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두 번째 이야기.
안녕하세요 어머니,
못된 며느리 강지은입니다.
요즘 저는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을 합니다.
"혹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었나?"
아니면
"내가 정말 못된 사람인가?"
이런 생각을 제가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저는 살면서 착한 딸도 아니었고,
착한 아내도 착한 직장동료도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속한 관계 안에서는
정직하려고 노력했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부모님께서,
친구들에게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서
"너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운 좋게도 많이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제가 요즘
처음으로 제 인생 전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관계를
겪고 있습니다.
바로 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요.
어머니는 종종 남편에게 저를 '여우 같은 며느리'라고 하시죠?
그 말이 무서웠던 건 욕이라서가 아니라,
이미 저에 대한 결론이 다 내려져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어머니한테 이 말은 꼭 해."
"이건 꼭 요구해"
이런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들이 어머니께 한 말 중 좋지 않은 말들은
제가 한 말이 되어있고,
아들의 선택은
제가 시킨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어도
제가 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미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혼할 때
어머니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죠?
"모든 건 반반으로 하자."
그래서 저는 믿었습니다.
정말로 반반이라고.
결혼 비용도,
혼수도,
반지도,
반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반반'이라는 말은
제가 지켜야 하는 약속이었고,
어머니와 남편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답답한 현실과 그동안 남편의 재정관리를 맡고 계시던 어머니께
화를 낸 사람은 아들이었는데,
왜 미움은 늘 저의 몫이었을까요.
사위가 집에 오는 날이면
저는 부엌에 섰고,
좋은 반찬은 죄다 사위 앞으로 갔습니다.
먹는 게 아쉬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순간마다
아, 나는 이 집의 가족이 아니구나
그 사실이 너무 또렷해졌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계속 참았습니다.
며느리니까,
아랫사람이니까,
가족이니까.
하지만 참는 것보다
더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알지도 못하는 말을
이미 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전해 듣고,
의도하지 않은 감정을
이미 품고 있었던 사람처럼
설명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억울함과 분함을
제때 꺼내 보이지 못한 채
속으로만 삼켜야 했고,
그 감정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화병처럼 몸 안에 쌓여만 갔습니다.
남편의 얼굴을
예전처럼 제대로 마주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이제는 남편도 예전처럼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 사람의 어머니인데,
그 생각 하나로
애써 참고 넘기려 했던 제가 너무 싫어서..
저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꼭 남편인 것만 같아 괜히
잘못도 없는 남편이 미워집니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 위로
어머님의 얼굴이 겹쳐 보일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울화가 불쑥불쑥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무슨 일을 한 것처럼
이미 무슨 말을 한 것처럼
취급받는 상황 속에서,
그럴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혹시 내가 정말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제야 알았습니다.
아, 이건 고부갈등이 아니라
사람을 갈라놓는 방식이구나.
그래서 저는
못된 며느리가 되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모든 걸 삼키지 않기로,
내 마음을 없는 사람 취급하지 않기로.
왜냐하면
귀하게 키워주신
저희 부모님께 너무도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조건만 놓고 보면
반대해야 할 쪽은
어쩌면 우리 부모님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저는 남편보다
열 살이나 어리고,
벌이도 남편의 두 배 정도는 더 벌고 있고,
외모도 남편이 먼저 저 좋다고 쫓아다녔고요.
처음에는 저희 부모님도
남편을 실제로 보기 전에는
나이 차이 때문에
반대를 하셨지만 신랑을 직접 만나고 나서는
''사람이 참 괜찮고, 무엇보다 너를 보는 눈빛이 진심이더구나"
라는 이유 하나로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결혼 전 온화한 모습으로 ''우리 가족이 되어 달라''라는 말만 믿고,
혼자서 어머니와 로맨스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환영받지 못한 손님이었고,
남편은 우리 집에서 환영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유는
아주 단순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 남편은 대학교 이후, 이혼하신 홀 어머니께
아들이면서 동시에 남편이었고, 친구였고, 생활의 중심이었으니까요.
가만히 있어도 매달 돈을 가져다주던 아들이 결혼과 동시에
더 이상 예전처럼 모든 걸 채워줄 수 없게 되었고.
그 빈자리를 며느리라는 사람이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불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미웠고, 제가 숨 쉬는 것조차 여우처럼 보였던 건 아닐까.
그리고 어머님,
그거 아시나요.
어머님이 계속 저를 미워하고, 없던 일을 있던 일처럼 만들고,
제 말을 왜곡해 전달하실수록 어머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가정에서 점점 죄인이 되어 갑니다.
아내와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 소박한 꿈을 품은 한 가장은 점점 아내 앞에서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 됩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스스로를 먼저 검열하는 사람이 되고,
처갓집에서 이쁨 듬뿍 받는 사위이지만,
그 사랑을 받는 만큼 아내에게 더 미안해지는 사람이 됩니다.
행복해도 되는 순간에 기뻐하지 못하고,
웃어도 되는 자리에서 먼저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
저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감정과 현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서 있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은 말라 붙은 종이처럼 바싹바싹 마릅니다.
어머니, 전 당신이 참 밉습니다.
그래도 안 미워하렵니다.
당신은, 제 소중한 남편의 어머니시니까요.