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쩰트(Zelt) 사이에서 시위를 당기는 큐피드

뮌헨, 독일

by 프로이데 전주현

10월의 축제라는 뜻과는 다르게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매해 9월에 열리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의 민속 축제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축제이다. 그 명성 때문인지 굳이 독일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 호프집들이 옥토버페스트를 간판으로 내걸고 장사를 한다. 지금 찾아보니 한국에도 여럿 있다.

음주를 즐기진 않는 나라도 독일어와 독일을 알아가는데 맥주 문화를 무시할 순 없었다. 때마침 기숙사에 무사히 체크인을 했고 개강까지 시간도 좀 있었다. 관심 없던 물건도 리미티드에디션 스티커가 붙으면 다시 한번 살펴보듯이, 옥토버페스트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학생 할인 찬스에 힘입어 뮌헨행 기차표를 구매했다. 초급 독일어 교과 문화 파트에서 꼭 언급되던 축제의 현장을 직접 밟아봐야 나중에 수업 중에 한 마디라도 더 보탤 수 있겠지, 하면서 빨간색 옷을 입은 기차에 올랐다.

뮌헨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교과서 독일어가 아닌 사투리가 많이 들렸다. 낯선 곳에 도착했단 생각에 심기일전하며 구글 지도를 펼치려 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하는 것 같은 복장의 사람들이 눈에 한 두 명씩 들어오는 게 아닌가.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손을 꼭 잡은 노부부, 레더 호젠(Lederhosen: 가죽 바지)을 챙겨 입은 채 호탕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청년들. 핸드폰을 보며 걸으려던 계획을 접고 그들의 뒤를 밟기로 했다.

옥토버페스트의 개최지는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ese)다. 드넓은 초원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 비제(Wiese)에서 알 수 있듯이 축제의 장은 상상 이상으로 광활했다. 맥주 브랜드/회사별로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부스라는 단어 대신 텐트를 뜻하는 쩰트(Zelt)를 쓰는 게 재미있었다. 쩰트 하나는 어느 대형 서커스단의 공연장에 견줄 만큼 어마어마하게 컸고 (역시나) 시끄러웠다.

동행한 친구들은 처음 보는 맥주 브랜드가 많아 기왕이면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는 쩰트로 가자고 신이 났다. 어느 쩰트에 들어가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나는 쩰트 사이사이에 커다랗고 깜찍한 큐피드 상이 여럿 보이는 풍경에 집중했다. 가만 보니 큐피드의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에 공중 화장실이 있었다. '아 그래, 맥주 축제니깐.' 쩰트만큼이나 많은 큐피드 상이 있었다.

뢰벤브로이(Löwenbräu)라는 쩰트에 들어갔다. 어느 한 친구가 뮌헨을 대표할 만한 쩰트라고 하자, 일제히 그리로 가자고 한 결과였다. 무알콜로 치는 라들러(Radler: 레몬 맥주... 랄까)를 비롯한 모든 음료는 1리터가 기본이었다. 잔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 웬만해선 누구나 얼굴이 작아 보였다. 곁들이는 음식으로는 독일 특유의 고기친화적인 메뉴들이 많았는데 역시나 기름지고 빨리 질렸다. 간이 빵 가판대를 목에 걸고서 쩰트 내부를 누비던직원에게서 구매한 브레첼(Brezel)이 있어 다행이었다.

중앙역에서는 눈에 띄는 복장이었던 여성 전통 의상인 디언들(Dirndl)과 남성용 레더호젠은 쩰트 안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축제 분위기를 돋궜다. 알프스 소녀와 소년의 모습으로만 떠올리던 옷들이 맥주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한 곳에 있다니, 괜히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길 안내자와 같았던 노부부는 어느 쩰트에 들어갔을지 궁금해졌다.

막 1리터 잔을 비운 친구가 화장실을 찾았다. 큐피드의 화살을 따라가라고 말하며 웃었다.




- 프로스트(Prost): "건배!"의 독일어 표현. 잔을 맞대며 외치면 되는데, 이때 상대방의 눈을 노려보는 것도 잊지 말자. 부끄럽다고 눈을 피했다가는 연애사업이 망한다는 독일 미신의 덫에 걸릴지도 모른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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