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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음지기

만드는 과정을 나누는 시간

지음지기 첫 북토크 <이번 역은 압구정역입니다> 비하인드 및 후기

by 프로이데 전주현

일전에 한 작가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아무도 나를 알아보질 못하는 삶, 스타 작가는 아니더라도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삶."


질문을 받았던 사람들의 연령대는 2030. 평소 책을 좋아해 관련 분야에 자주 기웃거리는 사람들과 작가지망생이라 자기소개를 할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 팟캐스트와 방송, 그리고 작가님의 책을 몇 권 읽었던 독자로 나도 그 무리에 껴 있었다.


작가님이 던진 질문에 다들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답변은 한쪽으로 쏠렸다. 모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작가님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나도 다수와 의견이 같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도 명예로운데 그 글이 잘 팔리기까지 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쓰기를 작업이라 부르는 삶은 내게 오래 품어 왔던 꿈이었으니까.


그런데 작가님은 왜 그런 표정을 지으셨을까? 굳이 따지자면 전자의 삶, 질문을 받았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당사자셨는데.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십년지기 친구와 함께 독립출판 팀, 지음지기를 꾸렸다. 친구(정연이)는 학부 전공을 살려 팀의 그리는 사람, 나는 오랜 꿈에 날개를 달아줄 작정으로 쓰는 사람이란 포지션을 맡았다. KF94 마스크를 쓰고 집 밖을 나가는 게 일상이자 의무였던 때였다.


친구 사이에 창작 동료라는 레이어가 하나 더 추가되자 정연이와의 관계는 훨씬 더 풍성해졌다. 아무래도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그때 했던 고민들을 일기장과 컴퓨터, 메모장 위에 약 1년 간 늘어놓았다. 함께 꾸준히 쓰고 그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세 권의 독립출판물을 완성했다. 2024년의 열매였다.


인쇄소에서 택배로 보내온 책들을 처음 만나는 시간. 그때만큼 냉장고에 붙여 둔 택배칼을 조심스럽게 쓰는 날도 없을 거다. 2022년 겨울의 작업은 <숲에서 도토리 한 알을 주웠습니다>란 제목의 책으로, 2023년 봄의 작업은 <너와 나의 니은>, 2023년 여름의 작업은 <이번 역은 압구정역입니다>로 엮었다.


우리들의 작업 과정을 몰랐던 사람들은 "어떻게 한 해에 책을 세 권이나 낼 수 있냐"며 놀라움을 표했다. 하지만 절대 단번에 이룬 성과가 아니었다.


세 권의 책은 지음지기란 팀을 결성하고 정연이와 내가 부단히 1년 간 만들어간 시간과 공간의 결과물이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쥘 수 있는 것만이 성과는 아니지만,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던 창작가로서의 꿈, 글과 그림의 탑이 책이란 물성을 지니면서 꽤 큰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지음지기의 책들. 왼쪽부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독립출판물 작가는 뭐든 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기획부터 콘텐츠 제작, 유통과 홍보까지 모두 작가 하기 나름이다. 고로 고전하며 만들었던 책을 받아 든 이후엔 파트너 찾기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직접 판매를 할 수도 있지만 약은 약사에게 제조를 맡기듯이, 책의 판매도 동네/지역 서점과 북 큐레이터 분께 부탁드리는 게 네트워크를 다양화하기에 좋다. 우리의 책과 어울림이 좋은 서점에 입고 문의 메일을 보내는 것. 그것은 지음지기가 처음부터 고수했던 판매/홍보 전략이었다.


메일을 받는 분이 지음지기를 모른다는 가정을 하고, 입고 문의 메일을 쓸 때마다 팀의 소개글과 포트폴리오 주소, 책 소개문과 연출사진 등을 상세히 정리해 보내드렸다. 그에 따른 결과는 수락 혹은 거절로 간단했지만, 둘 중 어느 쪽이 되었건 간에 바쁘신 와중에 답장을 주시는 책방지기 분들께 참 감사했다. 거절도 메일을 읽어봐 주신 분들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기 때문이다(거절의 말이 어려워 답을 아예 주시지 않는 분들도 많은데 그것보단 거절이더라도 말을 주시는 게 상호 신뢰와 소통에 도움이 된다).


오늘 이곳에 나눌 내용은 지음지기가 만든 세 번째 책 <이번 역은 압구정역입니다>의 입고처를 더 찾고 있을 때의 일이다. 입고 메일 한 통으로 찾은 감사한 책방에 관한 후기글이다.




