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센동의 고장에 초기 임산부의 방문이라

초기 임산부의 질문

by 프로이데 전주현
겨우 임신 9주 차였다.
당시 나는 '내게도 모성이 있을까?' 하는 질문을 여러 번 던지며 지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참 용감한 임산부였다. 이제 막 임신 9주 차였고, 초산이었다. 35세 이상의 고위험군 임산부로 분류되기도 했다(유방외과의인 친구는 35세란 기준이 옛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검진을 다니는 산부인과 로비에는 여전히 35세 이상 64세 이하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고선 '고위험군'이라 적은 팸플릿이 수두룩했다). 임산부 자격으로 여행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한 상황이었고, 그 탓에 부지런을 떨며 일찍이 가입해 둔 여행자 보험엔 임산부를 위한 보험 내용이 싹 빠져 있었다. 또, 나의 유튜브 피드는 대지진을 예언한 오래된 일본 만화를 소개하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조장하기 바빴다.


그런데도 나는 태평했다. 고작 2박 3일 같은 3박 4일이고, 세 시간이 걸리지 않는 옆나라로의 여행이라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무거운 캐리어를 끌어주었지만, 내 어깨엔 나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보부상의 백팩이 평소처럼 얹어져 있었다. 그뿐인가, 엄마의 휠체어를 밀면서 삿포로 시내를 누비길 즐겼다. 임산부 티도 나질 않았다. 가 아직 부르지 않았고, 입덧도 먹덧도 없었으니 그럴만했다. 이따금 파워워킹에 흔들리던 분홍색 임산부 배지만이 내가 홀몸이 아니란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복병이 없던 건 아니었다. 홋카이도는 싱싱한 해산물로 유명한 동네였고, 특히나 삿포로 근교인 영화 <러브레터>의 고장 '오타루'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배경지로, 일본 내에서도 초밥의 격전지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임산부가 주의해야 할 음식 리스트엔 날 것이 빠지질 않았다(이는 임산부가 노약자로 분류되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었다). 임산부의 면역력평소보다 떨어져 있다. 는 산모의 식중독 감염 위험도 올리게 되는데, 날 것 특히 생선회에는 식중독을 유발하는 기생충과 세균이 많았다(고로 날 것은 금지 금지 금지였다). 더구나 임신 초기엔 태아에게까지 식중독 영향이 미칠 수 있었으므로,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고로 나는 몇 번이고 시험에 빠졌다(그리고 몇 번은 낙방했다). 호텔 조식 뷔페엔 카이센동을 커스터마이징 해서 먹을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곳엔 내가 좋아하는 연어알이 한 솥 째로 놓여 있었다. 예약해 두었던 털게 정식의 첫 번째 메인 메뉴로는 곱게 손질된 털게 사시미가 등장했다. 오타루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 날엔 오르골당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구글맵을 실행했는데, 일전에 한국에서 저장해 두었던 모둠 초밥집 서너 곳이 '날 먹으러 오지 않을 거야?' 하고 말을 걸기도 했다. 정말이지, 해산물파 임산부에겐 아주 고통스러운 여행이었다.


겨우 임신 9주 차였다. 당시 나는 '내게도 모성이 있을까?' 하는 질문을 여러 번 던지며 지냈다. 뱃속에 생명을 품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엄마로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아이를 위해 나의 편의를 어디까지 미룰 수 있을지 상상이 안 갔다. 그것도 식욕이라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억누를 만큼? 오우. 자신이 없었다.


임신 29주 차에 접어든 지금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삿포로 가족여행을 할 때와 지금의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새 모성이 생기기라도 했느냐고? 확답은 못하겠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미성숙한 나의 마음에 조금씩 파도가 일었다.


스스로에게 모성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다만 임신을 한 뒤로, 자연스레 결심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고.


확실히 임산부가 되면서 나는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평소였다면 쉽게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을 것들을 기쁘게 해냈다. 거들떠보지 않던 실내 자전거 위로 매일 같이 올라가 유산소 운동을 했고, 식사 시간을 최대한 규칙적으로 가지려 했으며, 안 그래도 넉넉하던 수분 섭취량을 더 악착같이 챙겼다. 하루 한 문단이라도 좋으니 단편 소설 작업의 빈도수를 높이는데 집중했고, 배우고 싶었던 게 있으면 곧바로 카드를 꺼내 들었으며(그 덕에 북바인딩 수업을 거의 다 들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에겐 먼저 연락을 취해 약속을 잡았다. 일부러 클래식을 찾아 듣거나 임산부 요가 수업을 신청하진 않았지만, 좋아하던 라디오를 다시 찾았고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에그해드 편을 시청하기 위해 OTT 구독을 하나 더 늘리기도 했다.

이 일련의 부지런함이 모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온몸과 온 맘으로 주장하고 싶었다.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호흡을 섞을 봄이 오기 전까지, 아이를 만나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만끽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그렇다고 가족여행 중에 날 것을 먹지 않았느냐, 그건 또 다른 문제다(앞서 적지 않았는가. 시험에 빠졌고 몇 번은 낙방했다고). 그때마다 남편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는데, 그 눈빛이 야속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래, 그렇게 단속하고 붙잡아줘서 고마워.



훗날 아이와 함께 일본여행을 한다면, 혹 그때 삿포로를 간다면, 가족 여행을 다녀온 뒤에 찾은 산부인과에서도 갖지 못했던 "진실의 시간" 같은 걸 갖고 싶다. 고해성사처럼, 예전에 내가 너를 품고 이곳에 왔었어. 그때 이런 질문을 했었지, 하면서. 그때,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아이와 어떤 저녁을 먹을까? 카이센동? 털게회? 오늘도 모성인지 뭔지 모를 궁금증이 맘 속에서, 뱃속에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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