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 먹자던 사람 나와

저녁식사란 빈칸

by 프로이데 전주현
매끄럽게 굴러가는 휠체어 바퀴를 바라보며 처음 와본 여행지인데도 모든 게 참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모두'라는 표현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었는데.



음식이 여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삼시 세끼를 챙겨 먹지 않던 나도 여행지에선 부지런히 음식을 챙겨 먹는다. 음식에 담긴 여행지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맛보고 싶고, 여행지에서의 하루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꽉 채워서 보내기 위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다. 누구와 함께 여행하느냐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지겠지만, 부모님과의 여행에서는 확실히 그 비중이 2배, 3배가 된다.


배부른 속으로는 침도 안 뱉는다고, 부모님의 뱃속 상태는 여행의 분위기 형성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요...). 맛, 효능(건강한 음식인지, 소화가 잘 되는지 등), 분위기(식당이 위치한 곳, 식당 내부, 화장실 상태), 가격, 서비스 정신(사장이나 직원의 친절도)... 이것저것 고려하다 보면 의외로 지도에 많은 추천 맛집들을 거르게 된다.


여기에다가 나는 또 엄마의 고관절을 고려해, 식당 좌석들이 바닥에 앉는 좌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닌지, 턱 높은 계단을 사용해야만 하는지, 접이식 휠체어를 둘 공간조차 없는 비좁은 곳인지 등을 확인한다. 주로 구글 지도에 올라온 방문자들의 사진과 리뷰로 관련 정보를 얻는데, 그때마다 작은 정보라도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소설 속 사립탑정이 된 기분이다.


나는 밥상에 올라오는 물미역무침과 미역오이냉국을 반기고, 절밥을 먹을 일이 없었는데도 심심하고 향긋한 나물 반찬을 자주 찾아먹는다. 다른 대구 친구들과는 달리 빨간 소고기뭇국보다 맑은 소고기뭇국이 더 익숙하고, 평양냉면이 냉면의 기본값이라 생각한다. 김치가 없이도 살 수 있는 한국인이지만, 보리차를 한 주전자 크게 끓여놓고 지내지 않으면 촉촉하던 목도 괜히 바싹 말라오는 것 같아 못 견뎌한다. 부모님의 식습관이 나의 식습관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굳혀진 취향들이다(그 어느 맛집을 방문했을 때 보다도 집밥을 먹을 때 가장 몸과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끼는 것도, 집밥에 부모님의 식습관이 잔뜩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머리가 커지고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가꿔왔기 때문인지, 여행지 밥상머리에서 부모님과 나의 음식 취향이 다르다는 걸 자주 발견한다. 낯선 환경은 기본적으로 여행자를 까탈스럽게 만드나 보다. 그러니 여행 일정 중 아침, 점심, 저녁식사의 빈칸이 가장 신경 쓰인다. 다행히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미식의 고장이었다. 육류, 해산물, 채소, 과일, 유제품...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갑작스레 임산부 자격으로 여행을 해야 하는 나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제부턴 뭐든 1인분이 아닌 2인분을 하며 걷고 자고 숨을 쉬어야 했으니 잘 먹어두는 게 나와 아기, 밤비에게도 중요했다.



둘째 날 저녁식사 메뉴를 고민하던 어느 날, 남편은 내게 징기스칸을 아느냐고 물었다.


"징, 징, 징기스칸! 그 노래?"

"아니."

"몽골제국 왕?"

"삿포로에 유명한 양고기 요리이기도 해."


남편은 양고기를 먹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프랑스 식당에 가서도 메인 메뉴 목록에 양갈비 스테이크가 있으면 백이면 백 그걸 골랐고, 친구들과의 저녁식사로 강남역 주변의 양고기집을 예약할 때가 많았다. 반면에 나의 양고기 실력(?)은 인도 카레집에서 시켰던 시금치 카레에 자그맣게 썰려 들어간 큐브 형태의 양고기가 전부였다. 양고기 하면 특유의 향이 특징이질 않는가, 카레 향에 본연의 향을 죽이고 있던 양고기 큐브만 먹고서 양고기를 먹어봤다고 얘기하기엔 아무래도 쪼랩이었다.


