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는 없다. 회사 인턴을 해보고 대학원에 가면 다르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늘 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짬바가 없는 상태에서는 근시안적으로 그 단점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 밖에서는 세상이 휙휙 바뀌고 있는데 나는 여기 우두커니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어제 학교 사람이랑 저녁 같이 먹는다는 게 어쩌다 11시 반까지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연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사람이다. 연구를 나이브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분개하던 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물론 저마다 연구하는 목적이 다르다. 나만 해도 잿밥에 더 관심있던 꼴 아닌가. 그런데 딱 한 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맞아요. 연구가 좋든 그걸로 돈을 벌든 다른 걸 하든 사람마다 목적은 다르죠. 그런데 뭐가 됐건 잘해야죠. 더 나아지려고 해야죠. 근데 다들 안해요. 뭘 알려줘도 안하고. 그 나이브한 무기력함이 저를 지치게 해요.”
제대로 한 대 엊어맞은 기분이다. 이곳 연구실에서 시간을 바쳐 무언가를 얻고자 하면서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는 게 내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나. 그러면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데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제대로 해보고 싶어졌다. 적어도 그가 얘기하는 연구는 너무 재밌어 보였다. 그에게는 명확한 소명이 있었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세상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연구일 수도 있고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을 점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리튬 이온 배터리를 처음 고안한 세 사람 역시도 처음에는 그랬을 거다. 그러려면 이제껏 대했던 태도와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자기 일의 소명은 자기가 결정한다. 아무도 결정해주지 않는다. 시궁창이라 생각하면 시궁창에 사는 거고 기회라 생각하면 인고의 세월을 버텨내는 거다. 일체유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