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까진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살피는 성벽 산책길
로텐부르크, 독일
때아닌 문 소리에 '무슨 일이지?'하고 현관 쪽을 살피면, 아파트 문을 열고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빠가 있었다. "뭐 해 아빠?" 하고 물으면, "천체를 살피는 중이야." 하고 어느 사극 영화의 장군님 같은 답이 돌아왔다. 아빠는 아래에 있다면 높은 곳을 올려다 보고, 혹 높은 곳에 오를 일이 있다면 아래를 조망하며 주변을 살피는 게 지혜로운 습관 중 하나라고 했다. 서울 하늘에 특별한 게 보일까도 싶었지만 시간을 들여 지혜를 구하는 아빠의 모습만큼은 확실히 멋졌다.
여권과 함께 빨간색 종이 위에 흰색으로 저먼 레일 패스(German Rail Pass)라 적힌 승차권을 소중히 챙기던 날이었다. 로텐부르크(Rothenburg ob der Tauber)에 도착해 숙소 체크인을 무사히 마쳤고, 골목골목 걸으며 도시와 친해질 일만 남았었다. 아빠의 조언을 떠올리며, 도서관 사다리처럼 불안정해 보이는 성벽 계단을 올랐다. 아파트 복도에 나와 있는 나와 아빠를 내려다보는 별들의 입장이 되어, 높은 곳에서 구도심지를 구경해 보기로 했다. 도시에 관한 전체적인 첫인상을 정리하기에도, 어느 방향으로 걸어볼지 감을 잡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로텐부르크는 '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된 걸로 유명한 퓌센(Füssen)의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ss Neuschwanstein)과 함께 아시아 관광객들(특히 일본인들)의 '독일 로맨틱 가도' 패키지여행 코스에 꼭 등장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도심지(Altstadt; 알트슈타트)로, 중세 독일 도시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역이다. 크리스마스 박물관과 테디베어 및 수공예 인형 상점이 많아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넘치고, 2012/13년 당시 한국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유행하던 독일 간식, 슈니발(Schneeball; '눈으로 된 공'이란 뜻의 과자)의 본고장답게 관련 빵집들도 수두룩한 곳이다.
성벽 산책길은 구도심지의 마찻길 못지않게 울퉁불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폭도 좁아 혹 맞은편에서 사람이 걸어온다면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잠시 멈춰 서야 할 정도였다. 함께 걷던 홍과 나는 성벽 근처에 위치한 가정집들의 정원을 구경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세모 낳게 삐쭉 솟은 독일 전통 가옥들이 겹쳐 이루는 스카이 라인은 동화책에서 자주 보던 마을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이따금 발아래로 행인들이 지나가며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저길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니!' 하며 대화를 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성벽을 한 바퀴 돌 동안, 그 누구도 마주치지 못한 걸로 보아, 주민들이 성벽 위로 올라오는 일은 드문 것 같았다.
배가 고플 무렵, 성벽 산책길에도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어두워진다면 사다리 같은 성벽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딜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고, 성벽이 품은 구도심지의 중앙을 가까이에서 탐색해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공중 산책이 끝나자 다른 행인들과 같은 고도에 서서, 방금까지 발 디디고 서 있던 성벽 산책로를 올려다보았다. 아빠 생각이 났다.
로텐부르크의 밤하늘엔 눈에 띄게 빛나는 별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