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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y Jul 15. 2020

대체 왜 망한 거지?

이건범, <파산>

어딜 가나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 뿐이다. 그들의 사전에 역경의 의미는 '딛고 일어나는 것'이라는 뜻인 마냥 고난은 성공을 만들기 위한 감초 정도로 여겨진다. 반대는 어디로 갔는가 찾아보지만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실패한 자는 말이 없다. 말 없는 증거들은 그저 망령처럼 눈에 보이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닐 뿐이다.

소개를 잘못 읽은 건가 싶었다. 창업가의 실패담을 담은 책이라는 문구가 마냥 어색하다. "실패한 이야기를 검색해 본 적이 있나?" 가만 생각해봤지만 애초에 찾아볼 마음이 없었다. 망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 같은 건 서점에 두지 않는다고 넘겨짚을 뿐이었다. 그런 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불편한 주제였다.

<나는 기억하기 위해 쓴다.> 무거운 마음을 딛고 펼쳐든 책은 서문에 적힌 제목부터 절절히 다가온다. 무엇을 위해 기억한다는 것일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일까, 이 글을 읽는 너는 그러지 말라는 조언일까. 답변도 절절하다. 과거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기록한다고 했다.

재밌는 것도 보인댄다. 마냥 고통스러운 기억 뿐이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가려졌던 행복한 순간도 적다 보니 떠오른단다. 그렇게 덤덤히 적어나가는 글자와 글자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경험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직 절반밖에 안 읽었다. 처음 책을 펼쳐들 때부터 가장 궁금했던 질문은 하나였다. "대체 왜 망한거지?" 그 답이 절반까지 읽고 덮은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는다. 외부에서 오는 충격,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 따위는 저 위에서 그렇게도 얘기하던 역경의 좋은 소잿거리일 뿐이었다. 양념감자 위에 솔솔 뿌려지는 칠리가루같은 애들이 왜 여기에서는 잘못 먹어서 코로 넘어가 기침을 유발하는 존재들로 바뀌는 건가. 이들이 잘못해서? 그렇게 잘했다는 애들과 별반 큰 차이도 없다. 이들이 실패했다는 이야기보다 그 성공에 가려진 양념가루들이 언제 사레를 들게 할지 모른다는 게 더 무섭게 다가왔다.

하지만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제목의 부제마냥 파산했을지언정 신용은 은행이 평가하는 게 아니다. 회사는 쓰러졌지만 저자의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오늘날도 열심히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고 계시더라. 젊어서 고생은 유튜브 콘텐츠랬다. 성공하면 조금 배우고 실패하면 많이 배운다. 모든 건 그저 배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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