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를린(Bärlin)에서 즐기는 영화제

베를린, 독일

by 프로이데 전주현

베를린 도심 속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곰을 여럿 보았다. 도시의 이름과 상징에 관한 가설 중에는 베를린의 Berl- 하는 발음이 Bär라 쓰고 영어처럼 베어라고 읽는 곰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했다. 그 때문에 곰 모양의 도시 조형물과 기념품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였다. 때마침 베를린 영화제가 열리는 시즌이기도 했다. 영화제 로고가 박힌 홍보물이 거리에서 자주 보였다. 일정을 빡빡하게 짜오지 않았던 나와 홍은 한 번쯤 포츠담 광장 쪽으로 움직여 영화제 시즌 중 도심 풍경도 구경하고, 대중들을 위한 영화 특강이 많은 필름 하우스를 방문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포츠담 광장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여의도와 을지로 일대의 고층 빌딩 숲을 꼭 닮았다. 영화제 시즌이라는 베를린 특수 때문에 설치된 팝업스토어들이 없었더라면 이곳이 2월의 베를린이라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필름 하우스 앞은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조명을 영화제 조명으로 재활용하고 있었는데, 내부에는 상영작에 따라 알파벳을 바꿔 끼우는 오래된 극장 간판을 장식품으로 활용해 건물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즉흥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영화제 행사가 있는지 둘러보며 무료 팸플릿과 엽서를 몇 개 챙겼다. 무심코 지나치는 이런 인쇄물들이 나중에 여행지를 떠올리며 콜라주 작업을 할 땐 이국적이면서도 멋진 재료가 된다. 별도 비용 없이 참가할 수 있는 영화제 행사 하나를 찾았고, 대학 강의실을 닮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은 외국인뿐이었다.


로테 라이니거(Lotte Reiniger)의 종이 공예 및 그림자 애니메이션. 독일 아동 및 청소년 문학을 수강하면서 어린 관객들을 위한 콘텐츠에 관심을 키워가던 때였고, 어릴 적부터 꾸준히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장르에 관한 세미나였다. 눈을 반짝이며 사회자와 패널들을 기다렸다. 한편으론 자막이나 통역의 도움 없이 독일어로 진행되는 행사에 참가하여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스스로를 시험해 볼 기회이기도 했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세미나 참가로 영화제 분위기에 흠뻑 녹아들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몰입의 시간은 속도감 있게, 그리고 달콤하게 지나갔다.


적고 보니 필름 하우스에서 나는 오로지 호기심에 따라 움직였다. 모르는 건 즉각 물어봤고, 찾아봤고, 갖은 추측에 상상을 섞어 가며 틀리건 말건 함께 있는 이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돌아보니 매우 용감했다. 거침없던 그때의 일정을 생각해 보니 언제 이렇게 마음이 쪼그라든 건지 의문이 들었다.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로테 라이니거 작품의 등장인물들처럼, 나의 흔적(그림자)을 또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우선은 나를 빛 가운데 던져 넣어야 할까? 애니메이션의 어느 주인공처럼 꿈과 희망과 용기를 일단 외쳐볼까? 담대한 사람의 삶을 궁금해하며 누군가의 고백록(에세이)을 찾아 읽는 날이 많아졌다.



-곰를린(Bärlin ['베어'ㄹ린]): 베를린(Berlin)을 도시의 어원이자 대표 상징으로 추정되는 곰(Bär)과 섞어 부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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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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