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에 매몰되면 본질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대학원을 준비할 때, 그리고 입학을 앞둔 지금이 그랬다. 그렇게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건만 어느 샌가 왜 대학원에 진학하려 했는지를 까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전공 공부에서 오는 희열이 있어서였다. 사실, 복학 전까지만 해도 내내 자퇴를 고민했다. 군대에 있을 때는 그림을 그렸다. 그때 처음으로 연필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달달이 휴가 때마다 책을 빌려와 디자인을 공부했다. 전역 직전에는 다른 학교에 지원해 최종 면접까지 봤다. 다른 게 하고 싶었고, 공학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 학점은 겨우 3점을 넘겼다.
하지만 돌아와야 했다. 떨어졌다는 현실을 인정하긴 싫었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복학한 뒤 강의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3월 4주차였다. 어떤 과목은 이미 2단원이 끝난 후였다. 수업 내용이 도저히 이해가 안돼 전공책을, 그거로도 모자라서 다른 원서 책을 서너 권 뒤져가며 새벽까지 씨름하던 기억이 난다. 다른 방향으로의 도전을 성취하지 못한게 분해서였을까. 그렇게 고생해가며 공부한 과목에서 1등을 했을 때, 처음으로 공학에 흥미가 생겼다. 결과론적이지만 큰 전환점이었다.
그 다음은 얕게나마 훑어봤던 연구 경험이 짜릿해서였다. 3학년 2학기, 산학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전공 공부만으로도 엄청 스트레스 받았던 때라 왜 플젝에 참가했나 자책했다. 그 와중에 최종 발표까지 2주를 남겨두고 실험 결과가 망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직접 나서서 이거 접자고, 대충 발표하고 끝내자고 팀원들에게 말했다.
교수님께 실험을 실패했다고 말씀드리니 의외의 이야기를 하셨다. "연구에서 실패라는 건 없다. 정답이 없으니까. 너네가 얻은 그것도 하나의 데이터야. 결론과 근거가 합리적인 추론으로 연결되는 게 중요하지, 원하는 결과가 안나왔다고 실패한 게 아니다. 그런데 너네가 그걸 실패라고 규정해버리는 순간 그건 뭣도 아닌 그저 실패로 끝나버린다." 지금도 가슴 속에 새기고 있는 말이다. 실패는 결과가 말해주는 게 아니다. 만들어 내는 거였다.
너네가 그걸 실패라고 규정해버리는 순간 그건 뭣도 아닌 그저 실패로 끝나버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팀원들은 정신 나갔나 생각했을 거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만하자던 애가 갑자기 나타나서 이거 할 수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팀원들 독려해가면서 플젝을 이끌었다. 2달이 걸렸던 실험을 기업과 협력해 1주 만에 뽑아냈다(레버리지의 힘을 여기서 체감했다). 심지어 방향에 부합하는 결과였다. 1차 데이터와 합치니 설득력 있는 스토리가 나왔다. 해볼만 하겠다 느꼈다. 그렇게 남은 1주일, 밤새 다같이 보고서 쓰고 피피티를 만들었다. 늦게까지 전화기를 붙잡고 연구원 멘토와 실험 결과에 대해 논의했다. 직접 최종 발표를 마쳤을 때, 그리고 1등 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일주일 내내 그거 하나로 온종일 행복했다.
저 두 가지가 대학원을 가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다소 불순한 의도도 있다. 석사에서 끝나든 박사까지 마치든 그 다음 행보는 공학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저 두 가지, 공부와 연구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분명 시작조차 못했다.
다음주면 연구실에 들어간다. 학부 시절의 마지막 방학도 끝난다. 돌이켜 보면, 도서관에 파묻혀 있던 시간이 길긴 길었다. 왜 다른 일에 도전하지 못했나 자책하던 순간도 있었다. 누군가는 창업에 도전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난다. 그 순간에 무엇을 했나.
규정될 때 만들어지는 건 비단 실패만이 아니다. 열람실 한 구석, 늘 앉던 그 자리에서의 시간은 오롯이 쌓여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걸 아쉬움에 투영하면 아쉬움으로 나타난다. 후회를 비추면 후회로 보인다. 선택은 자기 몫이다.
앞으로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지금 왜 여기 있는지를 까먹으면,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누군가 앞서 나가면 불안해진다. 뒤쳐진다고 느끼면 두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