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이 앞서 만든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며 시야를 기른다. 이에 영감을 얻어 나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이를 갖고 전시회에 참가해 다른 이들과 논한다. 혹은 잡지에 실어 사람들에게 새로운 메세지를 선사한다.
얼핏 보면 예술가가 하는 일 같지만 공교롭게도 우리가 하는 일이다. 바로 연구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미술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이리저리 기웃하며 다니던 것이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때는 그림을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열심히 그려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공학은 예술과 완벽히 반대편에 위치해있다고 생각했다. 공학과 예술의 통합이라는 거창한 꿈을 지니기도 했지만 그 둘을 같이 겸하겠다는 것이었지, 서로가 닮아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새로운 관점으로 연구를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예술가의 관점에서 연구를 얘기해보고 싶다.
예술을 직업으로 삼기를 꿈꾸는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과정을 따라가보자. 그는 처음에 자신이 예술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을 발견하고 열심히 예술에 몰두할 것이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미술을 예로 들자. 그림을 혼자서 열심히 그리다가 열정을 더욱 단련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부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깨작깨작 스케치북에 그리는 수준을 벗어난다. 단순히 그림만 죽어라 그리는 게 아니라 미술에 관한 이론까지도 같이 배운다. 그림을 조금이라도 배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조형미를 갖추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원근법과 같이 계산이 필요한가 하면 (그렇다고 계산기를 두드리진 않겠지...) 사물의 배치, 색감 등. 이걸 타고나는 사람은 그저 영감을 받았다고 얘기하겠지만 엄연히 그 안에 시각적인 논리가 숨어 있다.
과학자만 논리적으로 사고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술가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을 반만 아는 사람은 예술가들이 그냥 가만히 있다가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화랑에서 널리 이름을 알리는 예술가들은 공부를 많이 한다. 앞서간 선배들의 화풍부터 시작해 역사, 디테일하게는 붓질과 색을 쓰는 테크닉 등.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학습해야 할 것이 정말 많은 게 예술이다. 끊임없이 흐름을 이해하고 응용하고 깨부수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인풋을 넣어야 한다. 연구자의 덕목이라 생각하는 공부는 예술가에게도 필요한 능력이다.
흔히들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반면 논리로 점철된 과학은 누구나 당연히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변하지 않는 자연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맞다. 하지만 정답을 찾는 과정까지 정답이 있지 않다.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정답은 모조리 정답이 아니다.
연구라는 영역에 발을 딛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문헌 조사이다. 앞서 출판된 논문을 읽으며 선배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가기 바쁘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다. 교과서까지는 이미 수없이 검증되어 진리에 가까운 사실만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벗어나 논문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논문에 나온 내용이 100% 사실이라는 보장이 없다.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검증하려는 태도로 임하지 않으면 과학자라 할 수 없다. 이렇게 정답이 없다는 점에서 역시 예술과 비슷하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작품을 제작하고 이를 화랑에 출품하는 것처럼 과학자 역시 자신이 실험 혹은 계산해서 발견한 결과물을 알리는 과정을 거친다. 학회에 나가 발표해 사람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기도 하고 잡지에 실어 동료 연구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좋은 영감을 주게 되면 인용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된다.
한편, 예술가는 창작을 하기 위해 단순히 공부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으면 이를 어떻게 작품에 담을지 구상한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들만의 논리를 세워 흐름을 짠다. 머릿속에 구상해놓은 아이디어를 세상에 풀어놓기까지 수많은 문헌 조사를 비롯해 다양하게 실험을 하는 등 그들의 행보는 연구자의 그것과 다소 닮아 있다.
이전에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본업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예술과 과학은 사실상 종이 한 장 차이나 다름없다. 누군가에게는 따분해보이는 과학자일 수 있지만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