었다.
모네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았다. 아침부터 끊이질 않는 방문객의 발걸음은 정원의 흙먼지를 깨우고 있었다. 바닥에서 위로 오르는 듯한 흙먼지는 땅으로 내려앉는 빗줄기와 충돌을 빚었고 빗소리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근사한 배경음악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인파를 피해 모네가 걸었을 법한 곳으로 향했다. 푸른색 다리를 찾겠다고 물과 나무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모네의 오랜 모델, 연못을 만났다. 연못은 웅성대는 방문객의 호들갑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모습 그대로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림에서 받았던 첫인상, "촉촉하게 뭉개지는" 느낌도 그대로였다. 멋졌다, 첫인상을 깨지 않는 대상이라니. '그렇다면 그를 제대로 본 나도 멋진 안목을 지닌 건가' 하며 씩 웃으며 산책을 계속할 힘을 얻었다. 걸을수록 빗소리가 조금씩 더 크게 들렸다.
연못 위로 원을 그렸다가 깨끗하게 사라지는 빗방울. 그의 움직임을 따라 숨을 골라 쉬었다. 진녹색과 연회색이 빙그르르 춤을 추는 기분에 눈을 감지 않아도 감은 듯 편안해졌다.
연못 쪽으로 쭉 뻗은 팔 위로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동그랗게 떨어져서는 팔 바깥으로 길게 선을 그리며 흐르는 모습이 꼭 우는 얼굴 같았다. 차가웠다. 하지만 촉촉했다. 후드득.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에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한다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도 괜찮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Giverny: 지베르니. 파리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는 (나름) 도시. 모네의 정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 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