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보도블록과 납작 복숭아 둘

휠체어를 끌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by 프로이데 전주현
내가 먹는 나이를 부모님이라고 안 먹을 수 없는 건데도, 나는 (어쩌면 우리는) 부모님이 늘 그 자리에 씩씩하게 계실 거라 착각한다. 미련도 하여라.


필라테스 수업을 받은 지 삼 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어째, 매 수업이 힘들다(쉬운 걸?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면 그날은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날일 확률이 크다 하핫). 선생님께서 그날그날 나의 컨디션에 맞춰 수업 난이도를 조정하시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계속해서 속근육을 다지는 운동이라 기본적으로 빡빡한 운동이기 때문일 테지. 그런데도 남편은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필라테스 인증숏만 생각하고선 “그거 우아한 운동이잖아?” 하며 낄낄댄다. 그때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생각으로 그의 생일 선물로 필라테스 체험 수업을 확 잡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다(겪어보면 알겠지).


어떤 동작이 가장 힘들어요?라고 묻는다면 단박에 대답하기가 어렵다(힘들지 않은 동작을 꼽는 게 더 빠르달까). 잠깐 텀을 두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단어 하나를 떠올린다. 고관절! 맞다, 고관절! 선생님께선 나의 고관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다리를 빙빙 돌리는 동작을 자주 가르쳐 주신다. 쉬워 보여도 꽤 까다로운 동작이다. 내 몸이 어릴 적 갖고 놀던 미미, 쥬쥬 인형 같은 관절 인형이라고 생각하고서, 몸통에 박혀 있는 다리를 쑥 뽑아 당기는 느낌으로 곧게 뻗어 빙빙 돌려야 한다. 다르게 표현한다면(아마 이 표현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더 많을지도) 후라이드 통닭에서 다리를 뜯어낼 때 무심코 닭의 관절, 연골 모양에 따라 그리게 되는 동그라미, 다리를 몸통에서 부드럽게 도려내는 듯한 그 회전 동작을 자기 다리에 하는 느낌이랄까.


앉은 자세로 작업하는 일이 많은 나를 비롯해 현대의 여러 사무직 종사자의 고관절은 안녕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꽤 아리고 두둑두둑 마찰음을 빚는 동작이다.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 고관절 동작을 할 때마다 엄마를 떠올린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던 해에 엄마는 거실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사고란 그렇게 아차 싶을 때, 의외로 익숙한 장소에서 발생할 수 있다. 엄마는 곧바로 병원에 가보자던 아빠의 말을 무시했는데 그것 참 큰 실수였다. 며칠간 보행 중에 통증이 심해지자 뒤늦게 병원을 찾았다. 진찰 결과,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어르신들 사이에선 흔한 수술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엄마를, 엄마는 스스로를 어르신으로 여기지 않으며 (안일하게) 지내던 때라 충격이 컸다. 내가 먹는 나이를 부모님이라고 안 먹을 수 없는 건데도, 나는 (어쩌면 우리는) 부모님이 늘 그 자리에 씩씩하게 계실 거라 착각한다. 미련도 하여라. 수술에 관해 이것저것 찾아보니 부러진 고관절로 인공 관절(새 관절)로 갈아 끼우기 때문에, 술 후 운동만 제대로 해준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걸 보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한 가지 큰 걸 간과하고 있었다. 엄마는 운동을 습관 삼은 사람이 아니다.


수술 후 엄마는 왼쪽 다리를 살짝 절뚝거리며 걸었고, 오른쪽 손으로 지팡이를 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자세가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걸음걸이도 느려졌고, 오래 걷는 게 불편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여행을 간다? 그것도 해외로? 여행용 휠체어는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었다.



여행 이틀 차. 삿포로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30-40분. 한동안 창문 밖으로 바다를 보여주던 기차가 미나미오타루역에 정차했다.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나왔던 우리는 반은 졸고 반은 깨어 있는 상태로 부랴부랴 하차했다. 오타루의 랜드마크를 반시계방향으로 돌아보는 당일치기 일정(미나미오타루역-오타루 오르골당 본점-르타오 치즈케이크 본점- 사카이 마치- 카마에이 어묵공장,- 오타루 운하- 오타루역). 우리 가족은 승강장에 내리자마자 접어두었던 휠체어를 다시 펼쳤다.


아빠가 기차에서 찍은 엄마-나-남편의 모습.


