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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Nov 10. 2020

73. 한 밤중, 바르샤바에 뚝 하고 떨어졌다

2학기 중 E와 함께 한 3박 4일 폴란드 여행 (2)

17.05.04 목요일


며칠 전, E와 나는 폴란드로의 일탈 여행을 계획했고, 오늘은 그 일탈을 몸소 실천하는 첫 번째 날이었다. 17시 40분, 수업을 마친 후 각자의 기숙사에서 짐을 챙겨 나와 뤼벤 역에서 만났다. 브뤼셀의 저가 항공 전용 공항인 샤를루아 공항으로 이동해 Wizz 항공을 이용할 예정이었다. 이전에 런던에 가겠답시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저가항공 라이언에어를 이용했던 때가 떠올랐다. 저가 항공 전용 공항을 방문하는 것도, 저가 항공을 이용하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워낙 보안이 깐깐하고 시설이 후져서 (게다가 직원들은 불친절하기까지!) 그다지 좋은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가난한 학생에겐 필요악과도 같은 이동 수단이라지만 웬만하면 이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와 비교했을 때, 샤를루아 공항은 꽤나 괜찮은 편이다. 신생 저가 항공사에 속하는 Wizz 항공도 핑크빛 보라색의 발랄한 브랜드 컬러로 치장을 하고, 시트 등에서 놀라운 청결함을 자랑하고 있으니 나름 이용할 만했다.


무료 수화물 등 각종 보안 검사를 가볍게 마치고 두 시간의 비행 끝에 베를린 근교, 역사의 현장,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에 착륙했다. 공항 이름부터 '쇼팽'인 이곳은 쇼팽이란 작곡가를 매우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나 사실 쇼팽이 선보이는 아름다운 선율에 비해 폴란드는 매우 굴곡진 역사를 경험한 나라다. 독일과 소련 등 열강들 사이에서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으며 꽤나 오랫동안 무참히 밟힌 바가 많다. 역사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장소가 있기도 하고, 전쟁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를 넘어서 공터가 되어버린 사진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목격할 수도 있다. 전통 음식 중에는 우리나라의 군만두와 비슷한 '피에로기'가 있다. PLN이라는 화폐를 사용,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착한 물가를 자랑하지만 비교적 경제력이 좋지 못한 동유럽의 구조적 한계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폴란드에 관한 사전 지식은 고사하고, 우선은 공항 내 ATM에서 비상금만 몇 푼 인출하고서 야간 버스를 타고 서둘러 바르샤바 중앙역으로 향하기로 했다. 큼직큼직한 대로와 건물들이 모여 있는 바르샤바 시내 풍경 덕에 좁디좁은 저가 항공 좌석에 두 시간 동안 앉아있느라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밤이 깊어가고 있었고  어서 예약해 둔 에어비엔비 숙소로 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밤중에 외지의 거리에 덩그러니 서있다는 생각에 몸이 움츠러들었을 때, 아이고, 비까지 오는 게 아닌가. 빗줄기는 갈수록 꽤나 거세져 갔다. 하지만 가방  밑바닥에 있는 우산을 무사히 꺼낼 자신이 없던 터라 우선 카메라 렌즈라도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고는 다운로드하여둔 구글 지도를 열고 숙소를 찾아 나서는 데 집중했다. 그때 E는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 연락을 시도하면서 함께 걷고 있었는데, 웬걸. 호스트가 연락을 받지 않는 거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인데, 숙소 호스트와 연락도 두절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오늘 과연 지붕 있는 따스한 곳에서 잘 수는 있는 걸까. 두려움이 엄슴했다.


다행히 예약해 둔 숙소 바로 앞에서 10분을 기다린 결과 겨우 겨우 호스트와 연락이 닿았다. 그 후 간신히 (좁디좁은) 1.5인승의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5층에 위치한 숙소로 골인했다. 인터넷에서 본 사진과 비교해 볼 때(이래서 사진을 믿으면 안 된다) 꽤나 낡은 아파트였다. 1층 없는 2층 침대와 샴푸 달랑 하나만을 구비한 욕실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뭐, 그래도 무사히 숙소에 도착한 게 어딘가. 어서 짐을 풀었다.


바르샤바 에어비엔비 숙소의 풍경. 1층 침대 없는 2층 침대에 누우려면 저 가파른 사다리를 올라야 한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따지고 보면... 정말 내 두 발 누일 천장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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