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독일
마인츠에서 나의 독일어 버디, 탄뎀(Tandem)은 쌍둥이 자매 아델리나, 알리나였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의 전공을 이야기할 때 처음으로 서지학(Buchwissenschaft)에 관해 알게 되었다. 자매는 서지학에서는 책의 제작과 유통, 보존, 분류 등 여러 가지를 공부하며, 졸업 후에는 도서관이나 출판사, 도서전등 책이 있는 곳은 어디든 직장으로 삼게 해주는 멋진 학문이라고 내게 설명해 주었다.
도서전이란 설명을 듣자, 나는 곧장 마인츠에서 에스반(S-Bahn)을 타고서 30분 거리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Frankfurter Buchmesse; Messe [메쎄]는 박람회를 지칭하는 독일어 표현)을 떠올렸다. 혹 이번에 열리는 ‘프푸 메쎄(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선 프랑크푸르트를 프푸라고 자주 줄여 부른다)’에 방문하냐고 물어보니, 둘 중 한 명은 메쎄 기간 동안 그곳에서 일할 거라고 했고, 또 다른 한 명은 매일 같이 메쎄에서 시간을 보내며 공부할 거라고 했다.
탄뎀 친구들도 있겠다, 때마침 시기도 맞았겠다, 나는 어학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 몇 명을 꼬드겨 프푸 메쎄 방문을 추진했다. 입장료가 꽤 되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학생 할인 찬스가 있었기에 감행할 수 있었던 방문이었다. 에스반으로 메쎄 역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만큼 접근성도 좋았다. 특히나 국가별로 부스가 마련되어 있어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국 부스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코스프레를 한 사람이 서 있어 함께 간 미국 친구 에밀리가 크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에밀리는 원주민 코스프레는 미국 내에서 자칫 잘못하면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행동이라며 인증숏 찍기를 거부했다. 함께 있던 프랑스 친구 마틸데는 그 상황이 재밌는지 그저 웃기만 했다.
한국 부스는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었는데, 주로 우리나라 전래 동화와 대표 소설들의 영문 혹은 독일어 번역본을 전시해 놓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재미난 점은, 한국 부스가 아니었으나 한국이 단연 돋보인 코너가 있었다는 건데, 바로 만화 코너에 새로 마련된 웹툰 부스였다. 지금이야 워낙 웹툰이 유명해졌지만, 내가 프푸 메쎄를 갔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2년이다. 당시 웹툰 산업은 오늘날처럼 콘텐츠 생산의 중심으로 주목받지 못했고, 특히나 아날로그가 좀 더 존중받는 유럽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디지털 사회의 신문물처럼 소개되고 있었다. 바로 옆에 망가(Manga)라는 커다란 간판과 함께 유명 캐릭터들 입간판을 세워놓은 일본 만화 코너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물론 사람들이 더 많았던 곳은 도라에몽과 코난이 서있는 쪽이었지만 웹툰 부스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그 안에서 한국 웹툰이 주인공처럼 소개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즐거웠다.
아무래도 독일에서 열리는 도서전이다 보니 주빈국과 국가별 부스가 있다 하더라도 독일어 서적, 독일 출판사 부스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어 전공자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외국인 방문객들에겐 독일어를 하지 못하면 200% 즐기기는 힘든 행사로 비칠 수도 있겠다. 메쎄 곳곳에서는 인터뷰와 촬영, 저자 사인회 등이 이뤄지고 있었고, 책에 뒤따라 오는 여러 굿즈들을 모아 파는 매장들도 간간이 보였다. 요리책 옆에는 쿠키 틀을 비롯한 다양한 요리 도구들이 놓여 있었고, 달력 코너(독일인들은 달력을 정말 정말 정말 사랑한다!)에는 12월에만 찾아볼 수 있는 대림절 달력(Adventskalender)들이 웬 미술관의 특별 전시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책과 함께 편지지와 각종 필기구 코너도 빠질 수 없었는데, 자타공인 문구 덕후인 나는 그곳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다. 당시 독일어 원서 강독 스터디를 운영하면서 읽었던 넬레 노이하우스(Nele Neuhaus)가 신작 추리소설을 막 출간했는지 메쎄 건물 바깥에 대형 홍보물을 설치해 놓은 것도 보았다. 그야말로 책의, 책에 의한, 책을 위한 축제였다.
- 프랑크푸르트 도서전(Frankfurter Buchmesse):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 있는 도서 박람회. 매년 10월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