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프랑스
보통은 파리를 사랑과 낭만의 도시로 포장하지만 내게 파리는 문해력이란 키워드로 기억된다. 언어를 깨치는 즐거움을 제대로 경험하게 해 준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가족 여행, 세 번의 자유 여행, 두 번의 계절학기 여행... 매 방문마다 나의 프랑스어 지식이 조금씩 달랐고, 그 때문에 이미 가본 곳이라 해도 매번 새로웠다.
영어 외의 외국어 능력은 수능 일본어가 전부이고, 전공인 독일어는 이제 막 자기소개를 할 수준일 때가 있었다. 그때 파리에서 접한 프랑스어는 알파벳을 쓰지만 전혀 다르게 읽히고 들리는 외계어였다. 이쁘기는커녕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언어였다.
독일어 전공을 한 지 2년이 넘어갈 무렵, 프랑스어 지식은 여전히 없었지만 심리적으로 유럽과 더 가까워졌다. 마인츠대 교환학생 신분을 누렸고, 덕분에 한국에서 일본 가듯 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어학 수업을 같이 듣는 파리지엥 에두아 덕에 프랑스어 악센트와 알게 모르게 친해졌기에, 영어로 답해주는 프랑스 사람들의 말을 좀 더 빨리,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파리에선 영어를 썼지만 독일어를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말동무가 되어주었기에 아쉬움이 없었다.
유럽연합과 유럽에 관해 좀 더 깊게 공부하려던 때, 국제사회를 품는답시고 UN 공식 언어 중 하나였던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보자 딱지를 막 떼어낸 뒤엔 파리 현지에서 어서 프랑스어를 사용해 보고 싶었다. 호기롭게 "봉쥬르(Bonjour)"하며 서점 주인에게 인사했다가 휘리릭 지나가는 프랑스어 공격을 받은 것도 그 무렵이다.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선 영어를 쓰는 나 자신을 보며 역시 외국어는 직접 말해 보지 않으면 무용하다고 느꼈다. 실전이 중요하다. 교과서 위주로만 공부하면 될 리가 있나.
유럽에서 유럽연합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을 땐, 독일어 외의 언어 공부에도 욕심이 생겼다. 유럽연합의 강호인 독일과 프랑스의 언어를 할 줄 안다면 졸업 후 좀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언어 학습만큼 젊었을 때 하면 좋은 게 없다고 여겼다. 뤼벤의 어학 센터에서 프랑스어 수업을 들었고, 프랑스문화원 수업과 독학을 병행하니 여차저차 B1 단계까지 마쳤다. 초급과 중급 양쪽에 발을 걸쳐 놓은 상태에 이르렀다.
때마침 운 좋게 파리를 갈 기회가 계속 생겨났고, 실전 프랑스어를 시험해 볼 자신감도 채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부딪쳐 봐야지.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오로지 프랑스어로 주문하고 가게를 나오는 것, 정확히 세 번의 시도 끝에 완성했다. "매장에서 드시고 가시나요, 포장하시나요(sur place ou emporter?)"를 못 알아들은 게 결정적이었다.
에어비엔비 주인 할머니와의 대화, 바디랭귀지의 도움을 받아 여차여차 성공했다. "저 아직 초보자이지만(je suis débutant en français, mais...)"하고서 입을 떼면서 계속해서 프랑스어로 말을 걸어달라며 할머니에게 부탁드리길 잘했다. 일주일 간 할머니와 나누었던 프랑스어 스몰토크 덕에, 파리 시내 어느 카페에 앉아 디저트 주문과 계산을 거뜬히 해냈다.
화재 사고 전의 노트르담 성당을 마주 보며, 늘 찍던 풍경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프랑스어를 알면 알수록 파리를 읽는 혜안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졌듯이, 프랑스어든 독일어든 어떤 언어를 매개로 하는 사람의 말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그를 읽고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겠구나, 하고.
외계어 같던 프랑스어가 사람 냄새나는 언어가 되기까지 6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인내와 훈련이 필요한 걸까. 다음번 파리를 방문할 땐, 어떤 상황에서 프랑스어를 연습해 볼 수 있을까. 그땐 파리가 또 얼마나 달라 보일까 파리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이메일로 받아보는 프랑스어 학습지를 열어 본다.
- Qu'est-ce que c'est? ([꿰스크쎄]) : 저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