남편은 휠체어 브레이크를 걸고 엄마의 착석을 기다렸다. 아빠는 엄마에게서 짐과 지팡이를 넘겨받았고,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서 휠체어로 엄마를 안내했다. 말하지 않아도 착착 이루어지는 이 일련의 착석 세리머니에 엄마도 그새 익숙해졌는지 휠체어 좌석 안쪽으로 엉덩이를 자연스레 밀어 넣었다. 그다음 타깃은 발 차례였다. 발 받침대를 펼쳐 엄마가 양 발을 편한 각도로 올렸는지 확인한 다음 안전벨트를 잠갔다(너무 조이지도 헐렁이지도 않게). 남편이 휠체어 브레이크를 푸는 건 그다음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엘리베이터 사인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아빠는 설렁설렁 나를 따라 걷는다. 다행히 일본엔 노약자들의 이동을 위한 설비(이를테면 엘리베이터나 점자보도블록이나 리프트 등)가 잘 마련되어 있다. 미나미오타루처럼 작은 역에도!


문제는 지금부터다. 바퀴 위에 엄마를 태웠다고 해서 평소 걷듯이 쌩쌩 걸으면 안 된다. 특히 휠체어를 끄는 사람은 우아하고 여유롭게 걸어야 한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이 제아무리 스릴을 즐기던 사람이라도 바퀴에 자기 몸을 맡긴 상황에선 벌떡 일어설 수 없으니 겁을 먹기가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휠체어를 끄는 사람은 앉은 이의 승차감을 고려해서 걸음 속도를 조절하고, 길을 골라골라 가야 한다. 기왕이면 반듯하고, 음각 장식이 없고, 매끄러운 표면의 보도블록 위로 바퀴를 끌어야 한다. 휠체어의 위기는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찾아온다. 도로 위 아주 미세한 틈과 균열에도 휠체어는 롤러코스터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약한 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되거나 돌아갈 곳 없이 울퉁불퉁한 표면의 도로를 지나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럴 땐 휠체어를 잠깐 멈춰 세우고 엄마에게 미리 려주는 게 좋다.


엄마, 지금부터 잠깐 바이킹 같을 텐데, 잠깐 내려서 걸을래?

잠깐 엉덩이가 흔들리겠습니다. 긴장하세요.



미나미오타루역에서 오타루 오르골당 본점까진 500미터, 도보 6분 거리였다. 후기글을 찾아보니 많이들 걸어서 움직일 만했다고 적어두었길래, 여행 계획을 세울 당시에 자신만만해졌다. 휠체어도 있겠다, 무서울 게 없을 거라고. 그런데 막상 역을 나와 마주한 그 길은 살짝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다. 내리막길이라니. 본의 아니게 엄마를 롤러코스터에 태워야만 하는 상황이라니! 남편은 걱정스레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 좀 무서우실 수도 있겠는데요. 경사가 있어서.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호호 웃었다. 그러나 오타루는 삿포로에 비하자면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고 매끈한 보도가 거의 없었다. 여기저기 삐쭉 튀어나와 있는 보도블록들은 한눈에 보더라도 자기주장이 강 보였다. 오르골당으로 가까워질 때마다 휠체어가 세게 움직였다. 엄마의 엉덩이도 덩달아 들썩거렸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의 엉덩이는 납작 복숭아를 닮아 쿠션감이 부족했으니까. 그 아픔을 누구보다도 공감하는 사람은 우리 집의 또 다른 납작 복숭아, 휠체어를 끌고 있던 남편이었다.


(덜컹)

아이고, 어머니.

(덜컹)

아아.

(덜컹)

여기 도로가 안 좋네요.

(덜컹)

아…


동병상련이란 이런 걸까. 남편은 자신의 엉덩이가 찔리는 것처럼 아프다는 추임새를 넣으며 휠체어를 끌었다. 두 사람에 비해 볼록한 엉덩이 쿠션감을 자랑하는 아빠와 나는 두 사람의 안절부절못함이 웃기다가도 슬퍼 말을 아꼈다. 호호하던 엄마의 웃음은 갈수록 씁쓸하게 변해갔다.


호호.

하하.

핫.

아야.

어이쿠.

잠깐 내릴까?


오르골당으로 가는 내내 웃음(내지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다행히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하긴 했지만.



에둘러가지 않고 곧바로 계단을 오르는 것. 경사진 도로 힘차게 내려가는 두 다리와 부드러운 고관절을 가진 것. 걸을 때 땅만 보지 않아도 주변을 둘러볼 균형 감각과 여유가 있는 것. 휠체어를 끌어보기 전엔 귀한 줄 몰랐다.


또 다른 발견도 있었다. 앉았다가 걸었다가, 잠깐 쉬었다가 다시 움직이다가... 조금 느리더라도 여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보도블록 하나에도 호들갑을 떨며 웃는 것. 한 사람의 안녕이 가족 모두의 안녕이 될 수 있는 것. 이런 것들 휠체어를 끌면서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타루를 둘러보는 내내 남편과 엄마는 꼭 붙어 다녔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함께한 시간이 쌓이고 부쩍 친해진 두 납작 복숭아. 그들을 지켜본 하루의 끝, 내내 걸어 다니느라 다리와 고관절이 뻐근해졌을 텐데도 여행을 마치고 삿포로 숙소로 돌아오자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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