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미티드 에디숀, 페더바이써(Federweisser)

뤼데스하임, 독일

by 프로이데 전주현

잠깐 왔다 갈 사람에게 친절하기란 쉽지 않은데, 돌아보니 마인츠 대학교는 한 학기 다녀갈 교환학생까지도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독일에 있는 동안 공부만 하고 가지 말라며, 학기 초에 지역 사회와 사람 간 교류를 적극 권장해 주었다. 덕분에 이해관계가 크게 섞이지 않아 서로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었던 자리들에도 많이 참가해 보았는데, 그때마다 페더바이써(Federweisser)가 빠지는 법이 없었다.


마인츠 지역 어르신들과의 뤼데스하임(Rüdesheim) 산책 프로그램을 신청해 라인(Rhein) 강변을 따라 걷던 때도 그랬다. 9월 말 10월 초, 한 해 농사지은 포도를 막 수확한 계절, 헨네커 아저씨가 노란색 경량 패딩을 입고 프로그램을 인솔하셨다. 아저씨는 지금 수확한 포도가 다양한 모습으로 독일 사람들의 식탁 위에 오르며, 그중에는 술이라 부르기엔 주스 같고 주스라 치기엔 제작법이 와인을 꼭 닮은 페더바이써라는 시즌 한정 음료가 있다고 설명하셨다.


포도 이야기 도중에 헨네커 아저씨의 패딩과 비슷한 색감의 포도밭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마인츠에서 쾰른 방향으로 기차를 타고 가면 차창 밖으로 올려다보았을 풍경. 왠지 로렐라이 언덕의 선율과 합이 좋아 보였다. 파노라마 뷰를 찍는 카메라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쓱 돌리다 보면 이따금 우뚝 솟은 고성도 보였는데 지금은 저 성에 누가 살고는 있을지 궁금해졌다.


산책은 헨네커 아저씨의 포도 이야기를 직접 체험해 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포도밭 언덕 정상에는 놀랍게도 와이너리 겸 카페 겸 바가 하나 있었고, 그곳에는 페더바이써가 입고되었다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래서 제가 한번 마셔 보았습니다!) 작은 와인 잔에 담겨 나온 페더바이써. 눈으로 보기엔 꼭 자몽 주스와 사과 주스를 섞어 놓은 것 같았다. 세월을 견딘 포도 특유의 씁쓸한 맛은 없었지만 깔끔한 단 맛 덕에 계속 손이 갔다.


페더바이써 한 잔을 비우고 입맛을 다시며 앉아 있으니 헨네커 아저씨께서 산책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반응을 살피시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시는 게 보였다. "톨(toll)!" 하고서 화답해 드렸더니 엄지 척을 하신다.


- toll [톨]: '멋진, 근사한'을 뜻하는 독일어 형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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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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