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주세요 (I want some more)

런던, 영국

by 프로이데 전주현

글 쓰는 사람은 가난해도 괜찮다는 이상한 낭만주의에게 일침을 가하는 사람들, ‘작가는 죽어서 유명세를 남긴다’는 말을 웃어넘기며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문장 속에서나 밖에서나 치열했던 것 같은데, 스토리텔링 부자인 런던에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볼 수 있는 곳이 많다. 건물 전체를 집으로 소유했고, 지금은 그 집을 뮤지엄으로 활용하는 찰스 디킨스가 대표적이다.


나의 첫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였는데,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자면 번역본도 원문도 아닌 만화로 읽었다 (세계 명작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출간된 만화책이 초등학생 시절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랄까). 그 때문에 주인공 올리버를 떠올릴 때, 아직까지도 만화책에서 본 흙검댕이 얼룩과 콧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을 머릿속에 휙 그려보곤 한다.


꽤나 오랜 기간 단정 지었다. 불우한 소년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서 이런 이야기를 쓴 사람은 아마도 올리버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봤던 사람이고, 그런 상황을 고발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거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런던을 그렇게 쾌쾌하게 그려낼 수 없었을 거라고.


그런데 웬걸, 앞서 밝혔듯이 디킨스는 꽤나 여유롭게 글을 쓰고 사회 활동을 했던 엘리트 계층이었고, 지금까지도 찰스 디킨스 재단을 통해 빈곤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뮤지엄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벽면에는 재단의 런던 빈곤 보고서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어릴 적 추측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엘리트 계층 출신에게 뒤따르는 여러 유혹을 물리쳤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표했던 것에서 더 나아가 그 문제를 문학적으로 해소해 보려 했다니! 결과가 성공적이건 아니건 간에 (아시다시피, 디킨스의 경우는 성공했지만) 기억할 만한 생이다. 어떻게 서든 이웃과 빵을 나누고 싶어 하는 생이니깐.



코시국 전, 서울의 한 저자 사인회에서 장강명 작가님께 사인을 받은 적이 있다. 사회 참여적이고 이웃을 위한 글을 적극 지지해 주셨던 작가님은 요청자에 한해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문장을 적어드리겠다고 하셨다. 그 문장을 듣는데 괜히 디킨스가 떠올랐다. 놀랍게도 가슴이 뛰었다.


글을 쓸 때 부담감은 내려놓으면서도 책임감은 챙기고 싶었다. 그래서 응원이자 (a.k.a) 저주이자 당부 같은 그 문장을 요청드렸다. "작가님, 저 그 문장 써주셔요" 했더니 "아우, 그럼요!"하고 반기셨다.


귀갓길에 사인이 된 페이지를 들여다보니 디킨스 뮤지엄 내부에 적혔던 <올리버 트위스트>의 구절 하나도 떠올랐다. 먹을 것을 조금만 더 달라고 외치는 올리버에게 나는 무어라 답할까. 무어라 쓸까.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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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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