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넷, 캐리어 둘, 휠체어 하나

준비물의 변화

by 프로이데 전주현
전에는 생각지도 않던 물건을 챙겼다. 여행용 휠체어였다.



여행이란 말엔 힘이 가득하다.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리는 것만으로도 맘 속에 산들바람이 불어 올 정도다. 여행지에서 하는 활동(산책과 식사, 잠, 사진 촬영 등)이 일상지에서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도 그런다. 단지 환경이 낯설고 새롭다는 것만으로도 권태로움보다 호기심이 앞서고 두려움보다 설렘이 고개를 빼꼼 내밀다니.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정말.


녀석과의 동행은 언제부터 시작하는 걸까?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 체크인을 했을 때? 여행지에서 첫 끼니를 먹었을 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교통수단과 숙소를 확정 짓고, 짐을 꾸리기 시작할 때부터를 여행과의 본격적인 동행이라 여긴다. 교통 수단과 숙소 예매는 서두르는 반면에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하는 건 그로부터 한참을 지나서이기 때문일까? 등에 이고 손에 쥘 물건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기 전까진 1,2주 앞으로 다가온 여행도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삿포로 가족여행은 시작이 남달랐다. 전에는 생각지도 않던 물건을 챙겼다. 여행용 휠체어였다. 고관절 수술 이후 지팡이 없이 오래 걷기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언젠가 하나쯤 구비해두고 싶은 물건이었는데, 이번 가족여행이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다(시부모님과의 오키나와 여행 때, 비행기 탑승 게이트 앞까지 유모차를 대동하는 여행객들을 보면서 엄마와 함께 여행할 때엔 휠체어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부모님과의 여행엔 동선을 고려하고 이동수단을 적극 활용한 체력 아끼기가 필수니까.


다른 여행지라면 몰라도, 고령 인구가 많고 사회약자들을 위한 생활 속 배려가 더 깊은 일본이라면, 휠체어 여행을 하기에 좋을 거란 기대도 한 몫했다(친구와의 교토 여행 중에 휠체어 승객을 위해 '기울어진 버스'를 본 게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관련 에피소드 읽기). 특히나 삿포로는 겨울마다 반복되는 폭설로, 지상도로만큼이나 지하도로가 잘 되어 있어,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위를 지나다니지 않고서 매끄러운 보도블록 위에서 휠체어를 끌고 다니기 좋을 것 같았다(가보니 실제로도 그랬다).


문제는 휠체어 여행에 관한 정보가 인터넷에 많지 않았단 거고, 휠체어 구입이 오프라인 매장보다는 온라인 위주로 이뤄지고 있단 거였다. 기왕이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도 들어보면서 엄마에게 꼭 맞는 휠체어를 구입하고 싶었는데. 하는 수 없이 인터넷으로 구매 후기글들을 확인하고서 (그리고 그 글들 중 광고성 후기글과 아닌 것들을 나름대로 분간해 가면서) 휠체어 하나를 구매했다.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10킬로를 넘지 않고, 전동식이 아니며, 팔걸이와 안전벨트가 있으며, 발받침대의 각도가 너무 직각이 아니고, 앉는 자리가 너무 딱딱하지 않고(쿠션감이 덜하더라도 매쉬하거나 부드러운 소재로 되어 있기를), 캐리어 손잡이처럼 휠체어를 끌기 좋은 손잡이가 있을 것. 여행지에서만 쓸 물건이었기에, 아무래도 수하물 규정과 휴대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A/S를 위해 국산을 사고 싶었는데, 조건에 부합하는 휠체어 중에 마음이 드는 것은 중국산이었다. 미심쩍었지만 후기글을 믿으며 주문을 완료했다. 며칠 후, 커다란 택배 상자가 문 앞에 도착했다. 노트북 화면에서 보고 기대했던 물건이 들어있기를 기도하며 상자를 개봉했다. 조립할 것은 없었고 사용 설명서를 읽기만 하면 되었다. 휠체어를 뒤에서 끌어줄 인물이 숙지해야 할 제1 기능, 브레이크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 브레이크만 유독 벌건 색으로 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검정색, 쥐색이었다. 덕분에 브레이크 식별은 편했는데, 딸깍! 소리가 나는 고정 장치가 쉽게 부서질 것만 같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게 살짝 찝찝했다(직접 써보니 생각보다 튼튼해 다행이었지만). 남편과 서로 번갈아 앉아보며 엉덩이 닿는 부분의 느낌을 확인하고, 사람이 앉았을 때의 무게감을 익혔다. 그렇게 한참을 거실에서 휠체어를 굴렸다. 휠체어를 접고 펴는 데 익숙해지고 싶어 초를 재가면서 휠체어 패키징을 연습하기도 했다.


