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귓병
어린 시절부터 내 오랜 꿈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이었다. 7살 적 어머니가 내 조름에 못 이겨 ‘너 열 살 되는 해에 사줄게!’ 했던 돌려막기 급급한 말마저 일기장에 꼭꼭 눌러썼을 정도였으니. 나의 일기장을 보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줄을 잇는데, 당시의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회유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던 기억이 있다.
21살의 여름, 나는 대뜸 어머니께 묻는다.
“엄마! 나 고양이 키우고 싶어!”
어머니의 표정은 이제 놀라워 보이지도 않는다. 딸의 반려동물에 대한 꾸준한 사랑은 무려 십여 년이 훌쩍 넘었으니, 그 시간 동안 어머니가 지칠 만도 했다.
“그래. 네가 나가 살면 알아서 키워라”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 해에 고양이를 데려왔다. 마침 이미 독립했었고, 일도 하고 있었으니 어머니의 조건에도 부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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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데려온 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준비와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 당시의 나는 분명히 그런 준비가 덜 되어 있었을 것이다. 초보에게는 가혹하게도 나의 고양이는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귓병을 앓고 있었다. 우리의 식구로 막 받아들여진 후추는 유난히 귀 쪽을 많이 긁어댔다. 육안으로 봐도 티가 날 정도로 귀 뒤쪽이 긁은 상처로 인해 빨갰는데, 놀란 마음에 얼른 병원으로 직행했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한동안 후추는 귀 안에 넣는 약과 먹는 약까지 모두 병행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원만한 성격 탓에 나에게 한 번도 하악질 하지 않고 장난기 많은 아이 그대로 잘 자라 주었지만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진저리가 난다. 서툰 내 손짓과 고양이의 격렬한 반항을 생각하면 그 당시를 전쟁터라 묘사해도 부족함이 없다.
약은 빠르고 신속하게
내가 거의 두세 달 동안 아이와 힘 씨름을 한 결과였다. 그 당시의 후추는 특히나 작고 말라서 마치 물에 빠졌다가 막 구출된 생쥐를 보는 것 같았다. 고작 내 손바닥의 2배쯤 되는 크기의 아이를 잡고 귀에 약을 넣을 때면 마음이 참 아팠다. 싫어하는 걸 아니까 더욱이. 그런 여린 마음을 그대로 행동으로 보여주면 고양이는 더욱 분개하고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을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수의사 선생님께서 진행할 때처럼 아이가 가만히 있어주지 않아 힘들다는 게 당시의 큰 고민일 뿐이었다.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 이상한 데서 눈치가 참 빨랐던 후추는 내가 솜 뭉텅이를 들 때마다 이미 집 안 어딘가로 숨어버린 후였다. 후추와의 힘 씨름 과정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약품과 솜 찾기 -> 고양이 찾기 -> 고양이 데려오기 -> 솜을 귀에 넣기 좋은 크기로 분리하기 -> 고양이 찾기 -> 고양이 데려오기 -> 자세 고정시키기 -> 한쪽 귀에 약품 넣기 -> 넣자마자 털어낸 약품을 보며 절망하기 -> 다시 반복
한동안 후추에게 약을 투여한 후에는 꼭 온 바닥이 이미 약품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귀에 넣는 족족 솜으로 막기도 전에 약품을 모두 털어내 버리는터라 점차 길어지는 힘 씨름 기간 동안 아이도 화가 단단히 났고, 나도 진이 빠져버렸다. 과정 중에 너무 강압적인가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꼭 치료가 끝난 후에는 집구석에 숨어 날 향해 열심히 째려보는 아이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한 달을 족히 씨름한 후에야 찾아낸 방법을 소개하겠다.
후추는 특히 귀에 약품을 흘려 넣는 것(귀에 액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엄청난 거부감을 보였다. 솜으로 막고 귀 마사지를 하는 동안에는 눈을 지그시 감고 느끼고 있었으니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고, 가장 관건은 얼마나 신속하고 거부감 없이 아이에게 약물을 투여하는가였다. 나는 그래서 한동안 새로운 방법을 창조했다. 고양이의 몸을 잘 고정시키고, 솜을 먼저 약물에 푹 불린 뒤에 귀에 넣고 약간씩 흘려보내는 방법이었다. 귀에 직접적으로 투여하는 것에 비해 고양이의 거부감도 적었고 귀 마사지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전체 과정의 신속도가 올라가서 고양이는 이제 제대로 된 성질을 내기 전에 작업이 끝나 버렸다. 그 방법을 익힌 후로부터는 고양이가 귀 청소나 귀 치료를 끝낸 후 원망스레 날 피해 다니는 일도 없어졌고 과정 중에 나에게 성질을 부리느라 잔뜩 깨물던 행위도 많이 사라졌다.
아직도 귀 청소를 위해 솜뭉치와 약물을 꺼내 들면 어찌 알고 저 구석에서 날 노려보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만큼 부딪히는 일이 적어졌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