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시를 향한 짧은 고백
연희동의 어느 서점에서 주머니시를 처음 보았다. 담뱃갑 형태의 시집은 네모나고 큼지막한 책들 사이에 어깨를 한뜩 움츠리고 있었다. 나는 작고 귀여운 것에 쉽게 마음을 여는 편이었고, 비타민시 한 갑(?)을 사서 서점을 나왔다. 카드 형태로 낱낱이 흝어지는 주머니시의 형태가 어쩐지 시와 닮았단 느낌을 받았다. 가볍게 한 숟가락 떠먹었지만, 씹을수록 다양한 맛이 나는 쌀밥처럼, 시는 내게 확실히 머물렀다가 다양한 맛을 보여주고선 "꿀떡!" 목구멍 뒤로 휘리릭 날아갈 때가 많았으니까.
그땐 몰랐다. 내가 몇 년이 지나고서 주머니시에 시를 써낼 줄은.
나는 종종 문학을 밥에 비유했다. 그만큼 숨통이 트이게 하는 매체이기 때문인데, 그중에서도 시는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이 큰 장르여서 가성비(?)가 좋았다. 시의 언어에는 감정과 감각이 한껏 응축되어 있다. 때문에 한 번에 많이 먹기가 버겁다. 뭐 굳이 먹겠다면 말리진 않지만, 기분 좋게 배부르려면 매일 적정량의 시를 섭취하는 편이 나았다. 알아서 조금씩 챙겨 먹는 영양제나 다크 초콜릿처럼.
대단한 것처럼 적었지만 사실 시에 친밀감을 표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오히려 오래도록 나는 시에 편견을 갖고 있었다. 짐작컨대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하나. 수능을 위해 공부한 문학은 (웬만해선 다들 그랬겠지... 만?) 재미가 없었다. 문학이라면 각자 해석하기 나름 아닌가 싶었는데, 그 수많은 선생님들은 늘 정답이 있다고 분필과 회초리를 동시에 들었다. 정답 있는 시는 지루했고 암기 대상이었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했더라도, 어쩐 일인지 그런 시는 시험에 나오질 않았다.
둘. 중학교 1학년 때 만났던 친구, D는 좀 달랐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했고 시를 좋아했다. D는 시를 읽는 것도 모자라 직접 시를 썼다. 상도 몇 번 받았는지 교내 시화전에 몇 번 작품이 걸리기도 했다. D에겐 비범한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시는 D처럼 범상치 않은 친구들만 쓸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문학 시간에 공부한 시인들의 이력만 살펴보더라도 독립운동가나 N잡러, 천재들이 많았다.
그러다 재수 후 스물 하나. 대학 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표를 짜고 일정을 조율할 수 있는 상황이 엄청난 해방감을 줬다(자유! 자유! 자유!). 이것저것 많이 찾아 읽고, 듣고, 봤다. 서울을 구경하느라 매주 토요일마다 밖을 전전했다. 그중 서점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베스트셀러라는 카테고리나 책방지기의 추천글 덕분에 뉴스 헤드라인은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눈에 좀 더 잘 들어왔다. 그때, 시와 다시 친해졌다.
시집들 표지가 참 이뻤다. 복잡하지 않은 디자인이 많았는데 그 덕에 글자와 단어, 문장의 분위기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얇디얇은 책 두께도 매력적이었다. 들고 다니기 편해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반전 매력! 얇은 시집이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묵직했다. 깊었다. 처절하기도 했고 황홀하기도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 사이를 걸어 다니는 기분이 들 정도로 몽롱해지기도 쉬웠다(숙면에 최고). 그런데도 계속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자발적으로 찾아 읽은 시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줄 몰랐다. 읽기에 재미를 붙이니 쓰기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나도 이런 멋진 글을 쓰고 싶다. 읽는 것도 좋지만 내가 직접 쓸 수 있으면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얼레? 여태 나와 D는 다른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나는 D와 비슷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다는 발견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스스로를 작가라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깨지기 시작한 건 내 글이 아닌 남의 글을 고치고 다듬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나름대로 정성스레 고친 글을 좋아하는 저자도 있었지만 네가 뭔데 이렇게 왈가왈부하듯이 관여를 하느냐면서 버럭 핀잔을 늘어놓는 저자가 더 많았다. 울컥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편집자는 권한이 많으면서도 적었다. 저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편집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매끄러운 문장으로 구성이 된다 할지라도 좋은 편집은 아니었다.