어쩌다 몽골제국 왕의 이름이 음식 이름이 되었고, 삿포로의 명물이 되었는지 찾아보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양모 수입이 어려움을 겪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양목장을 많이 지었는데, 덩달아 처리해야 할 늙은 양의 고기도 많아졌다. 일본 정부는 양고기 요리법이 필요하다고 공지를 내렸고, 홋카이도에서 많은 레시피가 개발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징기스칸이었다. 중국의 양고기 요리의 영향을 받은 구이요리였다. 특이점이라면 불판의 가운데가 유독 삐쭉하게 솟아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검증된 설은 아니지만 그 불판의 모양이 몽골군의 투구를 꼭 닮아 이름을 징기스칸으로 했다는 설명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해산물의 고장이라지만 고기만 한 체력 보충원도 없질 않은가. 다른 형태도 아니고 구이라면 양고기와 낯가림이 심한 엄마도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괜찮은 제안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징기스칸을 먹을 식당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 지도 여행 목록 '엄마야 게 먹자'에 식당 몇 곳이 추가되었다. 오, 빠른데? 믿고 맡겨도 되겠어. 나는 다른 여행 일정 조율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행 첫날. 휠체어를 끌고 가방에 임산부 배지를 단 것뿐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인천공항에서 특별대우를 받았다. 일반 대기줄이 아닌 노약자 대기줄을 통과해 수하물을 맡겼고, 스마트패스를 써볼 겨를도 없이 교통약자우대 입구를 통해 출국장으로 향했다. 게이트 앞에서도 몇 차례에 걸쳐 승무원 분들에게 "오늘 컨디션 괜찮으세요?" 하는 질문을 받았고, 어떤 안내 사항이 있든지 간에 가장 먼저 그 내용을 전달받았다. 이번 가족 여행의 제1원칙은 신속과 효율이 아닌 안전이었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늦게 들어가고, 느리게 움직여도 괜찮았는데, 배려의 말과 손길이 끊이질 않았다.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쪽으로 오시라면서 없던 길도 만들어 주던 공항 직원들의 몸놀림은 모세의 기적을 떠올리게 했다. 호텔에서도 엄마의 휠체어를 보자마자 한 직원 분이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나와 한 두 마디 섞어보시더니 얼리 체크인을 무료로 해주셨고,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곧바로 붙여주셨다. 엄마의 상황을 고려하여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도 있었는데, 주변에서 이렇게 배려를 해주셔서 그저 감사하고 겸손해졌다. 엄마도 처음엔 그런 손길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닐까 걱정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친절을 받은 사람이 베풀 줄도 안다고, 이젠 일단 감사히 (호의를) 받고 엄마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답하자며 태도를 바꾸게 되었다. 선한 마음은 이렇게 주변으로 번져나가나 보다.


계속되는 친절에 황송해하면서 삿포로 지하통로를 거닐었다. 매끄럽게 굴러가는 휠체어 바퀴를 바라보며 처음 와본 여행지인데도 모든 게 참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모두'라는 표현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었는데.




여행 둘째날. 저녁시간을 앞두고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가졌다(부모님과의 여행에서 빠트리면 서운한 게 바로 이 자유시간이다.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는 자녀들에겐 숨구멍 같은 시간이기도 하고, 부모님께서도 체력을 정비할 시간을 드리니 서로 꼭 필요로 하는 시간이랄까). 남편과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바빴다. 일전에 징기즈칸을 먹자고 해놓고선 남편이 예약을 안 해둔 것이다.


"예약이 다 찼다네."


살짝 짜증이 났다. 일전에 함께 들었던 어느 경영학과 교수님의 강의가 떠올랐다. <남편 여러분, 여러분이 저녁식사를 차려주겠다고 했다고 합시다. 그때, 저녁식사를 차려주겠다는 건 손질된 재료를 프라이팬에 볶아서 접시에 담아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재료를 슈퍼에서 사서, 손질하고, 조리하고, 상에 내놓고, 설거지를 하고서 식탁 위를 행주로 닦는 것까지를 의미한답니다. 저희 남편은 꼭 조리만 해놓고선 자기가 했다고 어깨를 으쓱하는데, 여러분, 그거 아니에요.>


"식당만 찾아놓으면 뭐 해. 예약을 했어야지. 내가 부탁한다고 했잖아."

"미안."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순 없는 법. 논쟁을 계속하기보다 지금이라도 알맞은 식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남편은 부랴부랴 스스키노역 니카상 근처(삿포로의 유명 포토존)의 한 식당을 찾아냈다. 리뷰가 많지 않았지만, 의자에 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시스템이었고, 한국인 방문객의 리뷰가 있었다.


"여기 가보자. 구이 요리인데 큰 차이가 있겠어."


그래서 징기스칸의 육즙을 즐기며 어쨌든 헤피엔딩을 맞이했냐고?


식당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였고, 어리숙한 한국 여성이 서빙을 맡고 있었으며(뭘 한 번에 가져다주는 일이 없었다), 틈틈이 식당 바깥 복도에서 담배 냄새가 났고, 식당 주변으로는 묘하게 야시꾸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들과 간판이 줄지어 있었다. 엄마 아빠는 별말이 없었지만 우리 부부는 상당히 실망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일본 여행 브이로그나 일본 미식 여행 영상에 징기스칸이 나올 때마다 "아, 저런 델 데려갔어야 하는데, " 하며 탄성을 지른다.


지금이야 그날 저녁식사 또한 삿포로 여행 초심자가 하는 실수라면서 추억 삼아 회상하곤 하지만, 옷과 머리카락에 양고기 냄새를 풀풀 풍기며 숙소로 돌아가던 그날 저녁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달빛 아래 감추기 바빴다. 첫날 받았던 친절을 떠올리며 이불을 덮었다. 호텔 조식이 훌륭하다고 했으니 거기에 한번 더 승부수를 걸어보자면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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