2025년 1월 27일.


입고메일을 보냈다. 수신처는 콜링북스. 압구정로데오에 위치한 3평 서점이었다. 입고 문의 도서는 지음지기의 세 번째 책, <이번 역은 압구정역입니다>였다. 프로젝트 디귿(ㄷ), '동네'에 관한 쓰는 사람과 그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산책 에세이집이었다.


책에 담긴 내용이 압구정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의 추억과 기록인 만큼, 압구정에 위치한 콜링북스에 우리들의 책을 입고할 수 있다면 이만한 '깔맞춤'이 없다고 생각했다. 콜링북스에서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걸 자주 보진 못했지만, 서점과 결이 맞는 콘텐츠를 골라 정성스레 소개해주시는 이지나 작가님이 책방지기시니, 어쩐지 메일을 보내면서도 기대감이 컸다.


보통 입고 메일을 보낸 뒤엔 결과(답장의 유무나 내용)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를 잊으려 한다. 그런데 콜링북스로 메일을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답장을 주신 것도 감사한데 입고를 하겠다는 긍정의 답변까지 돌아왔다. 놀라웠던 건 우리의 책을 친구 분께 선물을 받아 이미 읽어보셨단 점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 보니 그 친구 분은 지음지기의 두 번째 북페어였던 2024 서울 퍼블리셔스테이블에서 안면을 익히고 인사드렸던 정은 작가님이었다.


그렇게 지음지기는 콜링북스와 연결되었다.



2025년 3월 7일.


지음지기도 콜링북스도 겨울방학을 끝내고 다시 '작업'모드로 들어온 달이었다. 정연이와 나는 첫 번째, 두 번째 책을 만들 때 제작했던 책갈피 세트를 들고서 콜링북스로 향했다. 입고 도서 10부를 택배로 부친 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다.


평소 좋아하던 서점의 책방지기이자 작가님을 방문객/손님 자격이 아닌 파트너 작가 자격으로 만나 뵙는다니! 설레었다. 삼자대면을 위해 지나 님께서 손수 책 속에 등장하는 장소 '파스텔 드 나따' 에그타르트를 사 오신 걸 보고는 2024년에 네 번의 북페어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감동도 되살아났다. 올해도 책을 핑계 삼아 사람 대 사람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겠다는, 독자를 만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우리는 3월 26일 저녁을 함께 계획했다. 지음지기의 첫 북토크였다. 입고 메일을 주고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감사하게도 지나 님께서 먼저 제안해 주신 워크숍이었다. 지음지기에겐 첫 번째 북토크였다. 콜링북스는 압구정에 있는 콜링북스가 소개하는 <이번 역은 압구정역입니다>를 매개체 삼아, 정연이와 나의 우정이 꽃피워낸 기록과 창작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했다. 일시와 송출 방식, 홍보 시기, 발표 자료, 비용 등... 첫 만남부터 행사 준비를 위한 여러 의견이 오갔다.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먹은 에그타르트처럼 바삭하고 달았다. 지음지기의 비하인드 썰을 푸는 건 정연이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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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링북스에서의 첫 인사와 회의



2025년 3월 26일.


북토크 당일. 아침부터 집 청소를 했다. 거실에 놓인 책장과 식탁을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온라인 북토크 중 네모난 화면으로 잡힐 공간이었다. 콜링북스와 우리 집, 그리고 관객들. 다원 생중계로 진행될 행사 화면에 혹여나 지저분한 것이 걸릴까 봐 나름대로 쓸고 닦았다.


책 사진을 찍는다고 이전에 구입해 두었던 원형 조명도 꺼냈다. 한동안 사용할 일이 없어 먼지가 쌓여 있었는데 북토크 덕분에 깨끗해졌다. 조명이 영 부실한 우리 집에 꼭 필요한 보조 조명이었다. 북토크가 시작 전에 도착할 정연이를 맞을 준비도 했다. 콜링북스에서의 회의 이후 함께 canva로 손 보았던 피피티 자료를 2부 인쇄했고, 저녁식사 겸 먹을 샌드위치도 주문했다.


행사를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으니 문득 회사 다닐 적 대회의실 세팅하던 게 떠올랐다. 그때와 지금 다른 게 있다면, 이번 행사의 주인공/발표자는 나라는 거였다(오예!).


