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아빠들은 왜 그럴까? 삿포로 가족 여행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우리 집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게 다른 집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을 때,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쉰다. '사람 사는 게 똑같진 않더라도 비슷하구나.' 한편으론 아쉬움이 남긴 한다. '최후의 보루이자 믿을 구석 같아 보이는 가족도 완전할 순 없구나. 결국엔 허점투성이인 사람들이 모여 이룬 집단이니까.' 하고서.
관련하여 예시를 두 집안의 들어보겠다. 먹는 얘기라 좀 찌질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더 확 와닿을 거다.
먼저 시부모님, 목포 가족의 이야기.
하나.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이쁜 사람이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시어머니 얼굴을 가만히 보시다가 뜬금없이 "어쩜 그렇게 이쁘오?" 하고 고백을 서슴지 않으신다. 프러포즈를 하실 때, "당신이 나랑 결혼해주지 않으면 이 바다에 팍! 빠져 죽겠소!" 하고 선언을 하셨을 정도로 감정 표현에 솔직하신 분이다.
둘. 벨런스 게임을 할 때, 시아버지는 피자를, 시어머니는 치킨을 고르시는 편이다.
셋. 그런데 놀랍게도 시아버지는 살아하는 시어머니에게 치킨을 자발적으로 사주신 적이 없다. 피자는 자주 사 오신다. 왜? 본인이 좋아하시니까.
다섯. 시어머니에게 치킨을 사주는 건 결국 남편과 시누이 몫이다. 배달앱에서 이따금 목포 가족의 주소를 선택하고 메뉴를 골라 담고서, "엄마, 치킨 배달까지 45분 정도 걸려요." 하는 안부 전화를 드린다.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또 한발 늦으셨군.' 하고 생각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시아버지는 왜 그토록 사랑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치킨을 사주시지 않는 걸까?
이젠 우리 집, 대구 가족의 이야기.
하나. 아빠는 종종 주장한다. 골드미스(당시 36살)였던 엄마를 자기가 구혼 시장에서 구해주었다고. 엄마 얘기는 좀 다르다. 아빠(당시 38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자기였다고. 서로가 서로를 구제해 주었다고 하는 이 대화가 나는 그저 귀여운 애정 싸움처럼 들린다. 사랑해서 결혼했으면서 괜히 장난은.
둘. 벨런스 게임을 할 때, 아빠는 해산물과 야채를, 엄마는 고기를 즐겨 먹는다고 답하는 편이다. 하지만 고기파인 엄마가 좋아하는 해산물이 있다. 바로 (대)게다.
셋. 아빠는 가정적인 사람이다. 요리와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고, 엄마를 '우리 집 황녀'라 부르며 떠받든다. 외식을 할 때마다 엄마에게 메뉴 선택권을 넘길 정도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넷. 엄마가 대게를 먹고 싶다고 외칠 때마다 아빠는 말을 빙빙 돌린다. "그건 좀 비싸지 않나?" "제철이 아닌데." "둘이서 먹기엔 너무 양이 많아."... 그러면서 은근슬쩍 아빠가 후보 삼은 식당이 서너 곳을 거론한다. 그중에 대게 전문점이 있냐고? 그럴 리가.
다섯. 나는 그 대화를 '대게 토크'라 부르며(이름을 붙일 정도면, 엄마가 얼마나 자주 대게를 외치고, 아빠가 그동안 엄마나 엄마의 제안을 반려했는지 짐작이 가려나?) 엄마 편을 든다. "안 되겠다. 우리 겨울에 대게 먹으러 가자, 엄마!" TV에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삿포로 털게 정식이 등장할 때에도 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건다. "우리 대게 먹으러 가야 하는데!" 하고.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아빠는 왜 자신이 구제한(혹은 자신을 구원해 준) 엄마를 위해 대게 한 번 사주지 않는 걸까?
물론 사랑 표현엔 정답이 없다. 이를테면 주관식이다. 여러 변화구가 있을 뿐이다. 아빠들이 엄마들에게 치킨과 대게를 사주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변화구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잡할수록 돌아가라고 하질 않는가. 복잡함의 대척점에 있는 것, 이를테면 직관적이고 필사적인 "먹는 문제"를 사랑 표현에 활용해 보면 어떨까? 의외로 쉽게 강력한 한방을 날릴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 모두는 필멸자란 사실이다. 좋든 싫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온몸으로 앓아내야 할 때를 맞는다. 그때, 그 사람과 함께 이뤄갔던 것들 만큼이나 그 사람에게 미처 해주지 못한 것들이 여럿 떠오를 거다. 그중에 혹여 한 끼 식사처럼 일상적이고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나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지금 나와 시간을 보내주는 사람,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는 바로 5분 뒤도, 일주일 뒤도, 막연한 나중에도 아닌 지금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 가까울지 멀지 모를 미래(이별의 때)에 스스로를 좀 덜 미워할 수 있을 것 같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일상적이라 눈여겨보지 않았던 주변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질 때, 내 마음은 초라하게 쪼그라들다가도 이내 격렬히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며 용감해진다. 용기는 사랑을 부르고,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부르며 주변으로 번져 나간다.
그러니까... 다시 문제로 돌아가보자.
아빠들은 왜 그럴까?
2025년 9월에 다녀온 삿포로 가족 여행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