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하던 것의 끝이 느껴질 때가 있다. 작업에 공을 들이면서 갖은 기대와 상상을 보탰기 때문일까, 결과물의 마지막 무대는 의외로 고요하다.
한 학기 내내 프리라이더 둘과 독일 친구 나디야와 함께 준비했던 포스터 콘퍼런스. 결과물을 벽에 붙여두고 혹시 모를 질문을 위해 포스터 옆을 지키며 서 있는 게 전부였다. 이따금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교수님들과 흥미를 보이는 동기들이 있었지만 임기응변식 답변이 제대로 된 질문을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수고스럽지 않았다.
두 계절이 넘도록 준비했던 석사 논문. 인쇄소를 들락날락하던 것을 멈추고 드디어 행정실에 원고를 제출하러 가는 길! 수고했다고 말하는 행정실 직원의 표정을 보며 원고를 두 손으로 건넬 줄 알았으나, 행정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에 A4 종이 박스 하나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이면지 수거함 같은 이곳에 원고를 넣어두고 가도 되는 걸까, 청소부 아주머니께서 치우시면 어쩌지. 의외의 풍경에 당황했다.
'세상은 의외로 너에게 관심이 없고, 너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지도 않는다' 던 어느 대사가 떠올랐다. 안다. 보았고 느꼈고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거다. 시곗바늘을 보면서 일정을 조율하고, 위시리스트를 작성하며, 뉴스 속 이웃들의 사연에 분노하거나 함께 울고, 새해 소원을 정리하는 한.
오래 준비한 무언가를 담담히 떠나보내고, '이게 전부였던가' 낙담 비슷한 걸 하다가 (떠나보낼 때의 순간을 기록해 모아둔다면 졸업식 겸 추모식의 기분이 동시에 들 것만 같다), 또 새로운 것을 계획할 테다.
'이걸로 된 거지' 하는 마음. 그간 키워온 기대와 상상, 애정 덕분이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