깨끗해진 거실을 보고서 정연이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기분이 꽤 좋았다. 정연이는 북토크를 끝내고 산수유 마을에 놀러 갈 거라며 자랑을 했다. 나는 베란다 창 너머로 보이던 노란색 꽃망울의 나무가 산수유나무인 줄 그날 처음 알았다.


샌드위치를 입에 물면서 피피티 자료를 함께 넘겨보았다. 우리 나름의 시뮬레이션. 오디오가 겹치지 않도록 발표 파트를 임의로 나누고(물론, 실전에서 이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만), 신청자 분들의 질문을 소개하면서 답하기 좋은 타이밍을 논의했다(최대 인원수를 10명으로 정해두었는데, 감사하게도 8분이나 신청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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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발표 자료를 점검하고, 화면 뒤에 걸릴 서가를 점검하고, 조명을 켰 다



어느덧 다가온 실전의 시간. 90분이 110분이 되도록 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지금까지, 독자들과의 만남은 북페어 부스를 통한 게 전부였다. 좁고 기다란 책상을 사이에 두고서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고, 그러다 혹 질문이 들어오면 또다시 답해드리고, 사인은 원하시는 분께만 해드리고... 북페어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짧았다. 그래서 아련했다.


반면에 북토크는 길면서도 짧았고, 짧으면서도 길게 독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길면서도 짧았던 건 아무래도 준비했던 내용을 200% 전달해 드리고 싶은 욕심이 앞섰으나 그러지 못한 기분 탓이고, 짧으면서도 길었던 건 긴 호흡으로 우리들의 책과 우리를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라인으로 진행한 행사라 한 공간에 머물며 호흡을 교환할 순 없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짬을 내어 지음지기의 이야기를 들으러 모인 사람들을 바둑판식 배열로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감동스러웠다.


수업이나 강연을 준비할 때마다 느꼈다. '가르치고 알려주겠다'는 입장에 선 사람이 도리어 더 배우고 반성한다고. 북토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으신 분, 책을 읽고 계신 분, 책 배송을 기다리시는 분, 책을 읽진 않았지만 창작에 관심이 있으신 분... 여덟 명의 관객이 저마다 다른 마음으로 지음지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 감사했다.


독립출판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책상에 앉게 하는 당근과 채찍이 무엇인지, 창작의 키워드나 책의 콘셉트를 잡는 방법이 어떻게 되는지, 함께 작업하는 도중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는지, 앞으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관객들의 질문은 (시간과 공간, 책) 만들기의 연속이었던 지난 2년을 속속들이 비춰주었다(관련 내용은 2025년 1-2월 동안 브런치에서 연재하기도 했다). 나 또한 여러 작가 분들의 독자로서,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는 창작 과정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일찍이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답변드리려고 했다.


지나 님께서도 북토크 내내 추가 질문을 던져 주시면서 분위기를 더 끌어올려 주셨다. 관객 중엔 외부인인 척하고 회사 책상에 앉아 있던 남편도 있었는데, 그를 몰랐던 지나 님께서 마이크 음소거를 해제하고 소감을 나눠달라는 요청을 하자, 남편이 말을 지어내느라 당황해하던 게 내겐 웃참 모먼트로 남았다. 정연이의 친구도 함께 자리해 주었는데, 북토크가 끝난 다음 자진해서 쓴 후기글을 공유해 주어 고마웠다.


진득하게 (예비) 독자분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북토크라면 이런 기회를 좀 더 자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북토크 발표 화면



그때 그 작가님께서 내게 다시 질문하신다면 나는 답변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해도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다면 마음 한편이 공허할 거예요. 책의 완성은 인쇄가 아니라 독자를 만나는 거니깐요.

독자와의 만남은 그가 내 책을 사서 읽는다는 것 그 이상이에요. 책을 매개로 진득한 대화를 나누는 깊은 사귐으로도 발전이 가능하지요.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 삶과 삶의 만남이 바로 독자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북토크나 북콘서트와 같은 자리를 마련해서 작가와 독자, 우리들끼리의 조촐한 파티를 열고 싶어요.

모두가 스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쩌다 될 순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나누고 책 속에 담긴 사람을 나누고, 꿈을 나누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래도 그 작가님께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실까?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실까?

모를 일이다. 정답도 없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짓고 싶다. 창작 동료와 뛰놀고 싶다.

첫 북토크를 따뜻하게 마쳐 다행이다.






"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지음지기(@drawnnwrittenby) 포트폴리오

그리는 사람 최정연 쓰는 사람 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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