편집만으로도 뿌듯함을 느꼈다면 아직까지 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나는 편집만으로도 만족할 줄 몰랐다. '아,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저자가 되는 상황을 만들어야겠어.' 그리고 그 결심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일들 - 코로나와 입사, 브런치 작가 신청, 퇴사와 결혼, 독립출판 팀 "지음지기" 결성, 그리고 주머니시 작품집 공모- 과 얽히고설키기 시작했다.
주머니시 작품집 공모 일정을 확인한 건 우연이었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의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이렇게 알고리즘의 혜택을 누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때문에 SNS에서 랜덤으로 콘텐츠를 골라 보는 대신, 주기적으로 나의 관심사를 검색하고 저장해 두면서 알고리즘이 나를 위해 일할 수 있게끔 하루 일정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다섯 번째 작품집의 공모 주제는 'A.I.' 그때나 지금이나 인공지능은 트렌디한 주제였다.
누구나 글을 써서 인터넷으로 제출하면 된다고 적혀 있었다. 심지어 공모 주제를 굳이 신경 쓰지 않고 적은 글이더라도 괜찮다고 했다. 주머니시의 특성상, 분량을 잘 지켜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대중성이나 문학성 등은 선정 위원들이 신경 써서 봐준다고 했다. 공모 주제가 흥미로웠던 것, 주최 측의 공지가 친절하게/자유롭게 느껴졌던 것, 그리고 응모 방식이 편리했던 것, 모두 맘에 쏙 들었다.
'이젠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
글 쓸 결심만 선 지 오래였다. 오랜 망설임이 무색하게도 시작은 홀가분하게 이뤄졌다.
그리고 지금, 주머니시 공모전에 참가한 지 3년 차가 되었다. 그간 네 번의 작품집 공모에 응모했고 50%의 확률로 선정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처음으로 도전했던 다섯 번째 작품집(공모 주제: A.I.)에선 '동화'란 제목의 시를, 최근에 출간된 일곱 번째 작품집(공모 주제: 쓰는 운명)에선 '돌잡이'란 제목의 시를 선보였다. 앞의 것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듣고 김영하 작가의 <작별 인사>를 읽으며 했던 상상을 바탕으로 조금 길게 적었고, 뒤의 것은 공모 주제를 확인하자마자 떠올랐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더듬으며 짧게 적었다.
주머니시 덕분에 루틴이 생겼다. 공모 주제와 일정을 확인하고, 이래저래 창작의 놀이터에서 뛰놀면서 글을 다듬다가, 결과를 확인하고 경우에 따라 저작권 계약서를 쓰고 정산서를 확인하는... 그 일련의 과정엔 놀랍게도 작가라는 직함이 나를 늘 따라다녔다.
'어, 이게 되네?' 이 말은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이었다. 나도 써도 되는구나. 일기장 말고 다른 곳에. 독자의 반응을 상상하면서. 장르의 구분 없이. 장난스럽게. 때론 진지하게.
때문에 손안에 쏙 들어오는 시집, 주머니시에 늘 고마운 마음이다. 고마운 경험은 이렇게 티를 좀 내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추신: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D 생각도 많이 했다. 도쿄에 살고 있다는데 조만간 편지 한 통을 보내야겠다.
추신 2: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 글을 점검하는데 D가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안부 인사를 나누는 친구들에게 방금까지 D 생각을 했다고 전했더니, D는 별 걸 다 기억한다며 아직도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방 한편에 쌓아둔 시집 더미를 찍어 보여주기까지 했다. 여전하구나. 안부 인사가 한 편의 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