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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Nov 09. 2020

72.도서관에서 계획한 일탈, 목적지는 폴란드다!

2학기 중 E와 함께 한 3박 4일 폴란드 여행 (1)

17.04.30 일요일


이대로라면 2학기도 곧 끝나 버릴 것만 같았다. 중간고사 없는 뤼벤대에서의 생활은, 늘 그랬듯, 과제로 학기 중간 지점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째 그 속도를 늦출 마음이 없어 보였다. 여느 때처럼 인문 도서관과 중앙 도서관을 번갈아가며 영화 메이트 E와 함께 공부를 묵묵히 진행하던 도중, 어제 라디오에서 소개받았던 여행지 리스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이대로 공부만 하면 무슨 소용이야! 기분 전환이 필요해!' 하는 마음이 생겼고, 일탈을 계획해 보자(?)는 마음에 E와 나는 재빨리 리포트를 쓰고 있던 워드 창을 최소화하고 비행기 표 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벌써 휴가 티켓 전쟁이라도 시작된 걸까, 리스본행 비행기는 생각보다 비쌌고 많지도 않았다. 게다가 몇 번 반복해서 리스본행 비행기를 검색하자, 예매 사이트아주 교활하게도 비행기 티켓 값을 점점 올리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반복된 비행기표 검색 기록이 예매 사이트에게 '아, 이 여행자는 꼭 리스본에 가야 하나 보군. 그렇다면 웃돈을 좀 더 주고서라도 예매하겠지?' 하는 인상을 심어주어 티켓 가격을 조금씩 올린다고 한다. 그러니 처음 검색했을 때의 저렴한 가격을 찾기 위해서 인터넷 검색 기록과 쿠키 등을 삭제하는 일도 꽤나 잦다고 한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20유로 정도 더 저렴했었는데... 괘씸한 마음이 들어 '그래, 굳이 리스본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을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좋을 거야!'라는 결론에 다다랐고 E와 나는 가장 저렴한 비행기 표를 먼저 살펴보며 여행지를 골라 보았다. 로마, 바르셀로나... 다 매력적인 여행지였지만 2박 3일의 여행 일정만으로는 충분히 즐기고 오지 못할 여행지였다. 3박 4일로 로마와 바르셀로나를 즐기겠다니, 그건 정말 무례한 짓이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여행지는 바로 폴란드였다. 브뤼셀 공항에서 수도인 바르샤바의 쇼팽 공항까지 직항 비행기 편이 있었다. 폴란드라니. 그곳은 내게 미지의 국가나 다름이 없었다. 그나마 알고 있는 건, 폴란드가 쇼팽의 나라이자 다크 투어리즘으로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존하고 있다는 게 전부였다. 폴란드인과의 인적 교류도 거의 없었다. 15년도 유로-아시아 썸머스쿨에서 만났던 폴란드 친구와의 만남이 폴란드와의 첫 만남이라고 한다면 첫 만남이었다. 친구는 독일어를 공부했다는 나의 자기소개에 '나는 독일이 싫어'하고 나지막이 말을 하기도 했다. E 또한 폴란드를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머물기에 볼거리도 적당한 듯해 보였다. 또한 때마침 우리 둘 다 유럽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니, 이번 여행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것은 물론, 폴란드가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내에서 어떤 위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직접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바르샤바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비행기표 예매 직후에는 통상 숙소 예약이 뒤따라오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그에 앞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 예약을 서두르기로 했다. 예약 투어제로 운영되는 아우슈비츠는 대표 유럽 언어별로 투어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영어 투어는 매진된 지 오래였고, 그나마 우리가 폴란드를 방문하는 시기 중에는 이른 아침의 독일어 투어, 한낮의 이탈리아어 투어가 있었다. 전자를 택한다면 내가 투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다시 E에게 설명을 해주면 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E가 내게 설명을 해주면 되었다. E는 마케도니아 출신이었지만 불어를 할 수 있었고, 같은 언어 군인 이탈리아어를 듣고 이해하는 것까진 가능한 언어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새벽같이 일어나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일정보다는 잠도 충분히 자고서 일어나 여행을 시작하는 일과가 나을 듯했다. 때문에 이탈리아어의 1도 모르는 나는 E의 통역만을 믿고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을 스페인어로 예약하였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내내 틈을 타 문화 체험 및 현장 학습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곤 했는데, 그때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선 '이쁘고 멋진 거 보러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에도 한 번쯤 가보고 그래야 한다'하고 충고를 하시곤 했다. 아마 이번 폴란드 여행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이 부모님의 그때 그 충고를 실천하는 일정이지 않을까.



바르샤바로 떠날 저가 항공에 오르기 직전. 핑크? 보랏빛의 비행기를 타기 위해 대기 중이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아우슈비츠 수용소 예약을 마친 후에는 부랴부랴 에어비엔비를 통해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호스텔에 묵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력이 묻어나는 집에 머무르는 경험이 더 소중하고 재미있기도 하기에 한참 동안 에어비엔비 사이트를 뒤졌다. 덕분에 공부하러 들른 도서관에서, E와 나는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여행 계획을 짜기에 바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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