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에스프레소와의 대화

시에나, 이탈리아

by 프로이데 전주현

에스프레소는 눈치가 빠르다. 당신이 그와 사랑에 빠졌다면 주저 않고 메시지를 보내온다.

"호로롭 들이키면 끝나지만 혀가 뿌리까지 텁텁해질 만큼 진하답니다. 무겁답니다. 진중하답니다. 정직하답니다."

1일 1 젤라토만큼이나 지키려고 했던 이탈리아 여행의 리츄얼은 1일 1 커피였다. 때로는 2 커피, 3 커피가 될 정도로 맛있게 마신 걸로 보아, 어느 가게를 들어가더라도 커피가 맛있다는 이탈리아인의 증언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계속 생각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죠. 그럴 때 망설임 없이 날 다시 찾아주세요. 곧장 찾아갈게요."

한 세기가 넘도록 운영 중이라던 시에나(Siena)의 난니니(Nannini) 카페는 하루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좋은 장소였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고 싶어 하는 여행객에겐 더더욱.

"바 테이블에 앉았다고요? 좋아요. 거기 잠깐 있어요, 달링."

지역 디저트인 판 포르테(piatto deguslazione)를 함께 주문했다. 심심한 쿠키처럼 생긴 것이 입에 들어가니 묘하다. 강정도 엿도 누가가 합쳐진 느낌. 무식하게 달다 이거. 에스프레소 한 모금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거 봐요, 내가 필요할 거라 했잖아요."

강하게. 향기롭게. 순식간에. 깔끔하게. 어벙벙하겠지만 방금 당신은 에스프레소를 제대로 마셨다. 경우에 따라선 마비되었다고도 하는데, 까짓 거 홀렸다고 해도 좋다.

당신이 넘어온 걸 확인하고서야 에스프레소는 바에서 홱 물러난다. 보글보글 거품을 뿜는 유리컵과 방금 전까지 당신을 공격하던 디저트의 부스러기만이 바 테이블 위를 나뒹굴고 있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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