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19. 2020

51. 분데스리가 시즌이니 가끔은 미쳐줘야 합니다.

써니와 함께 -  마인츠대 독일학 교환학기 회상 여행 (3)

20.03.04 토요일(계속)


부활절 초콜릿 쇼핑을 한바탕 마치고서 마인츠대 K3 기숙사 쪽으로 향하는 트렘에 올랐다(이전에는 이쪽으로 트렘이 다니지 않았는데 어느새 교통망을 확충해 둔 모양이다. 덕분에 Opel Arena까지 많이 걷지 않아도 되었다). 생애 첫 분데스리가 관전을 위해서였다. Mainz vs Wolfsburg. 


경기장 근처에 다다르자 술 냄새가 났다. 웬걸,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경기장 바깥에 맥주병들이 '가지런히' 집결해 있질 않는가.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반쯤 취해 있는 게 독일인으로서의 예의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온라인 예매 티켓을 수령하고서 기념품 샵을 슬쩍 구경하고서 A 코너 좌석을 찾아 나섰다.  좋은 좌석은 아니었지만 단순 문화 체험을 위해서는 가격도 적당했고, 바람도 선선히 부는 위쪽 좌석이라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단, 한 가지 함정이 있다면 경기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써니와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 버렸다는 거다. 그렇게나 점잖던 마인츠 사람들이 마구 함성을 지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에너지가 가득하다 못해 폭발했다. (놀랍게도) 가족 단위로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분데스리가가 단순히 스포츠 쇼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독일 사람들의 일상이자 가족친화적 취미인 게 느껴졌다. 


마인츠 홈경기장: Opel Arena의 모습. 경기 전 이미 '끝내버린' 맥주병들이 한 데 모여있는 풍경이 꽤나 웃기다.


(안타깝게도) 독한 담배 연기를 뿜어내시던 할아버지 옆이 우리 자리였다. (아시아인인) 써니와 내가 경기장에 들어서는 게 신기했는지 할아버지께서 질문을 연이어하셨다. 경기장은 응원과 함성 소리로 매우 소란스러웠기에 바로 옆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인데도 아주 작게 들렸다. 'Wie bitte(뭐라고요?)'하며 얼마나 되물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누구를 응원하려 왔냐며 혹시 마인츠의 일본인 선수 무토를 응원하러 온 일본인이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한국인이며 이전에 마인츠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서 놀러 왔다고 대충 대답했다. 아시아인만 보고서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하고 묻는 질문, 정말 지겹고도 지겹다. 할아버지는 잘 왔다면서 써니와 나에게 종이로 된 응원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굳이 손수) 알려주시고선 엄지 손가락을 세우시더니 다시 담배와 경기 관람에 집중하셨다.


딱히 마인츠 구단의 팬은 아니었지만, 이전부터 한국 선수들과도 인연이 있던 팀이기도 했고, 사랑하는 마인츠의 중요한 문화이기도 하니 기왕이면 마인츠 팀을 적극 응원해 보기로 했다. 물론 할아버지의 담배 연기에 이따금 정신이 아득해지긴 했지만 경기장 내부의 열정적인 분위기가 절로 가슴을 뛰게 했다. 정말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보러 온다면 몰입도가 엄청나겠구나, 하는 느낌도 컸다.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휴식 시간에 진행된 가족 단위의 슈팅 이벤트, 역시 마무리는 기념사진이다. 마인츠 캐릭터와 die Maus(일명 독일쥐)도 보인다.(가운데)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인상 깊었던 점은 전반전 이후에 가진 휴식 시간 동안 경기장에서 각종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벤트에 관한 안내 메시지를 들어보니 올해 90번째 생일을 맞으신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한다는 내용과 어느 가족의 막내가 대표 선수로 슈팅을 선보이는 이벤트라고 한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문화의 장, 분데스리가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50. 부활절 토끼를 입양하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