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환학생 시절 나를 먹여 살린 1등 공신은 유제품이었다. 어찌나 종류가 다양한지 입에 좀 맞는 브랜드다 싶으면 종류별로 하나씩 먹어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특히 란트리베(Landliebe) 요거트는 어느 종류를 먹어도 맛이 좋아 빈약한 유학생의 식탁 위에 자주 올라왔다. 란트리베 요거트 회사에서는 시즌별 한정판 맛도 출시하곤 했는데, 여름철에는 과일을 메인 재료로,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자 계피가 섞인 요거트를 판매대에 올려놓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마인츠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온 친구와도 일종의 요커트 동맹을 맺었는데, 어학 수업 시간마다 "어제 에데카(Edeka: 독일 슈퍼마켓 체인점 중 하나)에 갔더니, 란트리베 요거트 새로운 맛이 나왔더라!" 면서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란트리베 요거트는 유리병에 담겨 있기 때문에 제 값인 1.39유로(10년 전의 물가니 지금은 훨씬 더 비싸졌겠지)보다 0.15유로 더 비싼 값에 계산되곤 했다. 한동안 "왜 예상한 것보다 거스름돈이 더 적은 거지?" 하며 잔돈 계산을 다시 해보았는데, 알고 보니 란트리베 요거트는 재활용이 가능한 유리병에 담겨 있기 때문에 환경 보증금(Pfand; 퐌트) 붙는 제품이었다.
퐌트를 알고 나서는 빈 유리병을 깨끗하게 씻어 잘 모아두는 게 습관이 되었다. 수업 끝나고 저녁거리라도 사러 슈퍼에 갈 일이 있으면, 기숙사에 잠깐 들러 이케아 장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는 유리병과 페트병을 짊어지고 에데카로 향하곤 했다. "퐌트 하러 가자!" 하는 것도 교환학생들 간의 친목 다짐 핑계가 되어, 나중에는 "너 퐌트 할 거 있어?" 하고서 인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란트리베가 먹여 살린 교환학생 시절을 끝내고서 2년 반 후, 서머스쿨 일정으로 유럽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잠깐이라도 마인츠에 다녀오고자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살았던 도시와 재회하는 방법으로 당시엔 일상이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닌 것들, 특히 그 일상의 장소들을 찾아 걸어보기로 했다. 캠퍼스, 강의실, 스터디룸, 학식당, 기숙사, 구시가지, 문구점, 서점, 그리고 에데카까지.
그리고 독일인들에겐 너무나도 평범했을 풍경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이거 아직도 있네!" "여전하네!" 하면서. 유리병에 담긴 요거트 병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는 냉장고, 그 밑에 자그맣게 적혀 있는 환경 보증금 가격표처럼 결국 그리운 것들은 작은 것들이었다. 한때 일상이었으나 이제는 특별해진 작은 것들이었다.
- das Pfand: 보증금, 예치금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 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