"괜찮은 거 같지?"

"좋은데? 이제 이것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겠다 어머니랑."

"운전을 잘해야겠어. 담요나 방석이 있어도 좋겠고."

"그래도 겨울 말고 가을에 가니까 부담이 덜하네. 눈길 걱정은 안 해도 되고."


물건 점검을 끝내고서 가족톡방으로 휠체어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서울집에 와서 휠체어를 직접 만지고 타고 끌어 보셨다.


"아이고, 우리 주현이가 엄마 생각해서."


그때 처음으로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동작이 조금 어색하긴 했으나 분명 칭찬의 쓰다듬이었다.



휠체어를 구비하자 여행 준비도 술술 진행되었다. 구글 지도에 [엄마야 게 먹자] 란 여행 목록을 만들었고, 길 찾기 탭에서 '휠체어 이용 가능' 필터를 적용해 가면서 여행 동선을 확인했다(이 옵션은 무거운 짐이 많은 여행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엘리베이터나 매끄러운 도로 위주로 안내를 해주니까). 약간의 돈을 더 얹어, 레그룸이 조금이라도 더 널찍한 자리로 엄마, 아빠의 비행기 좌석을 선점했고, '휠체어 승객'에 관한 정보를 재확인하고자 항공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털게 정식을 즐길 식당을 예약했고, 호텔 조식 정보를 재확인했으며, 여행 도중에 쉬어갈 만한 카페나 공원의 위치를 지도에 표기해 두었다. 부모님과의 해외여행도 벌써 세 번째라고, 쉬고 먹는 것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데 꽤 익숙해졌다.


갈 곳들을 하나둘씩 정하자 들고 갈 캐리어의 개수와 그 안에 담아 갈 물건들도 얼추 가닥이 잡혔다. 사람 넷이지만 접이식 휠체어가 하나 있으니(게이트까지 끌고 가는 - 핸드캐리라고 보면 된다. 게이트 앞에서 직원 분들께서 수거해 가신다) 위탁 수하물을 두 개만 가져가기로 했다. 자그마한 백팩이나 핸드백에 개인 짐을 조금씩 휴대할 수 있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준비 만반이었는데도 아직 여행일자까지 세 달 정도 남았다. 그때부턴 혹시 모를 현지 정보(날씨나 천재지변, 일본의 안보 상황 등)를 확인하며 나의 피드를 잠식한 삿포로 여행 콘텐츠들을 하나둘씩 봐주면서 여행지와 미리 내적 친밀감을 쌓는 데 집중했다. 그 시기에 여행 지도에 추가한 카페나 장소들이 꽤 많았는데, 2박 3일 같은 3박 4일 일정이라 다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을 위한 정보'를 쌓았다면서 정신 승리를 이루었으니 그걸로 되었달까.


여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유바리 멜론의 노란 속살 맛이 점점 더 궁금해지고, 호텔 로비에서 우리를 맞을 호텔리어의 정중한 미소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친구들은 9월의 삿포로라면 날씨가 좋을 거라고 부러움을 표했고, 피드를 장식한 여러 브이로거들은 여전히 홋카이도의 소프트콘(소프트아이스크림) 문화와 사진 명소를 앞다투어 자랑했다. '다들 비슷한 곳에서 비슷하게 노네.' 나는 내심 우리 가족의 삿포로 여행이 그들의 여행과는 차별점을 두었으면 했다.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한 여행이 될까?


그러던 중에 8월 15일을 맞았다.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이란 숫자 앞에서 가슴이 웅장해지던 날이었다. 그날, 나는 예상치 못한 여행 준비물(?)을 확인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임신 테스트기를 사 온 것만으로도 뭔가 특별한 날이었는데, 어라, 테스트기에 빨간 줄 두 개가 선명히 뜨는 게 아닌가.


말랑한 나의 몸속에 새 생명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사람 넷, 캐리어 둘, 휠체어 하나란 공식이 사람 다섯, 캐리어 둘, 휠체어 하나로 바뀌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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