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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06. 2020

38. 대성당들의 시대

ESSEC 비즈니스 스쿨 겨울 계절학기 노트(5)

17.01.05 목요일


아무래도 지금 내가 공부를 하러 온 곳이 다른 곳도 아닌 파리라는 점이 마음에 계속 걸렸(?)나 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파리 시내로 향할 계획을 세웠다. 나와 같은 이유로 ESSEC 계절학기 수업을 듣고 있는 한국 학생들은 당장 과제를 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혼자면 어떤가, 파리가 나를 반겨주겠지. 특별한 걸 먹거나 보거나 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어디에서나 내가 즐겨하는 것들을 파리에서도 하고 싶었다. 서점 구경과 산책, 식감이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언제 어디서나 누리는 것만큼이나 만족스럽고 사치스러운 것도 없을 테지.


Ofr이라는 예술 서점에 들렀다. 서점 주인은 자그마한 갤러리를 한편에 마련해 두었고 중고 외투와 유럽 각지를 담은 엽서들을 '무심한 듯, 신경 쓴 듯' 늘어놓고 쌓아두고 있었다. 딱히 내 안의 소비 요정을 불러낼만한 상품은 없는 듯하여, 가게를 나서 노트르담 성당까지 맘 편히 걸어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Shakespeare and Company 서점(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곳이다.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이 곳은 노트르담 성당과 다리를 하나 사이에 두고 마치 파리를 찾은 이들을 위한 사설 도서관처럼 자리하고 있다)도 들를 수 있겠다. 


마레지구 쪽에 위치한 Ofr의 모습. 가게 안쪽에 마련된 전시장은 자칫 잘못하면 지나치기 쉽다!
사랑하는 장소: Shakespeare and Company. 영화 <비포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이 곳을 모른 척할 수가 없겠지!



파리의 1월 하늘이 무척 아름다웠다. 오렌지빛 하늘을 바라보다 (언제나 그렇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의 파리 방문기들을 되돌아보았다. 


2010년. 가족들과 함께 관광객으로서 처음 유럽 땅과 파리를 밟아본 여름. 이때의 키워드는 "만남"이었다. '나는 관광객입니다'하는 행동들은 골라서 했고, 이 박물관 저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재미에 푹 빠졌다. 

2012년. 독일어 전공생으로서 독일 마인츠 교환학생 생활을 지내던 가을/겨울. 파리를 "추억"하러, 그리고 유럽을 가까이서 "경험"하려고 했었다.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걸어 다니는 유럽은 가족들과 함께 했던 유럽과는 뭔가 모르게 달랐다. 

2015년. 교환학생 시절을 그리워했던 때에 마침 Euro-Asia Summer School에 참석을 핑계로 맞은 여름. 파리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한 지윤이를 만나고 유럽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파리와 근교 지베르니를 찾았었다.

2017년. 유럽학과 국제학도로서 유럽을 "공부"하며 그리고 처음으로 신시가지 라데팡스 지구에서 지내보고 있으며 간간히 파리에서의 "산책"을 즐기기 위해 노트르담 성당 앞을 찾아왔다. 


인연이 있다면 나의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파리 방문기도 생기겠지. 

겨울 저녁, 노을 기운이 참 따스하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노트르담 성당이 불길에 휩싸여 많이 훼손당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었다. (2018년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뚝심 있게 파리를 지키고 있던 노트르담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먹먹했었다. 나의 기억 속 노트르담 성당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당분간은 파리를 방문하게 되더라도 그때 그 당시의 노트르담을 보기란 힘들 테지. 노트르담이 담고 있는 역사와 이야기는 훼손당하지 않을 테지만, 당분간 노트르담이 조성해 내는 공적 공간이자 예배 공간으로서의 분위기와 풍경을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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