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열 번째 생일
이전엔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매해 찾아오는 생일을 호들갑스럽게 맞이했지요. 파티를 열었습니다. 식탁 가운데에 앉았고 선물 포장지를 정신없이 뜯었습니다. 도레미송이 등장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수록곡, "I'm sixteen going on seventeen(나는 곧 17살이 되는 16살이지)"의 노랫말이 나의 이야기처럼 들릴 때에도 그랬습니다. 곧 어른이 될 줄 알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었고 많이들 인생에 한 번 본다는 수능을 두 번이나 봤습니다. 사회는 나를 법적으로 성인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크게 달라진 게 있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여전한 듯한 기분. 어른이 되는 게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함께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이전만큼 즐겁진 않았지만 한 살, 두 살 더 먹는 게 두렵진 않았습니다. 아직 어른이 된 것 같진 않지만 뭐,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이 고맙기도 하고 지독하게 지루하게도 느껴집니다. 이젠 나이를 잊고 지냅니다. 어쩌다 나이를 운운하는 상황을 맞닥뜨렸어도 그에 갇혀 있고 싶지 않다면서 미간을 찌푸립니다. 누가 생일을 챙겨준다면 고마워하지만 굳이 성대하게 기념하려 하진 않습니다. 저절로 성인이 될 순 있지만, 저절로 어른이 될 순 없다고 결론을 내렸거든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져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둔 일기장을 누가 볼세라 비밀상자 안에 감춥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살자고 다짐하지요.
그때. 그때마다 글을 씁니다. 감정을 기록하고 밖으로 표출하지 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적나라합니다. 하지만 솔직합니다. 몇 번 들어도 '나의 이야기'란 사실이 묘한 안정감을 줍니다. 그 기분에 취해 계속 씁니다. 기록이 쌓입니다. 생각이 자라납니다. 이번엔 편집을 해볼까? 공상을 좀 더 해볼까? 어릴 적 숱하게 읽었던 책들, 나를 매료시킨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의 기록을 이리저리 엮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만듭니다. 컬러링북의 한 면을 채우듯 페이지를 완성하는 데 몰두합니다. 그랬더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 더 가벼워지고 잠도 잘 옵니다. 쓰는 일생,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미련한 사람이라, 한 번 몸과 마음이 새긴 것을 꾸준히 붙잡으려 합니다. 그랬더니 이름 앞뒤에 새로운 말이 따라붙습니다.
"작가."
두 마음이 듭니다. 하나, 틀린 말도 아니지. 계속 쓰고 있다는 건 무언가를 '짓고' 있다는 거니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쓰다 보면 느는 거지. 중요한 건 계속 쓰고 있다는 그 감각이고 시간인 거지.
둘, 작가? 내가? 그래도 되나? 책표지에 적혀 있던 여러 이름이 떠오르고 얼떨떨해집니다. 부끄럼을 탑니다. 세상엔 글 잘 쓰는 이들이 너무 많고, 이야기꾼의 기술은 현란해. 작가 중엔 어른이 많은 것 같아. 그렇지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걸. N번째 생일을 맞으면 맞을수록 두 마음이 자주 충돌합니다.
그때. 그때마다 제게 작가라는 수식어를 가장 처음으로 붙여준 브런치를 떠올립니다. 처음으로 작가 신청서를 넣을 때를 회상합니다. 완성된 작품, 완벽한 작품을 제출하지 않았지. 예시로 글 몇 편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건 쓰고 싶었던 것들을 꿈꾸는 마음이었지 참. 그때 그 꿈은 감격스럽게도 여러 문장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그간 브런치를 쓰면서 조회수나 구독자 수 등의 지표를 무시할 수 없어 괴로울 때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제가 소중히 여겼던 건 제게 허락된 지면이 있단 점이었어요. 그랬더니 작가란 타이틀을 단단히, 당당히 제 것으로 박아두고 싶어 졌습니다.
그런 브런치의 열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오늘이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작가 신청서를 썼을 때의 초심을 떠올리며 어느 유명 작가가 제게 물었던 질문을 떠올립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아무도 나를 작가로 몰라주는 삶과 스타 작가는 아니지만 나를 작가로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은 삶, " 둘 중 무엇이 좋으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인정받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앞의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기왕 글을 쓰기로 한 거 성공적으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답변을 바꿔 이야기합니다.
저는 돈을 벌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아닙니다. 스스로를 알아가고 제가 사랑하던 이야기들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또 브런치와 독립출판을 겪어보면서 제 글의 완성은 독자를 만날 때란 교훈을 얻었거든요? 그래서... 꾸준히 펜을 들고,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 춤을 추다가, 진심으로 다가오는 독자를 몇 명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하루를 보낸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더 어른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무척이나 기쁠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브런치, 생일 축하해요. 고마워요. 머뭇거리던 나를 작가라고 먼저 불러주어서. 계속 써볼게요. 꿈꿔볼게요. 어른에 가까워지는, 쓰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