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독일
계획에 따라 움직이며 부지런을 떠는 하루도 좋지만, 가끔은 느슨하게 이 지역을 그냥 걸어보자'하고 돌아보는 날이 더 멋진 하루로 일기장에 기록될 때가 있다. 마틸다와 함께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을 걷던 그날이 바로 그러했다.
걷기 만한 친구가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복잡한 문제를 정리하고, 붙잡고 있던 것을 의외로 시원하게 놓아버리고, 땅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에너지 흐름에 원심력 같은 질서를 부여하는 것 모두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걸었기에 가능했다고 증언한다. 그들에게 산책은 놀이이자 하루의 선물이다.
독일 인문학의 중심지 중 하나인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또한 같은 주장을 한다. 도시는 그곳에서 오래전 공부하고 사유했던 여러 철학자들이 걷기와 사귀었던 풍경을 '철학자의 길이라 부르며 보존하고 있다. 네카어 강과 하이델베르크 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동산의 중턱에 자리한 일종의 오솔길인데,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정비가 깔끔하게 되어 있는 길이다.
'그렇다면 걸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평소 수직 운동에 질색을 표하던 나였지만 여행지가 주는 묘한 도전의식에 기꺼이 동산을 올랐다. 산책 나온 학자의 마음을 빌려 한 발 한 발 무겁게 발을 떼면서도, 도심과 거리를 둔 자에게만 허락되는 숨통 트이는 공기에 '좋다'를 아낌없이 외쳤다.
그날은 손에 든 빨간 우산 위에도, 다른 한 손에는 들린 에코백의 가장자리에도,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던 날이었는데, 오히려 화창하지 않아 좋았다. 차분한 빗소리, 덤덤한 구름 그림자, 진한 옛 벽돌 건물. 하이델베르크 전체가 사색에 잠긴 듯했다. 덕분에 타지 생활로 비쩍 외롭게 말랐던 마음이 촉촉해진 기분이 들었다.
- Philosophen(철학자들) + 길(W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