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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16. 2020

48. 뤼벤대학교 강의실 101

조각상 복도 안쪽 핫핑크, 원형 극장의 나무 십자가, 시멘트 와플 천장

17.03.01 수요일


기본적으로 2-3시간 동안 진행되는 대학원 수업에 간식은 필수다. 오늘의 간식은 독일 크래커 wasa로 정했다. 크림치즈가 듬뿍 발린 과자다. 맛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 해도 굳이 적는다면) 환상적이다. wasa 크래커를 챙기고 찾은 강의실은 인문대 지하에 위치한 중형 강의실이다. 이곳에서 2학기 최애 수업 중 하나인 <유럽 문화 정책>을 듣고 있다. 강의실로 가기 위해선 좁고 긴 복도를 지나야 하는데, 특이하게도 오래된 건물 조각들의 파편이 주욱 나열되어 있다. 마치 어느 고대 박물관처럼. 불이 다 꺼져 있을 때, 이 복도를 지나다니면 꽤나 무서울지도 모른다. 재미난 점은 한껏 무게를 잡은 복도 분위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강의실 내부가 핫핑크색으로 꾸며져 있다는 점이다 있다. 알다가도 모를 콘셉트이다.




박물관 같은 인문대 지하 강의실 복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핫핑크 강의실로 변신!



그러고 보니 뤼벤대학교 강의실들은 참 제각각이다. 통일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대형 규모의 수업들이 열리는 kleine aula는 그리스 시대의 어느 원형 극장을 떠올리게 한다. 고정 좌석이어서 책상 배열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의자 뒤에 책상이 붙어 있는 형태라 의자도 건드리지 못한다. 이렇게 강의실 설명을 해주면 원형 극장을 닮았다면, 혹시 강의실의 음향이 뛰어나진 않은지를 질문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고대 원형 극장의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 훌륭하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kleine aula는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닐 뿐, 강의를 하기에도 듣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값싼 연극의 무대 같달까. 게다가 환기도 난방도 잘 되지 않는다. 최악의 강의실이다 정말.


kleine aula 강단 정중앙 상단부에 위치한 십자가가 강의실의 재미(?)를 더한다.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은 나무 시바가 하나. 그걸 마주 보면서 강의를 듣다 보면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게 강의인지 설교 말씀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혹여 교수님께서 팔을 높이 들기라도 한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뤼벤대학교의 공식 명칭이 뤼벤'가톨릭'대학교인 점을 감안하면 십자가로 장식한 강의실이 크게 놀라울 건 없다. 그런데도 kleine aula, 이 원형 극장이 조성하는 묘한 분위기가 흔한 나무 십자가 하나도 다시 보게끔 해준다. 캠퍼스 내 십자가들을 테마로 산책을 해 보는 것도 재밌겠다. 



kleine aula의 외관과 내부 모습. 외관은 판테온, 내부는 원형극장!
인문대 도서관에 위치한 예약제 스터디룸의 모습. 2명 이상 이름을 올려두면 제한된 시간 내에 혼자서 방을 쓸 수 있기도 하다.



+ 지난 학기 수강했던 <국제기구 법> 수업의 재시를 준비하고자 (재시는 여름 방학 중에 치르게 된다!) 스터디그룹을 구성했다. 독일 친구 N과 홍콩 친구 A 그리고 나 이렇게 셋. (강의도 또로록 앉아서 듣더니 똑같이 재시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스터디 장소는 매번 달라지지만 여러 옵션들 중 가장 많이 애용하는 곳은 인문대 스터디룸이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 스터디룸은 가장 흥미로운 도서들이 한 데 모여 있는 5층 규모의 인문대 도서관 1층에 위치해 있다. 바닥에는 붉은색의 카펫이 깔려 있고(그래서 이곳에만 들어오면 기침이 그렇게 난다) 벽과 천장은 시멘트가 드러난 거친 표면을 하고 있다. 천장 모양은 브뤼셀 와플처럼 네모 칸칸이 나있어서 공부 도중에 스트레칭을 한답시고 천장을 바라보기라도 하면 은근 배가 고파진다. 난방이 너무 잘 되어서 메마른 기침이 나오기 일쑤다. 정말이지, 완벽하게 맘에 쏙 드는 공부 공간을 찾기 참 힘들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kleine aula는 심지어 조명도 어두침침해 수업 도중에 몇 번이고 눈 마사지를 하게도 했다. 여러모로 교수님에게 집중하기 힘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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